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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재조지은’

기자명 이병두

내가 고등학교와 대학 생활을 보낸 1970년대에서 40년이 훌쩍 흘렀지만, 그 시절과 다를 바 없는 대통령의 어록을 대하게 되면서 ‘세월이 거꾸로 흐른다’고 하던 어른들의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국민과 야당의 목소리에 “국가와 국민의 안위가 달려있는 문제는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고, 그것을 이용해서 국민들에게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은 결국 국민의 생명과 삶의 터전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 될 것”이라며 훈계인 듯 경고하는 방식도 그 시절과 똑같다. 심지어 집권세력 내부에서조차 진지한 토론과 협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발표해놓고 ‘내 말이 곧 법이니 아무 말 말고 따라오라!’고 하는 것도 닮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자신의 결정과 명령에 전 세계 인류가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믿었던 아돌프 히틀러를 마주 하고 있는 것만 같다.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의 약자인 사드(THAAD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는 순전히 미국의 세계 전략 차원에 따라 배치가 결정되는 것이다. 정부 주장대로, 북한 핵을 방어하는 수단이기보다는 아시아 곳곳에서 ‘미국·일본’과 ‘중국·러시아’ 사이에 펼쳐지는 주도권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려는 미국의 이익이 있을 뿐이고 우리에게는 피해만 가져오게 되어 있다. 이러다가 ‘미·일’로 대표되는 해양세력과 ‘중·러’ 중심의 대륙 세력이라는 ‘거대한 고래 두 마리 싸움에 말려들어 등 터지고 허리 부러지는 새우 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반대하는 국민들을 ‘국론분열을 획책하는 비(非)애국자’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1962년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하려던 소련의 시도에 미국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제3차 세계대전 발발 위기’까지 거론되었던 역사를 돌아보면, 한반도 사드 배치에 중국이 왜 그토록 신경을 쓰고 반발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쿠바 미사일 배치를 자기 심장부를 노리는 소련의 전략으로 받아들였던 그때의 미국이나 미국의 한반도 사드 배치를 아시아 지역에서 자신들을 견제하려는 전략으로 받아들이는 2016년의 중국이나 다 똑같이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를 바 없다.

조선시대 중국 본토의 명(明)이 망해가고 있는데도 재조지은(再造之恩)만을 되풀이하다가 만주에서 일어난 청(淸)에게 국토를 유린당하고 항복을 하는 치욕을 당했었다. 수백 년 세월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미국은 우리의 혈맹(血盟)’이라는 도그마에 갇혀서 세계정세, 범위를 좁혀서 아시아 정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주문을 받은 박근혜 정부는 결코 사드 배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무역 규모를 비롯한 경제 분야와 관광 분야에서 가장 큰 이해당사자인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경우 우리가 안게 될 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에 무역 협상 등에서 중국에 매우 큰 양보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달라이라마 존자의 방한 추진에도 더 큰 난관이 생길 것이다.

우리가 존자님의 방한을 추진한 지 십수 년이 지났다. 지난 몇 해 동안의 부진을 털어내고 최근 위원회를 강화해 다시 꾸리면서 새로운 동력을 얻을 것으로 보였지만, ‘사드 배치’라는 암초를 만나 ‘한·중’ 관계에 먹구름이 끼면서 존자님을 모시는 일은 더욱 힘들게 되었다. 이럴 때에 달라이라마 방한추진위원회와 불자들이 앞장서서 정부에게 “미국의 전략에 이끌려 국제 분쟁에 말려들게 되는 사드를 이 땅에 배치해서는 안 된다. 중국 눈치 보지 말고 존자님 방한을 허락하라!”고 요구하여야 한다. ‘한반도 사드 배치 저지’와 ‘달라이라마 존자 방한’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된 사안이고, 세계 평화를 바라는 불자들이 함께 해야 마땅한 일이다. 

이병두 종교칼럼니스트 beneditto@hanmail.net
 


[1355호 / 2016년 8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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