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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불자를 위한 우바새계경 강설] 17. 제17품 공양삼보품(供養三寶品)

기자명 법보신문
  • 법공양
  • 입력 2016.08.29 16:07
  • 수정 2016.08.29 17:56
  • 댓글 0

삼보 향한 지극한 공양은 스스로 공덕 짓는 ‘복밭’

▲ 안심정사 논산본찰의 모습. 왼편에는 요사채와 공양간 등이 위치한 임시건물이 위치해 있다.

‘우바새계경’ 강설을 보신 불자님들은 반드시 계, 정, 혜 세 가지를 실천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계실겁니다. 이를 위한 첫 번째 단계가 ‘수계’지요. 계를 받아 철저하게 지키기 시작하면 여러분들의 생활 환경을 포함한 모든 것이 바뀌게 됩니다. 우리가 계율을 받는 이유는 십(十)선업, 즉 열 가지의 선업을 닦기 위함입니다.

보은전·공덕전·빈궁전 등
세가지 복 짓는 밭 구체적 제시
재물로 보시하거나 경전 나누고
봉사활동 한다면 무량한 공덕
남의 공양 기뻐해도 ‘수희공덕’

부처님은 우주가 생긴 이래로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도인들 중에 한 생의 전생을 아는 도인, 열 생의 전생을 아는 도인, 백 생이나 천생의 전생을 아는 도인이 있는데, 부처님은 무시이래로 다 아시기 때문에 어떤 것이 우리 중생이 진정으로 성불 받는 일인가를 가르쳐주시는 거예요.

‘법구경’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전생을 삼생까지만 볼 수 있는 도인이 천상에 간 사람의 전생을 봤어요. 소똥을 몸에 바르고 소처럼 기어 다니면서 풀만 뜯어먹고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그래서 “아! 이렇게 하면 천상계를 가는구나”하고 자기도 따라 하기 시작했어요.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천상계에 가기 위해 소 흉내를 무리들이 생겼다고 해요. 그런가하면 파사나디왕이 잔치를 하려고 소 천 마리를 잡으려고 하는데 소를 잡을 사람이 없는 거예요. 파사나디왕의 측근들이 전부 불자들이니까요. 그런데 한 도인이 삼생동안 도살만 한 사람이 천상세계에 간 것을 보고는 ‘살생을 해야 천상을 가는구나’ 생각해 소를 잡는 역할을 도맡았다고 합니다.

어때요? 삼생까지만 보고는 그것이 진리인 줄 아는 과오를 범한 것이죠. 실상은 삼생 이전에 지은 선업이 굉장히 많아서 천상에 간 것인데, 일부만 보고 착각을 일으켜서 나쁜 짓을 하게 된 셈입니다.

부처님은 모든 생을 보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기에 선업을 지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미륵삼부경’의 주제도 십선업이예요. 미래 용화세계에 태어나는 것도 열 가지 선업을 빼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 거예요.

선업의 기본은 계율을 지키는 것입니다. 간혹 계율이 시대와 공간에 따라 변화될 수 있는지 여부가 논란이 되곤 하지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설하신 본래의 취지를 이해하고 따르는 게 중요한지, 외형적인 형태를 따르는 게 중요한지에 대한 부분입니다. 이는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차이점이기도 합니다.

먼저 대승불교는 그 정신을 계승하는 거예요. 오늘날 한국불교가 혼란스러운 이유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해 정신을 계승하려는 노력이 미흡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불립문자’라고 해서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고 하는데 불립문자에 들어가기 전에 필요한 단계를 놓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바로 정립문자입니다. 여기서 문자라는 것은 글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부처님 말씀, 즉 문자반야를 의미하는 거예요. 경(經)·율(律)·론(論)이지요. 이것이 바로서지 않으면 불립문자는 허망할 뿐입니다. 또 왜 자꾸 교외별전(敎外別傳)만 주장하나요? 그 이전에 필요한 것이 있잖아요. 교내정전(敎內正戰), 부처님께서 전하려 하셨던 의미부터 찾고 교외별전 등의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맞지요.

이번 강설은 ‘공양삼보품’, 즉 삼보에 공양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공양에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우바새계경’은 우바새계를 받은 불자들을 위한 공양을 설하고 있습니다. 우바새계는 팔관재계(八關齋戒)예요. 오계에다 세 가지 재를 더한 것이죠. ‘재(齋)’는 범부중생이 지키면 큰 복이 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때가 아닐 때 먹지 않는 것, 오후불식 등이 대표적입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이미 우바새계를 받았다면 또 어떻게 삼보께 공양해야 하나이까?”

“선남자여, 세간에는 세 가지의 복 밭이 있으니, 첫째는 보은전(報恩田)이고, 둘째는 공덕전(功德田)이며 셋째는 빈궁전(貧窮田)입니다. 보은전이란 이른바 부모와 스승과 스님이고, 공덕전이란 난법을 얻은 이부터 아누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이까지이며, 빈궁전이란 온갖 가난하고 괴로운 사람입니다. 여래 세존은 보은전과 공덕전이 되고, 법도 역시 이 두 가지 밭이 되며, 스님들은 보은전도 공덕전도 빈궁전도 됩니다. 이와 같은 인연으로 보살이 이미 우바새계를 받았으면 지극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삼보께 공양하여야 합니다.”

법당에 복전함이 있죠? 복전(福田), 말 그대로 바로 복 짓는 밭입니다. 복은 여러분이 씨앗을 뿌려 여러분이 거두는 거예요. 부처님께서는 세 가지 복 밭에 대해 이렇게 구체적으로 설하셨어요. 부처님은 만인류 법계의 스승이시니 당연히 보은전이 되고 난법을 얻은 이부터 아누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이에 들어가니 공덕전도 되죠. 가난하고 괴로운 사람을 왜 도와줘야 하는지도 명쾌하게 설명이 됩니다. 복 짓는 밭이거든요. 도와주는 행위는 그 사람에게도 좋은 일이지만 자신에게도 아주 좋은 복으로 돌아온다는 것이죠.

“선남자여, 여래는 모든 법의 창고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는 마땅히 지극한 마음, 부지런한 마음으로 생신이나 멸신이나 형상이나 탑묘에 공양할 것입니다. 탑도 형상도 없는 들판에서도 항상 생각하고 공경하며 찬탄하고, 자신의 능력으로 짓거나 남에게 권하여서 지을 것이며, 남이 짓는 것을 보면 기뻐하는 마음을 내어야 합니다.”

부처님의 형상과 부처님의 그림, 부처님 명호에 공양을 올리는 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 현실에서 실천하기 쉽지는 않아요. ‘일념상응일념불 염염상응염염불(一念相應一念佛 念念相應念念佛)’. 한번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 법을 생각하면 한번 부처님이 되고, 자꾸 생각하면 꾸준히 부처님이 된다고 하지요. 자꾸 부처님을 생각함으로 해서 보은전과 공덕전을 형성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공덕을 짓는 방법은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재물로써 보은전, 공덕전, 빈궁전에 베푸는 재보시입니다. 두 번째는 배워서 아는 것으로 남들에게 가르쳐 주거나 경전을 찍고 나눠 주는 법보시, 세 번째는 몸으로 하는 육체적 봉사활동, 네 번째는 남들이 공덕을 짓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마음을 내는 거예요. 바로 수희공덕입니다. 공덕을 지을 수 없는 경우는 원칙적으로 하나도 없어요.

많은 분들이 신세 타령을 하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복을 짓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늘 빈곤이 악순환될 수밖에 없어요. ‘그런 게 어디있어?’하며 의심부터 품지 말고 일단 부처님 가르침대로 해 보세요. 우선 해 보는 게 중요해요. 부처님 말씀대로 하다보면 의식수준이 높아지고 어느 순간에 변화가 찾아와요. 그 상태까지 도달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요. 그러니여러분들이 금생에 목표를 세워야 돼요.

“자신에게 공덕력이 있으면 마땅히 널리 많은 사람에게 가르쳐서 함께 짓도록 하여야 합니다. 공양을 하고나서는 자기의 몸을 가벼이 여기는 생각을 하지 말 것이며, 삼보께도 역시 이와 같이 해야 합니다. 공양이라는 것은 남이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며 남을 이기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공양할 때는 비난하는 마음을 내거나 근심, 걱정을 하지 말아야 하며, 합장하고 찬탄하며 공경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쉽지 않아요. 특히 세 번째 빈궁전이 좀 어려워요. 예를 들어 어려운 사람을 좋은 마음으로 도와주려고 하다가 기분이 상한 경험 한 번쯤 있으실 거예요. 복이 없는 사람의 언행은 복을 짓는 언행과 거리가 먼 경우가 있기 때문이지요. 부처님께서 공양할 때는 비난하는 마음을 내거나 근심, 걱정을 하지 말아야 하며, 합장하고 찬탄하며 공경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복 밭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좋은 마음을 품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한 푼에서부터 셀 수 없이 많은 재보에 이르기까지, 한 올의 실에서부터 한량없는 비단에 이르기까지, 한 송이의 꽃에서부터 셀 수 없이 많은 꽃에 이르기까지, 향 한 자루에서부터 셀 수 없이 많은 향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찬탄하는 게송에서부터 셀 수 없이 많은 찬탄하는 게송에 이르기까지, 한 번의 예를 드리는 것에서부터 셀 수 없이 많은 예를 드리는 것에 이르기까지, 한 번의 도움에서부터 셀 수 없이 많은 도움에 이르기까지, 한 시간에서부터 셀 수 없이 많은 시간에 이르기까지 혼자서하거나 남과 함께 해야 합니다.”

우리가 실천행을 하다보면 여러분들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들이 자꾸 늘어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도우며 내 그릇도 키우는 과정이거든요.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쓰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이유예요.

재물은 원칙적으로 유한한 것임을 불자들은 꼭 이해하고 명심해야 합니다. ‘금강경’에서 모든 것이 ‘공(空)하다’고 했지요. ‘고정불변의 실체로 영원한 내 것이 아니다.’ 꼭 기억하셔야 해요. 재물이든 목숨이든 우리 육체든 언젠가 무너져 가는 거예요. 한 번에 크게 이루려고 하지 말고 하나하나 실천해보세요. 부처님께서 알려주신 복의 밭에 공양을 올리며 차근차근 변화를 준비하세요.

“어떤 사람이 사천하의 보배로 여래께 공양하거나, 또 다른 사람이 갖가지 공덕으로써 존중 찬탄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공경한다면 이 두 사람의 복덕이 같아서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찬탄하는 공덕도 중요합니다. 간혹 남이 공덕 짓는 것을 안 좋은 눈으로 보거나 시샘하는 경우가 있는데 자기 손해예요. 옆에서 수희찬탄하면 그 공덕과 똑같아지는데, 좋은 길 두고 왜 나쁜 길로 가나요?

“누구나 이와 같은 법으로 부처님을 찬탄한다면, 이 사람은 부처님께 참 공양을 올린다고 할 것입니다. 선남자여, ‘십이부경’에 공양을 올리면 이것이 법에 공양하는 것입니다. ‘십이부경’에 공양하는 것이란,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좋아하며, 받아서 읽고 외우며 해설하고 말씀대로 행하면 이미 자기를 위한 것이며, 또 남에게 권하여 행하게 하면 이것이 ‘십이부경’에 공양하는 것입니다. 십이부경을 베껴 쓰고, 쓰고 나서 갖가지로 공양하되 부처님께 공양하듯 하며 오직 씻기는 것만 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공양하고 수지하고 독송한다면 이것이 법에 공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좋아하며, 받아서 읽고 외우며, 해설하고 말씀대로 행하면 이미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자기가 읽고 이롭고 좋아지는 거지요. 그런데 지금은 베껴 쓰는 것, 즉 사경을 잘 이해해야 해요. 쓰고 베끼는 게 공덕이 크다니까 전부 사경을 해요. 그런데 정성스럽게 안 쓰고 못 읽게 쓰면 업이 되는 거예요. 몇 권 썼느냐가 뭐가 중요해요? 옛날에는 인쇄술이 발달되지 않아서 누군가가 정성스럽게 베껴 써 줘야 읽을 수가 있으니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청나라 말 정토종 13대 조사인 인광대사도 경전을 인쇄해서 나눠주는 공덕을 강조했지요. 그런데 우리는 몇권 썼는 지에 관심을 가져요. 횟수 채우려고 남이 읽지 못할 정도로 정성 없이 쓰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법보 공양이 아닌 거죠. 차라리 인쇄를 해서 나눠주거나 사서 나눠주세요.

“이와 같이 불, 법 승 삼보에 공양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사람은 마침내 시방의 여래를 여의지 않고 행주좌와(行主座臥, 가고 머물고 앉고 누움)에 언제나 모든 부처님과 함께 할 것입니다. 선남자여, 말한 대로 이러한 삼복전에 얼마간의 공양을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한량없는 세상에 많은 이익을 받을 것입니다.”

삼보에 공양하는 것은 삼보 좋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이로운 것이예요. 복전의의미를 항상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복의 밭에 복을 지어 내가 복을 받는 것이죠.

쉽지 않은 만큼 공덕이 훨씬 더 클 수밖에요. 기회를 잃지 말고 조금씩, 조금씩 지어 나가는 거예요. 이번 생에 인간으로 태어남은 업도 많고 복도 많은 것이니 삼보에 공양을 올려 업장을 소멸하고, 복을 지어야 합니다.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샌가, “아 이렇게 변화가 나타나고 있구나’하고 알게 되지요. 복의 밭에 많은 복을 지어서 다음 생에 만날 때는 ‘스님, 제가 이번에 사업해서 10조원을 벌었으니, 5조원 정도는 불사에 쓰시면 어떨까요?”하셔야 합니다(웃음). 꼭 그렇게 되시길 축원 합니다.

 


안심정사 논산본찰, 설법전 건립불사 착수

8월21일 착공식 봉행…600명 참석
오전에는 백중회향 용왕방생법회도

기도와 나눔으로 행복을 일구는 안심정사가 논산본찰 설법전 건립불사에 착수했다.

안심정사(회주 법안 스님)는 8월21일 경내에서 설법전 착공식<사진>을 봉행했다. 이날 법회에는 서울과 천안, 부산 등 각 도량 신도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불자 600여명이 참석했다. 설법전 건립불사는 안심정사 도량내 3층 건물로 계획됐다. 건물 내에는 부처님 말씀을 설하는 설법전과 부처님 가르침을 담은 경전을 모실 ‘장경각’, 불자님들의 기도정진을 도울 ‘요사채’와 ‘공양간’이 들어설 예정이다.

설법전 건립은 안심정사가 부처님 가르침과 불자들의 신심으로 가득한 도량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숙원불사다. 특히 기존의 요사채와 공양간이 임시건물에 위치해 있는데다 신도수에 비해 공간이 협소해, 정기적으로 봉행되는 재수불공은 물론, 각종 재일에도 많은 수의 신도들이 몰려 어려움을 겪었다.

안심정사는 1991년 회주 법안 스님의 원력으로 창건됐다. 당시 임시건물을 법당으로 활용하다가 2009년 지금의 대웅전이 건립되면서 새롭게 면모를 일신했다 중창됐다. 그럼에도 요사채와 공양간을 비롯해 스님의 소참법문이 이뤄지는 다실과 수행공간은 임시건물에 위치해 있어 개선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여기에 스님의 법문과 신도들의 영험담이 홈페이지를 비롯한 각종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면서 신도수가 크게 증가해 부실한 건물과 공간의 협소함으로 인한 불편함은 점차 커져왔다.

설법전 건립불사는 결국 더 많은 불자들이 법안 스님의 법문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고 기도정진을 이어가도록 하기 위한 복안인 셈이다. 설법전 건립불사를 계기로 안심정사를 약사·지장기도의 대표적인 성지로 일구어 나겠다는 원력의 발현이기도 하다.

한편 안심정사는 이날 설법전 착공시에 앞서 논산 강경읍 금강하구둑에서 백중회향 수륙 용왕방생법회를 봉행했다. 법회 동참금 4800여만원은 군포교 기금으로 회향됐다.


[1357호 / 2016년 8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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