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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부를 때가 진정 꽃이고 행복이었습니다”

  • 만다라
  • 입력 2016.08.29 16:24
  • 수정 2016.08.29 17:46
  • 댓글 1

우리시대의 소리꾼 장사익씨

▲ 시대의 소리꾼 장사익씨를 홍지문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 성대수술 후 첫 단독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그의 얼굴은 다시 노래를 할 수 있다는 행복감으로 가득 차있었다.

“예전엔 거침없이 노래를 했다면 이제는 노래하기 전에 마음을 한 번 정돈하고 노래의 의미를 새겨 부를 것 같아요. 나이 먹은 것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진심으로 노래하는 것. 그것이 나다운 것이라고 생각해요.”

성대수술 후 첫 단독 공연
향후 20년 준비하는 시간
진정성 만드는 건 직접체험
힘듦 통해 소중함 일깨워

시대의 소리꾼 장사익(68)씨가 반년간의 공백 후 다시 무대에 선다. 공연 제목은 ‘꽃인 듯 눈물인 듯’. 김춘수 시인의 시에서 따왔다. 우리 인생이 꽃과 눈물의 이야기 펼침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45세의 나이에 데뷔해 벌써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고장 한 번 없던 목이 2~3년 전부터 조금씩 달라졌다. 호흡이 짧아지고 공연에서 물 마시는 횟수가 잦아졌다. 작년 가을 목에서 모래알 섞인 듯 한 소리가 나오더니 올 1월에는 아랫소리가 닫혀 나오지 않았다. 이비인후과에 가서 검사를 했더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소리꾼으로서의 생명이 다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수술을 하고 목소리가 안 나온다고 생각하니 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노래를 잃은 내 삶은 사는 게 아닌 것 같았죠. 이게 얼마나 처절한 상황인지. 이런 시간이 주어져 뒤를 돌아보니 그동안 내가 달려왔던 길이 보였어요. 목소리 좋다는 이야기만 듣고 객기로 살아오다 나무에서 떨어졌네요. 역시 나무에서 떨어져야지 정신을 차려요.”

한편으로는 감사했다. 혹 때문에 목소리가 그랬다는 걸 알게 되니 도리어 마음이 편안해졌다. 혹을 떼어내고 치료에 집중하면 될 일이었다. 수술을 결정하고 올해 스케줄을 다 취소했다. 평소 친분이 있던 호산 스님이 주지로 있는 수국사에 매일같이 나가 태극권 수련을 하기도 했다. 장씨는 수술 후 재활기간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수술 후 보름 동안 말을 한마디도 못하고 지냈어요. 스님들은 묵언수행을 하시지만 나는 무언이에요. 그 시간 동안 남의 소리도 많이 듣고 내 소리도 많이 들었어요. 그 소리가 참 좋더라고요. 부족한 것이 많지만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너무 황홀한 일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듣고 말하고 보고 느끼고 이런 것을 그냥 하는 줄 아는데 그게 아니에요. 정말 소중하고 감사한 일이에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이번 공연의 주제가 잡혀갔다.

“제 콘서트는 주제가 있어요. 이번엔 아프고 나서 주제가 나왔어요. ‘꽃인 듯 눈물인 듯’. 우리 인생이 좋을 때는 꽃같지만 힘들 때는 눈물이 나죠. 힘들고 어려울 때 같이 울어주는 것이 위로라고 생각해요. 노래를 들으러 온 사람들을 대신해 내가 무대에서 우는 거예요. 그게 진정한 위로라고 생각해요.”

 
그는 그렇게 사람들과 함께 하려고 한다.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사람들의 냄새를 맡아 봐야 살아있는 노래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것은 노래에 대한 그의 철학이기도 하다. 그는 “주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다닌다”며 “직접 몸으로 부대끼고 체험했을 때 진정성이 있고 진정성이 있을 때 세상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공연을 할 때는 30분 정도 일찍 간다. 자신이 어디서 노래를 하는지,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은 어떤 사람인지, 같이 연주할 사람은 누구인지 등을 체크하고 자신의 소리가 갈 길을 잡아보기 위해서다. 이것은 그에게 관객과의 소통을 위한 일종의 의식이기도 하다.

생의 한가운데서 노래를 만나 인생이 바뀌었다.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흘렀고 앞으로 20년을 더 활동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부터 소리꾼을 했다면 이런 노래를 부르지 못했을 것”이라며 “소리꾼 되기 전의 경험들이 하나하나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그것이 내 노래의 생명력”이라고 말한다. 길고 긴 어둠의 시간을 잘 보내야 아침을 잘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무겁고 어두운 자신의 노래에 대해 “깜깜한 것을 경험하면 대명천지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며 “죽음, 힘듦, 어려움을 통해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20년을 그는 어떻게 활동하고 싶을까.

“변화를 주라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들어요. 그럴 때 내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생명력은 무엇일까 생각해봐요. 그건 겉에 있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봄여름가을겨울이 있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지금 너무 빠르게 가고 있어 계절을 느끼지 못합니다. KTX만 해도 너무 빨라 밖을 볼 수 없죠. 기차 타는 맛이 없어요. 완행열차를 타면 풍경을 볼 수 있고 걸으면 꽃을 볼 수 있어요. 장애인들은 우리보다 더 느리게 가면서 꽃을 만지고 냄새 맡아요. 느리게 가면 느리게 가는 대로 빨리 가는 사람이 못보는 것을 볼 수 있죠. 문명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것을 취하기도 하지만 흘리는 것도 많아요. 저는 남들이 흘린 것을 잘 챙겨갈 거예요. 사람들이 빨리 가면서 잃어버린 것을 주워 가려고요.”

20년 후 90세가 되어 얼굴에 주름 자글자글한 그가 하얀 한복을 입고 대중 앞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세월의 흐름을 온전히 품어낸 여유로운 몸짓은 그대로일듯 하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바삐 달리느라 잃어버린 것들을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02)396-0514 

조장희 기자 banya@beopbo.com
 


[1357호 / 2016년 8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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