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폭염과 미니멀라이프

이제 가을이 왔다. 참으로 무덥고 긴 여름이었다. 그 힘든 시절을 샤를 보들레르의 ‘가을의 노래’ 첫 구절 “이윽고 우리는 차가운 어둠속에 잠기리니 그럼 잘 있거라, 짧은 여름날의 따가운 햇살이여!”를 생각하며 보냈다. 올해 여름은 1994년 이래 가장 무더웠다고 한다. 그 해 여름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우리 집 바둑이가 더위로 죽었기 때문이다. 며칠간 호흡곤란으로 거친 숨소리를 몰아치던 그 녀석은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숨을 거두었다.

올 여름 24일의 폭염 (최고기온 33도 이상)과 32일의 열대야(밤 최저기온 25도 이상)의 찜통더위가 서울을 덮쳤다. 전국적으로 폭염에 의한 피해는 엄청나 더위병 환자는 2000명이 넘었으며 17명이 사망하고 또 700만 마리가 넘는 가축·양식장 물고기가 폐사했다고 한다. 7월 장마의 오보에 이어 곧 누그러지리라는 폭염의 예보가 자꾸 어긋나자 기상청은 오보청(誤報廳)으로 불렸다. 올해 2월 532억원의 슈퍼컴을 구입하고도 오보를 반복하는 기상청에 대한 강한 불만과 질책인 것이다.

우리나라 여름 날씨를 지배하는 것은 고온 다습한 북태평양고기압이다. 금년의 장기간 지속된 폭염은 이 고기압이 물러나지 않고 정체되어있는 데에다 중국에 고기압이 발달해 더운 공기를 우리나라에 공급하기 때문이라고 기상청은 설명한다.

슈퍼컴은 기상예보에 사용하는 수치예측모델의 연산속도를 증가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다. 예측모델에 문제가 있는 경우 슈퍼컴이 예보의 정확도를 개선할 수 없다. 일기예보는 관측자료를 예측모델에 입력해 슈퍼컴이 계산한 결과를 예보자가 해석하는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오보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예측모델의 부적합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예보자가 슈퍼컴이 계산한 결과에 크게 어긋나는 해석을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왜 예측모델이 부적합한가? 필자와 통화한 한 기상학자는 예측모델이 ‘퇴화(degenerate)’하고 있다고 말했다. 즉 처음엔 잘 맞춘 모델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맞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왜 퇴화하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고 했다. 필자는 그 이유가 지구온난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확실하게 진행되는 현상은 지구온난화뿐이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되는 지구온난화를 글로벌 스케일(global scale)로 반영한 수치모델의 개발 없이는 모든 기존 모델의 퇴화는 불가피하리라 생각한다. 글로벌 스케일의 지구온난화를 고려하지 않은 예측모델로 거대한 북태평양고기압이 올해와 같이 한반도 주변에 정체하는 현상을 예측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이 문제를 슈퍼컴이 해결할 수 없다.

지구온난화는 21세기 인류가 해결해야할 가장 중요한 화두이다. 이 문제는 국제적 공조가 필요하므로 지난해 12월 파리에서 195개국이 2021년부터 온실가스 감축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파리협정(Paris Agreement)’에 합의했다. 정부차원이 아닌 민간 레벨에서 지구온난화에 접근하는 방법이 없을까?

최근에 필요 없는 것은 아예 없애고 필요한 것도 줄여나가는 미니멀 라이프족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소박해졌지만 어느 때보다 자유롭고 행복하다고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소위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인생이다. 우리 주변을 보면 사용하지도 않았고 또 앞으로 사용하지도 않을 것들이 수두룩하다. 이것들을 만들고 수송하는데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되었을까?

소욕지족의 미니멀 라이프 운동이 확산될 때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쉽게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지구온난화에 의한 각종 기상이변도 줄어들 것이고 수치모델의 퇴화에 의한 기상청의 오보도 줄어들 것이다. 소욕지족의 불교로 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이기화 서울대 명예교수 kleepl@naver.com
 

[1358호 / 2016년 9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