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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하는 것들의 실체

기자명 법상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6.09.05 13:57
  • 수정 2016.09.05 14:00
  • 댓글 4

가끔씩 귀신이 보인다거나, 귀신이 나에게 붙을까봐 걱정이 된다거나, 혹은 밤에 가위에 눌리는 것으로 고민하는 분들이 계신다. 설사 귀신이 내 안에 들어온다 할지라도 그것은 바깥에 있는 귀신이 나에게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내 안의 문제일 뿐이다. 사실 나라는 존재도 무아로서 실체가 아니고, 이 물질세계조차 실체가 아닌데, 귀신의 세계가 실체일 수 있겠는가? 삶이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부 다 삼계유심(三界唯心)이요, 만법유식(萬法唯識)으로 마음이 만든 세계일뿐이다.

두려움이 발생하는 것은
내 안에서 생기는 문제
두려운 문제 생기더라도
바로보고 묵빈대처 해야

가위에 잘 눌리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가위에 눌릴 때 두려워서 빨리 없애려고 힘을 주고 애를 쓰면 쓸수록 오히려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죽이든 살리는 맘대로 해라. 어차피 마음의 장난인데 뭔 일이야 있겠나. 난 모르겠다’ 하면서 힘을 빼고 지켜보면 아무 일도 없다. 모든 경계와 환상은 내 마음의 두려움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내가 두려워함으로써 두려워하는 대상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일 뿐이다. 내가 두려워하지 않으면 두려울 만한 대상은 없다. 사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만한 힘을 지닌 외부의 실체적 대상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귀신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실 물질적인 현실 세계의 온갖 힘들고 괴로운 경계도 마찬가지다. 부도가 났다거나, 남들이 나를 욕하고 모함한다거나, 진급에서 떨어졌다거나, 괴로운 일이 생겼다거나 하는 그런 경계에도 우리가 과도하게 마음속의 에너지를 부여해서 과하게 가슴 아파하고, 휘둘리고, 휘청거리고 그럴 필요가 없다. 내 스스로 그 경계에 무너지면서 괴로워하고 과도하게 반응을 하게 되면 그 외부 경계가 내 두려운 마음을 먹고 덩치를 키우게 된다. 외부의 그 경계 자체가 진짜 힘이 있는 경계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두려워  함으로써 그 바깥 경계를 두려운 경계로 해석한 것일 뿐이다.

사실 모든 경계는 그것 자체에는 아무런 힘도 없고, 실체성도 없고, 괴로움도 없다. 진급을 못 했기 때문에 신나게 다른 직장, 다른 일을 시작할 수도 있고, 부도가 났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욕을 얻어먹었을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그 외부 경계에 내가 힘들어하기로 작정을 하는 순간, 그것이 그 때부터 실체적 힘을 지닌 존재로 덩치를 키우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어떤 경계를 ‘중도적으로 본다’는 것은 과도하게 두려워 도망치려 하지도 않고, 과도하게 애착해 붙잡으려 하지도 않는 것이다. 양극단의 분별을 내려놓고 다만 ‘그것이 일어났음’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일 뿐이다. 분별없이 허용해 주는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온갖 번뇌 망상도 마찬가지다. 질투심, 괴로움, 미움, 화 등이 올라왔을 때, ‘또 왔군!’하고 그냥 미소를 지으며 바라봐 주라. 그 올라온 마음을 진짜라고 믿을 아무런 근거는 없다. 다만 내가 올라온 생각에 힘을 부여한 것일 뿐. 크게 반응할수록 그 반응하는 대상 경계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내 안의 힘을 외부로 넘겨주고 나는 그것에 휘둘리는 존재로 전락시키고 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동안 이 세상을 대상으로 해 왔던 허망한 분별놀이다.

▲ 법상스님
목탁소리 지도법사
부처님께서는 아주 큰 잘못을 한 제자나 외도들에게도 묵빈대처하라고 하셨다. 그 말은 곧 대응하지 말라는 것이다. 대응하면 그쪽에 오히려 힘을 실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경계가 오더라도 그 경계는 나를 집어삼킬 수 없다. 내가 그러기를 허락하기 전에는 말이다. 과도하게 대응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그저 허용해 주고 바라봐 주라. 말로만 묵빈대처가 아니라 내면에서 묵빈대처하라. 그 때 자기 삶의 참된 주인이 될 수 있다.

 

 

[1358호 / 2016년 9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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