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멸성제에 집중하는 대승 경전들
31. 멸성제에 집중하는 대승 경전들
  • 김정빈
  • 승인 2016.08.24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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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에게 필요한 것은 ‘치료법’

대승 경전들은 깨달음을 이루는 수행법(도성제)보다는 수행의 결과에 도달하게 되는 열반의 경지(멸성제)를 설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대승불교를 대표하는 3대 경전을 통해 살펴보자.

3대 경전, 멸성제 집중하느라
상대적으로 도성제에는 취약
환자에 비유, 멸성제는 ‘건강’
‘치료’ 위한 집성제 힘 쏟아야

먼저 ‘화엄경’은 법계가 얼마나 중중무진(重重無盡)한지를, 그러면서도 어떻게 무애(無碍)한지를, 석가모니 부처님의 본분은 형상으로 나타난 화신을 넘어서는 근본으로서의 법신임을, 나아가 부처님의 몸은 시방법계에 충만해 있음을 설한다. 즉 ‘화엄경’은 깨달음을 성취하신 부처님의 경지에서 본 법계, 그리고 깨달음의 경지가 얼마나 심오불가사의한지를 설하고 있다. 이는 사성제에서 멸성제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법화경’ 또한 마찬가지이다. ‘법화경’의 내용을 요약한 사구게는 제법종본래(諸法從本來) 상자적멸상(常自寂滅相) 불자행도이(佛子行道已) 내세득작불(來世得作佛)이다. 이로써 우리는 ‘법화경’이 “제법이 적멸함을 수행하라”는 수행법(도성제)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아직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한 불자로서는 제법의 적멸은 믿을 수는 있지만 수행할 수는 없다(이를 통해 선정을 얻을 수는 없다). 이 게송이 말하고 있는 ‘제법적멸’은 깨달은 분, 즉 부처님 경지에서만 증험적으로 아는 내용으로서 사성제의 멸성제에 해당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경전인 ‘금강경’은 어떨까. ‘금강경’은 부처님의 해공제일(解空第一) 제자 수보리로 하여금 “보리심을 일으킨 보살은 어떻게 마음을 머무르며, 어떻게 마음을 항복시켜야(다스려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하게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부처님의 답변이 ‘금강경’의 내용이다.

수보리의 질문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두 가지 답변을 하신다. 첫 번째로, 보살은 모든 중생을 열반에 인도하고자 하는 대원(大願)을 일으켜야만 한다. 두 번째로, 그렇지만 그 대원을 다 이룬다고 해도 보살의 마음에는 아상(我相)·인상(人相)·중생상(衆生相)·수자상(壽者相) 등 사상(四相)이 없다(없어야 한다). 이렇게 두 가지 답변을 하신 다음 부처님께서는 앞의 답변에 대한 부연 설명은 하지 않고, 뒤의 답변에 대해서만 자세한 설법을 이어가신다.

필자는 부처님의 두 답변 가운데 앞의 답변은 수행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아쉽게도 ‘금강경’은 아직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한 우리들이 수행할 수 있는 그 부분은 자세히 다루지 않고, 우리들로서는 다만 개념으로만 알 수 있는, 그래서 들으면 들을수록 개념지(알음알이)만이 늘어날 뿐이어서 도리어 수행 자체에는 방해가 될 수도 있는 내용만을 설하고 있다.

‘금강경’에는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이라는 사상 타파와 관련된 구절이 있고, 이 한 구절을 듣는 것만으로 혜능이라는 나무꾼은 큰 깨달음을 성취하였다. 그렇지만 혜능은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사람, 즉 가장 높은 근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바꿔 말해서 수행의 천재가 아닌 수많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머무름이 없이 마음을 내라”는 말이 어떻게 하라는 뜻인지가 불분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머무름이 없이 마음을 낸다면 그는 이미 보살이 아닐까요? 보살이 아닌 제가 머무름이 없이 마음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우리는 또 묻는다.

“단지 사상을 없애야지, 하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과연 사상이 없어질까요? 그 생각 자체가 또하나의 상이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사상이 없어지지 않는 나를 위해 사상을 없애는 방법을 알려 주십시오.”

그렇지만 ‘금강경’은 도성제를 요청하는 이 질문에 대해 답하지 않는다.

이상 살펴본 것처럼 대승 경전들은 멸성제를 설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데, 환자의 비유에서 멸성제는 ‘건강’에 해당된다. 그렇지만 건강은 ‘치료(도성제)’를 잘 받으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다. 의사(경전, 스승)의 입장에서 환자의 건강이라는 목표는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의 필요성을 한두 차례 강조하는 것으로 족하며, 나머지 힘과 노력은 치료(치료를 위한 진단, 집성제)에 투여되는 편이 옳다는 의미이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356호 / 2016년 8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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