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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임보의 다비(茶毘)

기자명 김형중

영롱한 사리는 불속에서 핀 연꽃
장례식 슬픔 사라지고 환생 축제

스님, 불 들어갑니다!
어서 나오세요!

화火-중中-생生-연蓮

불꽃 속에서 연꽃이 피어난다

법정 스님이 떠나는 날 대나무 평상 위에서 평상시 입던 승복을 입고, ‘비구 법정 본래 자리로 돌아갑니다’ 하였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
대중 외침으로 다비식 시작
다비 거쳐 구도자 삶 완성

큰스님의 장례식 다비식은 장엄하다. 사람은 죽으면 관(棺) 속에 들어간 후에 평가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구도자인 스님은 다비식에서 평소에 스님을 따르던 제자와 신도들이 밤사이 흐르는 눈물의 양이 스님의 법력이요 자애(慈愛)이다. 불꽃이 활활 타올라 하룻 밤을 새고 나면 스님의 영롱한 사리구슬이 불 속에서 피어난 연꽃이다. 그때부터는 장례식의 슬픔은 사라지고 환생의 축제이다.

연화대에서 연잎으로 장식한 스님의 법구가 불길에 타오르면 두 손 모으고 간절한 마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을 부른다. “스님, 부디 부처님이 계신 극락정토에서 왕생하십시오.” “큰스님, 그곳 세상은 불보살님께 맡기시고 곧장 저희 곁으로 오셔서 아직도 밤낮 구분하지 못하고 헤매는 저희를 구제해 주십시오.”

죽어서도 산 사람, 그리운 사람, 꼭 우리 곁에 있어 주었으면 좋을 사람이 부처님·부모님·스님과 선지식이다. 물론 살다 보면 꿈에도 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기는 하다.

죽어서 산 사람이 부활한 사람이다. 거듭 태어난 중생(重生)이 환생이다. 원생(願生)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여 국민장례를 치르는 날, 나는 영구가 지나가는 종로에서 두 손 모아 합장하여 이런 시를 써서 고인의 가신 길을 위로했다.

“생사일여(生死一如) 사중유생(死中有生) 환생구국(還生救國) 화중생련(火中生蓮). / 삶과 죽음이 본래 하나이니 죽음 속에 삶이 있네. 부디 환생 부활하시어 나라를 구하소서. 아, 불길 속에서 연꽃이 피는구나”

우리는 누구나 시인의 시선과 시심(詩心)을 가지고 있다. 시인은 용기를 가지고 그 마음을 표현해 낸 사람이고, 독자는 그냥 생각만 하고 시인의 시를 읽고 감상하는 사람이다. 임보 시인은 한국 시단의 중진작가로서 큰스님의 다비식에 참가하여 화장하는 모습을 보고 나름대로 감동을 받고 그 모습을 그대로 시화한 것이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 빨리 나오세요.” 이렇게 참가 대중의 합창하는 외침과 함께 다비식은 시작된다. 그리고는 내내 정적이다. 불길이 솟아오르고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오고 아침 동녘에 해가 떠오를 때까지 불자들은 두 손을 모으고 합장한 채 그 동안 큰스님의 설법과 자신과의 인연을 주마등처럼 그리며 눈물만 흘린 뿐이다.

아침 동이 트면 큰스님의 영롱한 사리가 쏟아진다. 또 다른 해산(解産)이다. 해탈이요, 환생이다. “불길 속에서 연꽃이 피어난다” 이렇게 한 수행자의 뼈를 깎는 구도의 삶이 완성된다.

임보(林步, 1940~) 시인은 전남 순천 출생으로 본명은 강홍기이다.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충북대 국문과에서 학생들에게 문학을 지도하는 교수 시인이다. ‘운주 천불’ 등 십수 권의 시집이 있는데, ‘금동삼존불감’, ‘보시’, ‘세월에 대한 비유‘ 등 불교를 소재로 하여 읊은 품격 높은 시가 많다. 가장 불교적인 시를 쓰고 산사를 사랑하는 시인이지만 법당 마당 앞에서만 서성이는 방외도인이요 샌님이다.

시인이 평소 애송하는 자작시 ‘꺼욱 꺼욱’에서 “사랑 고백 같은 건 난 안 할 거야 한평생 묻어둔 걸 인제 해 뭘해 그 얘긴 그냥 품고 산천 갈 거야…” 라고 노래한 것처럼 그는 누구에게 확 다가가서 안기는 사람이 아니다. 자아가 강한 시인이다. 첫사랑 사미니를 마음속에 담아두는 시인이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357호 / 2016년 8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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