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6. 무더위는 죽비다-하

기자명 김용규

함부로 쓴 에너지 기상이변으로 되돌아와

처서가 지났지만 더위는 꺾이지 않고 있습니다. 한낮은 여전히 폭염으로 뒤덮이고 사람이 머무는 장소마다 에어컨은 여전히 가동되고 있습니다. 한밤의 더위 역시 기세가 등등합니다. 냉방시간이 길어지고 있는 가정에서는 자연스레 전기료 폭탄을 염려하는 상황입니다. 가정에 과도하게 부과하고 있는 누진 전기요금제의 비합리성과 부당성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더위가 계속되는 것을 제대로 예보하지 못한다며 애먼 기상청으로 노여움이 번지기도 합니다.

폭염을 비롯한 기상이변은 최근 몇 년 동안 전 세계를 넘나들며 인류에게 자각과 자성을 요구하는 죽비를 내리치고 있습니다. 이번 여름 우리나라 축사에서 가축이 집단으로 쪄죽는 끔직한 재해를 입었다는 뉴스, 남해 어느 전복양식장에서는 전복들 대부분이 폐사했다는 뉴스, 농촌에서는 온열병으로 사망하는 노인과 환자가 속출했다는 뉴스 등이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죽비세례는 올해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몇 년 전 어느 겨울에는 전에 없던 폭설이 동해와 남부를 강타해 농가의 비닐하우스를 무너뜨렸습니다. 그 전 해에는 우리 마을 감나무의 80%가 얼어 죽는 혹한을 경험했습니다. 세계 어느 곳은 기온이 섭씨 50℃에 육박한다고 하고, 매년 이어지는 가공할 만한 위력의 태풍 및 토네이도, 여기에 가뭄과 홍수까지 기상이변과 관련한 일들이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죽비를 내리치는 횟수와 강도가 점점 많아지고 또 세지고 있는데도 우리의 각성은 너무도 얇습니다. 우리는 지금 목전의 전기료나 기상청의 예보 무능력 수준을 비판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그에 따른 기상이변은 인간의 생존과 경제 영역을 넘어 지구생명권 전체를 무섭게 위협하는 중차대한 사태임에도 그 위협을 초래하는 존재가 누구인지를 깊게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죽비를 맞은 자리에 통증이 있는데 내가 왜 죽비를 맞았는지를 생각하지 못하는 격입니다.

불가에서 죽비는 탐진치의 요술에 자신을 빼앗기지 말라는 호통이요, 진면목을 대면하기 위해 각성하라는 외부로부터의 호통일 것입니다. 지금 겪고 있는 폭염과 이상 기후, 그리고 대부분의 기후변화 역시 제임스 러브록이 말하는 ‘살아있는 지구 가이아의 호통’으로 읽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향해 내려쳐지고 있는 저 아픈 죽비의 요구를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래전부터 양심 있는 과학자들은 산업혁명 이후, 특히 최근 반세기 동안 인간들의 탐욕적 소비와 과도한 편리 추구 행태가 지구의 온난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고발해 왔습니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가 너무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그 원인은 인간에게서 기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온실가스를 지금 수준에 묶거나 줄일 수 있도록 신속히 대체 에너지를 개발해 보급하고 확산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처방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화석연료로 자기 이익을 추구해 온 자본들은 양심 있는 과학자들의 주장을 번번이 묻어버렸습니다.

왜 전기차의 연구가 지금보다 빠르면 안 됐을까요? 원유산업의 저항이 그것을 늦추었다는 주장에 나는 동의합니다. 유럽의 나라들이 원전을 폐기하고 대체 에너지 계획을 세워 나갈 때 조금 멀리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가까이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목도하고서도 우리는 왜 여전히 원자력발전을 고집해야 할까요? 탐진치의 요술에 자신을 빼앗기고 있는 자들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고 우리 역시 그 요술에 자꾸 끌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구의 모든 물질은 끝없이 순환합니다. 내가 내뿜거나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열기는 반드시 다시 되돌아오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구를 다음 세대에게 빌려 쓰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탐욕스럽게 살다가 이 지구가 망가지면 대체할 행성을 탐색하고 그 방법을 찾아온 과학의 시도는 모두 실패했습니다. 지금도 남극과 북극, 그리고 빙산의 빙하가 속수무책 녹아내리고 해수면은 오늘도 높아져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오늘 내가 쓰는 에어컨이, 비닐이, 농약과 비료가, 승용차가 전기료 폭탄보다 무섭게 나와 다음 세대를 위협할 것입니다. 나부터의 실천이 절실합니다.

김용규 숲철학자 happyforest@empas.com


[1357호 / 2016년 8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