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우 탄트(U Thant)
14. 우 탄트(U Thant)
  • 알랭 베르디에
  • 승인 2016.08.17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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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와 관용으로 세계 정치사에 큰 족적 남겼던 유엔 사무총장

▲ 우 탄트의 가족 사진. 우 탄트(왼쪽), 그의 어머니(가운데) 남동생들과 뒷줄 가운데의 딸.

1961년 11월3일 유엔의 새로운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그는 아침 6시30분에 일어나 불상 앞에서 명상을 하는 것으로 바쁜 하루를 시작했다. 유엔의 사무총장으로 세계 곳곳에서 6년간의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그가 내린 모든 결정들과 업적들은 하나같이 부처님의 말씀들에 바탕을 두고 행해진 것이었다.

미얀마 출신 유엔 사무총장으로
가장 존경스런 정치인으로 기억

명상과 경전 읽으며 하루 시작
위급상황에도 평정심 잃지않아

어떤 일도 선악으로 판단 않고
마지막까지 자비와 관용 유지

쿠바의 미사일 발사로 발생한
미국과 소련의 전쟁위기 상황
직접 쿠바로 달려가 극적해결

위대했던 불자정치인의 삶이
세계평화에 지대한 영향 미쳐

그는 미얀마 출신의 우 탄트(U Thant)다. 불교에 대한 깊은 신심으로 다져진 고상한 품격과 자비로움은 그를 유엔 역사상 가장 훌륭했던 사무총장이자 가장 인기 높았던 사무총장으로 기억하게 하고 있다. 우 탄트가 사무총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를 우리가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정치인이라고 말했다. 몇몇 직원들은 정치인을 넘어서 모두가 존경해야 할 성인(聖人)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우 탄트 프로필 사진.

1970~1971년까지 2년 동안 사무총장 비서실장으로 일했던 로버트 뮬러(Robert Muller)는 우 탄트를 가리켜 “인생을 멋있게 살 줄 아는 마스터이자 성인(聖人)”이며 “윤리적 판단을 정확하게 내릴 줄 아는 훌륭한 정치인”이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우 탄트는 약한 사람을 품에 안는 인간애와 세상을 선과 악으로 편가르지 않는 중도의 정신으로 어떤 위급한 상황에서도 침착함과 성실함을 잃지 않았다. 친절한 태도, 사려 깊은 행동들, 그는 재임기간 동안 어떤 긴급상황에서도 불평하지 않았고 화 또한 내지 않았다. 그는 진정 우리 시대가 꿈꾸는 위인이자 이상적인 정치인이었음에 틀림없다.

우 탄트는 영국의 식민지 지배 하에 있던 미얀마의 판타나(Pantanaw) 마을에서 1909년 1월22일 태어났다. 방앗간을 하던 부모님의 네 형제 중 장남이었던 그는 학창 때부터 뛰어난 학습 능력과 두드러진 재능을 보여주었다. 또 타고난 리더십을 보여줬던 그는 친구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며 반장 또한 놓치지 않았다. 자신의 또래보다 학습능력이 뛰어나고 많은 책들을 읽었던 그를 친구들은 ‘철학자’라고 부르곤 했다. 하지만 중학교 재학 시절 부친이 사망하며 장남이었던 우 탄트는 학업 대신 가족의 생계를 꾸려야 했다. 생계를 위해 공부시간이 부족했지만 대신 밤 늦게까지 집에서 틈틈이 학업을 이어갔다. 그는 결국 고등교사가 됐다. 그리고 교사로서 성실함과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기에 22세라는 어린 나이에 교장으로 승진했다. 교사로서 또 교장으로서 교육과 행정을 병행하던 우 탄트는 바쁜 시간을 쪼개 유명한 영국 문학 작품들을 미얀마어로 변역하기도 했다. 우 탄트는 평소에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아일랜드의 이몬 데 발레라(Eamon de Valera) 와 중국의 쑨원을 꼽곤 했다. 식민지 문제에 민감했던 그는 영국의 식민통치보다 더 잔혹하고 악랄한 것이 일본의 식민통치라는 말을 했다. 1942~1945년까지 일본의 통치하에 있던 미얀마에서 우 탄트는 수도 랑군(Rangoon)에 위치한 국가 교육위원회의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었다. 실제 현장에서 독립 운동에 전면적으로 참여하진 못했지만 그는 독립 운동가들이 일구어나가는 역사를 미얀마어로 된 교과서에 실으며 그만의 독립운동을 펼쳐갔다.

▲ 미얀마의 국무총리 우 누(가운데)와 함께 산책 중인 우 탄트 (사진 왼쪽).

1948년 미얀마의 독립이 임박해 오자 정부는 독립위원회를 결성했고 정부대변인 최고 책임자로 우 탄트를 임명했다. 1954년 미얀마의 총리였던 우 누안드(U Nuand) 정부의 사무총장이 됐으며 그는 1955년 비동맹운동을 결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총리의 국내외 순방에 동행하며 미얀마 자국민들뿐만 아니라 세계에 소신 있고 책임감 있는 인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1957년 미얀마 정부는 우 탄트를 미얀마 대표로 유엔에 파견했고 4년 후인 1961년 유엔 사무총장에 선출됐다. 우 탄트가 유엔의 사무총장으로 임무를 시작한 며칠 후 미얀마 정부는 국가에서 수여하는 두 번째로 높은 칭호를 수여했다. 1965년 9월 노르웨이 대사가 우 탄트에게 노벨 평화상을 받아야 할 분이라고 칭찬하자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세상 구석 구석까지 평화가 정착할 때까지 유엔 사무총장의 임무는 제대로 완성되지 않을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는 일화가 있다.

우 탄트는 종종 자기 자신을 가리켜 ‘정치인이기 전에 부처님을 따르는 성실한 불자’라고 말하곤 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그의 모습은 명상하거나 경전을 읽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인도 출신의 외교관 락칸 메로트라(Lakhan Mehrotra)는 그가 지나가면 주변에 영적으로 빛나는 오로라가 그를 감싸고 있는 모습에 깜짝 놀라곤 했다고 말한다. 캐나다 대사 이그나티에프(Ignatieff)도 그의 저서에서 우 탄트를 가리켜 그가 만난 정치인 중에서 최고로 신비한 정치인이자 자신에게 엄격했던 정치인이었다고 칭송했다. 

우 탄트의 사무실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복잡하게 쌓여있는 산더미 같은 서류 속에서 조용히 자리잡고 앉아 명상에 빠져있는 그를 발견하곤 했다. 우 탄트가 사무총장으로 재임하던 기간 중 뉴욕 시의 시장이었던 애브라함 빔(Abraham Beame)은 언제나 평온을 유지했던 그를 가리켜 “격한 파도로 일렁이는 해양 한 가운데 떠있는 평화로운 작은 섬”과 같았다고 표현했다. 그의 사무실에 모셔져 있던 작은 불상과 그가 가진 명상 습관은 어쩌면 국제 사회의 수많은 갈등과 긴장 속에서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힘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우 탄트는 “모든 생명체를 사랑과 존경심으로 대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의 무지와 탐욕으로 인해 행해진 작은 실수와 행동들이 다른 생명체에 해를 가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쟁과 범죄, 불평등과 부당함이 반드시 사려져야 하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잘 따른다면 더 빠른 시간 내에 없앨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우 탄트의 그런 모습에 측근이었던 로버트 뮬러는 원래 기독교 신자였지만 결국 감화를 받아 불교에 입문했다.

▲ 유엔 사무총장 재임 시의 우 탄트.

쿠바가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세계 평화에 위기가 찾아왔던 순간 유엔 사무총장 우 탄트는 쿠바의 수도 하바나로 가서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를 직접 만났다. 우 탄트는 쿠바로 향하던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명상부터 했다. 명상을 하려고 앉은 순간 그의 머리 속에는 미국의 군함과 쿠바의 미사일, 쿠바 정치의 리더였던 피델 카스트로의 험악한 얼굴 등이 스치고 지나가면서 평소와는 다르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도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피델 카스트로의 잔뜩 화가 난 얼굴 대신 부처님의 온화한 미소를 마음 속에 그리며 명상에 몰입했고 국가간의 갈등이 해소되고 평화가 찾아오길 간절히 기원했다고 한다. 그런 그의 절박한 기원 덕분이었던지 쿠바와 미국간의 일촉즉발의 갈등은 점차 사라졌고 그로 인해 초래될 수 있었던 큰 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

불자로서 우 탄트의 가장 큰 관심 중 하나는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리는 것이다. 그는 갈수록 각박한 세상이지만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며 머지않아 평화롭고 따듯한 세상이 반드시 온다는 믿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우 탄트의 삶과 업적을 바라보면서 알게 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참다운 불자가 된다는 것은 개개인이 인생뿐 아니라 세계의 안정과 평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우 탄트는 세계 정치사에서 불자로서 큰 활약을 펼쳤던 드문 인물 중 한 명이다. 그의 소신과 신념, 무엇보다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세상을 향해 쏟아 부었던 자비와 연민은 세계 정치사에 새로운 역사를 남겼다.

우 탄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불자로서, 모든 것을 관용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배웠다. 다른 이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나와 다른 종교와 이념을 가진 사람들에게 진실한 관용을 베푼다면 작고 아름다운 우리의 지구 위에 존재하는 많은 갈등들은 절로 사라질 것이다.” 

알랭 베르디에 저널리스트 yayavara@yahoo.com


[1355호 / 2016년 8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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