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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해인사 청년희망캠프 현장

취업·결혼 걱정하는 청년들, 산사에서 고민 훌훌 털고 희망 심다

▲ 해인사 도량 곳곳을 순례한 청년들은 숨을 죽인 채 도량의 웅장함에 귀를 기울였다. 사찰을 걷는 것만으로도 캠프에 참가한 청년들의 표정은 훨씬 맑아졌다.

연일 뜨거운 날씨에 몸과 마음이 더더욱 지치는 이들이 있다. 취업과 결혼을 앞둔 청년들이다. 잘 하는 일이 우선인지, 하고 싶은 일이 우선인지, 돈을 버는 것이 우선인지, 스펙을 쌓는 것이 우선인지, 저 사람이 내게 호감을 갖는지, 나는 저 사람에게 어떤 감정인지 그 모든 것이 더운 여름날 대지를 달구는 뜨거운 연기처럼 아득하고 막막하다. 숨이 턱턱 막히는 불볕더위보다 더 가슴을 짓누르는 고민들을 해결하지 못한 이들이 산사에 문을 두드렸다. 도량의 적막함 속 스님들과의 가슴 깊은 대화를 통해 그들은 어떤 묘안을 발견했을까.

8월18~20일, 청년 70여 명 동참
종교색 지운 청년맞춤 템플스테이

스님·신부·목사 멘토로 초청
도량 순례하며 웅장함에 감동
혜민 스님 강의로 고민 털어내

심야 차담·장경각 명상도 인기
고민 내려놓고 희망·자신감 쌓아

해인총림 해인사(주지 향적 스님)가 청년들에게 산문을 활짝 열었다. 8월18~20일, 25~27일 두 차례에 걸쳐 해인사 일원에서 진행되는 ‘청년희망캠프’를 통해서다. 말 그대로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은 스님들의 마음은 현실이 됐다. “템플스테이가 있는데 굳이 웬 캠프?”라고 묻는 이들에게 스님들은 단언했다. 이번만큼은 종교적인 색깔을 과감하게 놓겠다고 말이다. 이 소식에 합천군과 경남도, 문화체육관광부도 반기며 캠프 지원군이 됐다. 해인사 주지 향적 스님과 승가대학 강주 무애, 학감 보일 스님은 전문 기획사와 함께 손을 잡고 이 시대 청년들이 가장 원하는 2박3일의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차수도, 절도, 예불도, 묵언도, 발우공양도 이번만큼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게다가 복장도 자율이다. 선글라스도 허용한다. 사찰의식이 있던 공간에는 청년들의 멘토 혜민 스님을 비롯해 유수상 거창 중촌교회 목사, 천주교 대구대교구 영천 산자연학교 교장인 정홍규 신부의 특별 강의가 자리 잡았다. 대신 한 가지 요구사항만 분명했다. ‘마음을 열어라.’ 청년 희망 캠프의 참가 조건은 ‘마음’ 하나면 충분했다.

▲ 역할극을 하며 어색함을 풀어낸 참가자들.

8월18일, 백중 다음날 해제를 기해 수좌 스님들이 만행을 떠난 것은 물론 학인 스님들도 방학을 맞이한지라 도량은 텅 빈 느낌마저 들었다. 허전함이 감도는 해인사에 청년들이 한 사람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에서 해인사를 찾아온 이들은 20~30대에 이르는 말 그대로 청년들이다. 해인사에 따르면, 인터넷을 통해 자발적인 신청 접수를 한 결과 70여 명이 운집했다. 짧은 접수 기간에도 불구하고 기대 이상의 호응이었다. 도량에 에어컨은 없었다. 대신 스님들이 주로 쓰는 여름용 밀짚모자가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달됐다. 강원의 학인 스님들의 생활공간이 캠프 기간에만 청년들의 숙소로 변모했다. 개회식에 이어 참가자들이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안고 온 고민은 많은 표정이었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쉽사리 털어놓기는 어색했다.  

▲ 고민을 털어 놓은 뒤 크게 숨 쉬는 시간을 가졌다.

아직은 서먹함이 교차하는 이들에게 학감 보일 스님이 해인사 일주문부터 직접 도량 안내를 담당했다. 스님은 “해인사에도 승가대학이 있다. 세속에서 말하는 종합대학과 같은 곳이다. 지난 1200여 년 동안 대대로 스님들은 이곳에서 공부를 하면서 자신과의 질문에 답을 찾아갔다. 오늘은 여러분도 승가대학의 학생이 되었다는 생각으로 마음속에 간직했던 의문들을 풀어가길 바란다”고 제안했다.

▲ 학감 스님과 순례하는 청년들의 표정이 밝다.

스님은 “해인사를 단순히 종교시설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으로 봐 달라. 지금 여러분이 많은 고민을 안고 있듯이 이곳 해인사에 모셔진 팔만대장경은 숱한 전란 속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한 고민을 거듭하던 고려인들이 무엇이라도 해야 했을 때 조성했다. 고민의 해결 방법이 왜 하필 대장경이었을까. 그러한 의문을 가지고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뎌 보라”고 설명했다. 스님의 안내에 따라 돌아보는 해인사는 전각마다 사연이 있었다. 청년들은 도량 곳곳이 전하는 가치를 글로 받아 적었다. 때때로 고개를 들어 각 전각의 천장을 한참 바라보는가 하면 장경각 앞에서는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숨소리를 낮추며 절박함 속에서도 한 결 같았던 고려인의 응축된 신심에 귀를 기울였다. 더위 속에서 연신 땀을 닦으며 시작된 순례는 1시간 30분이 지나자 청량함으로 바뀌었다. 도량을 천천히 둘러보았을 뿐인데도 이마를 스치는 맑은 바람처럼 청년들의 표정이 고민의 한 꺼풀을 덜어낸 듯 훨씬 밝아졌다.

▲ 취업, 결혼, 돈, 친구… 청년들의 고민은 비슷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입니다. 사찰이 이렇게 고귀하다는 걸 비로소 느끼고 있어요. 종교를 갖고 있지 않지만 때때로 삶이 지칠 때마다 절을 찾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친구의 제안으로 참가하게 된 박인수씨(29)는 대학 생활과 일을 병행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진 못 했다. 하지만 이번 캠프를 통해 사찰의 고귀함을 알게 된 것 자체가 큰 기쁨”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 참가자들은 온몸을 이완하며 역할극을 마무리했다.
인천에서 온 박수정씨(27)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사찰 곳곳을 세세하게 바라보았다. 박씨는 “자기소개서 쓰는 것도 지겹고 뭔가 떠나고 싶고 걱정이 많은 시기였다”며 참가 계기를 소개했다. 이어 “무엇보다 이곳에서 스님과 목사님과 신부님의 수업을 모두 들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기회가 된다면 캠프에 다시 참가하고 싶다”며 소감을 밝혔다.  

사찰순례에 이어 저녁공양을 마친 이후에는 특별 강연이 마련됐다. ‘청춘들의 멘토’로 불리는 마음치유학교장 혜민 스님이 강사로 해인사를 찾았다. 강연장으로 마련된 보경당에 혜민 스님이 등장하자 청년들 사이에서는 환호가 쏟아졌다. 합장 인사로 인사를 나눈 혜민 스님은 따뜻한 미소로 청년들을 가슴속 이야기들을 이끌어내기 시작했다.

“통도사 극락암에 경봉 스님이라는 큰 스님이 계셨어요. 경봉 스님께서는 ‘우리의 삶이 한바탕 연극’이라고 하셨지요. ‘이번 생에 태어나서 연극 한편 잘 하고 간다’라고 생각하면 인생은 그렇게 복잡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진짜 연극을 하는 겁니다.”

혜민 스님은 청년들을 서로 마주 보게 했다. 그리고 상대방이 학창시절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하며 각자 가장 고마웠던 일, 가장 열등감을 가졌던 일을 하나씩 마주 앉은 이에게 풀어낼 것을 제안했다. 이야기를 하고 들을 때는 반드시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기,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절대 조언하지 않기, 한 가지 주제가 시작되기 전과 끝난 뒤에는 고요한 상태에서 눈을 감고 크게 숨을 세 번 쉬기 등이 조건이었다. 여전히 어색해하던 청년들은 어느새 서로의 가장 친한 도반으로 변신해 있었다. 손뼉을 마주치거나 두 손을 잡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지는 가하면 안타까움의 탄식도 교차했다. 정해진 시간이 점점 짧게 여겨질 만큼 이야기는 더 길어졌다.

▲ 혜민 스님과 함께 한 제1회 청년 희망 캠프 참가자들.

연극의 마지막 순서로 혜민 스님은 지금 갖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을 상대방이 심리상담사라고 생각하며 털어놓도록 했다. 가슴속에 꼭 숨겨 놓고 좀처럼 꺼내지 않을 것 같던 청년들의 이야기들이 주저 없이 쏟아졌다. 이야기가 끝난 뒤 청년들은 보경당 마룻바닥에서 온몸을 이완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조금이라도 무거운 것은 툭툭 떨어져 나가는 상상을 했다. 스님은 조금 전 나눈 각자의 고민들을 화이트보드에 기록하도록 주문했다. 그런데 70여 명의 이야기를 모두 합해도 스무 가지가 채 넘지 않았다. 당장 이날 아침까지만 해도 서로의 존재조차 몰랐던 청년들은 대부분 같은 고민과 같은 어려움을 갖고 생활하고 있었던 셈이다.

취업, 결혼, 돈, 친구 등 화이트보드에 적힌 고민들을 보면서 청년들은 소리 없이 미소를 지었다. 나만의 아픔이 아닌 모두의 아픔인 줄 안 이상 고민은 더 이상 혼자 해결해야 할 숙제가 아니라는 듯 앞 사람과 옆 사람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혜민 스님은 청년들에게 인생의 조언도 덧붙였다.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잘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병행해 보라, 실패도 소중한 경험이니 가슴속에 한을 남기지 말고 무엇이든 도전해보라는 것이 스님의 당부였다.

어느새 밤이 깊었다. 이야기를 쏟아 낸 청년들에게는 해인사가 마련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강원 스님들의 생활공간인 화정원에 차담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조별로 둘러앉아 스님들과 차를 마시며 나누는 이야기는 꿀처럼 달달하고 녹차처럼 향기로웠다. 다음 날 진행될 장경각 명상에 대한 청년들의 관심이 취업을 위한 스피치 강좌보다 높다. 훌훌 털어낸 고민의 자리에 자신감과 희망이 차곡차곡 쌓인 것일까. 첩첩 가야산 봉우리 위로 뜬 둥근 달이 청년들의 희망에 에너지를 완충시키는 듯 어제보다 더 밝고 환하게 빛난다.   

합천=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1356호 / 2016년 8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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