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 말 잘 들어주는 이가 관세음보살 화신

기자명 원빈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6.08.23 17:47
  • 수정 2016.08.23 17:49
  • 댓글 2

매주 일요일 행복문화연구소는 일요법회를 위한 준비로 바쁩니다. 법당 공간이 협소해 다실에서 법회를 진행하는데 참석인원이 20명이 넘어가면 거실 문을 활짝 열고, 테라스와 마당까지 개방해야 하죠.

고집서 생겨나는 모든 다툼
분노와 다툼은 듣는 귀 막아
들어주는 것이 자비의 시작
마음 알면 세상소리 듣게 돼

이번 일요법회 주제는 천수경입니다. 그동안 천수경을 예불 때마다 독송하기는 했지만 그 뜻을 정밀하게음미하며 분석해 본 적이 없었던 저로서는 뜻밖의 선물을 받는 것 같았습니다. 살펴보고 곱씹을수록 ‘천수경이 이렇게 멋지고 훌륭한 경전이었다니!’라는 감탄사가 반복해서 나옵니다.

오직 한국, 한국인, 한국불자들을 위해 편집된 경전인 현행 천수경은 지극히 한국적인 자비명상의 극치를 이루는 경전입니다.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의 서원과 이근원통 수행을 통해 내면의 관세음의 꽃을 피워내도록 고안된 일상 수행의 백미인 것이죠.

세상에는 자비로움에 위배되는 잔인하고, 두렵기 짝이 없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엽기적인 사건들은 점점 많아져 우리들의 일상을 위협하기 시작하죠. 며칠 전 태국 전역에서 18시간에 걸쳐 10차례가 넘는 폭탄테러가 일어났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그때 태국에 살고 있는 신도들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폭탄테러가 일어난 그 지역에 지인이 사는데 연락이 안 되니 불안했던 거예요.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수십 명이 부상을 입은 이 사건은 정치적 입장을 고집하는 무리의 반정부 시위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스스로의 고집을 세상에 알릴 필요성에 사로잡혀 그 행위로 인해 상처받을 수많은 이들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었나 봅니다.

세상의 모든 다툼은 고집에서 생겨납니다. 고집과 고집은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으니까요. 오직 자신의 고집에 푹 빠진 이들은 다른 의견을 듣는 귀가 막혀버리게 됩니다. 이러한 귀머거리들은 자비의 씨앗이 아닌 분노와 다툼, 폭력의 씨앗에만 영양분을 잔뜩 줘 끔찍하고 악취나는 사건들의 열매를 세상에 투하합니다.

우리가 현재 사찰에서 독송하는 천수경은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올바로 독송하기 위해 편집된 의식집이라고 합니다. 즉, 신묘장구대다라니가 천수경의 중심이라는 것이죠. 관세음보살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자재하게 관할 수 있는 힘은 신묘장구대다라니 이근원통 수행의 공덕 때문입니다.

우리 불자들은 이근원통 수행을 통해 잔인한 짓을 일삼는 귀머거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먼저 내 소리를 듣는 연습이 필요한데, 관세음보살을 본받아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독송하며 자신의 소리를 듣는 연습을 하는 것이죠. 이렇게 자신이 내는 소리를 점점 더 잘 듣게 되면 자연히 다른 존재의 소리도 잘 들리기 시작합니다.

듣는 연습이 무르익으면 더 나아가 들리는 소리 밑에 깔린 마음이 들리기 시작하죠. 천 개의 눈을 가진 관세음보살처럼 세상의 마음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중생의 마음속 슬픔과 간절함을 듣고도 그들을 향한 자비심이 생기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한 노인이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1시간 동안 내 말을 듣기만 하고, 다른 말은 한 마디도 해주지 않으면서 왜 이렇게 돈을 많이 받는 거죠? 도둑놈 심보같이!”
“어르신, 지금까지 어르신 말씀을 저처럼 잘 들어준 사람이 있었나요?"
“아… 그렇군. 돈을 많이 받을만하네요!”

잘 들어주는 것이 자비의 시작입니다. 누군가 내 말을 잘 들어준다면 그 사람은 관세음보살의 화신입니다. 내 마음에 공감해주는 그 친구가 바로 관세음보살입니다. 내 슬픔을 안아주는 부모님이 관세음이고, 내게 따뜻한 눈빛과 웃음을 보내주는 친구들이 관세음이며, 내게 친절을 베푸는 동료들이 바로 관세음입니다.

▲ 원빈 스님
행복명상 지도법사
 
우리 불자들은 천수경을 다 알고 있습니다. 새로운 자비명상, 수행을 찾을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이미 우리들에게 있는 너무나도 익숙하고 완벽한 자비명상, 수행의 지침서를 두고 헤맬 이유가 없죠. 다만 천수경을 바라보는 관점은 조금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천수경을 소원성취를 위한 경전으로만 보기보다는 관세음보살의 자비와 서원, 이근원통 수행을 통한 지혜를 개발하는 일상 수행서로 볼 필요가 있는 것이죠.

지금도 전국의 사찰에서는 수많은 불자들이 천수경을 독송하고 있습니다. 한번, 두번, 열번… 천수경을 독송하면 할수록 관세음보살의 모습과 닮아가는 불자들이 많아질 때 불교의 위상이 높아지고, 아수라같은 귀머거리들이 사라지며, 만나는 사람마다 서로가 서로의 눈에서 관세음보살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1356호 / 2016년 8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