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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간 부처님 모시듯 대중들에 지극정성 공양 올리다

정수암 공양주 연화성 보살

▲ 인연은 깊고 미소는 넉넉하다.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오랜 세월동안 쌓아온 우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말이 필요없다. 상덕 스님과 연화성 보살은 웃음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가을을 알리는 높은 하늘과 선선한 바람이 불던 9월의 첫째 날, 서울 옥수동 미타사 정수암(주지 상덕 스님) 주위는 이른 아침부터 불을 때기 시작한 공양간의 열기로 훈훈한 공기가 감돌았다.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로 이른 아침부터 경내가 왁자지껄한 이유는 특별한 잔치가 있기 때문이다. 공양주로 35년을 정수암에서 보살행을 실천한 연화성(58) 보살의 송별식이다.

23살 싱그런 나이 서울 정수암서
공양주로 생활하며 35년 인연

외롭고 힘들었던 척추 장애 생활
정수암 대중들과 생활하며 극복

겸손한 생활 속 대소사 챙기며
‘정수암 부주지’로 불려져

상덕 스님 “한결같은 모습 감명”
신도들 ‘정수암 살림꾼’입 모아

정수암 주지 상덕 스님의 눈에는 송별식을 거행하기 한참 전부터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오랜 도반을 떠나보내야 하는 아쉬움 때문이기도 했고 중년의 나이에 고향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유발상좌의 도전이 기특하기도 했다.

상덕 스님과 연화성 보살의 인연은 35년 전인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화성 보살은 23살 싱그런 나이에 상덕 스님이 주지로 주석하고 있는 미타사 정수암에 들어왔다. 이유는 단 하나, 부처님을 모시며 스님처럼 살고 싶어서였다.

연화성 보살은 정수암에 들어서는 순간 “가뭄 속 단비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어릴 적 불의의 사고로 척추가 손상돼 장애인으로 살았다. 키는 더 자라지 않았고 불편한 한쪽 다리로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싫어 수십 년 동안 숨어 지냈다.

하지만 정수암에서 장애는 절대 부끄러움이나 고통이 아니었다. 정수암 식구 어느 누구도 그를 장애인으로 대하지 않았다. 메말랐던 그의 마음에 꽃이 핀 것도 정수암에 들어오면서부터다. 그 꽃들은 어느덧 동산을 이뤘고 향긋한 내음을 퍼뜨리는 듯했다. 장애 이후 느껴보지 못한,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충만함이었다. 연화성 보살은 그렇게 고향 경북 청송을 떠나 정수암의 공양주가 됐다. 상덕 스님 유발상좌로서의 불연도 그렇게 시작됐다.

연화성 보살은 스님에게 세끼 공양을 올리는 것은 물론, 크고 작은 법회를 포함한 정수암의 온갖 일들을 도맡아 했다. 무슨 일이든 맡겨만 놓으면 일사천리였다. 매일 100여명에 가까운 대중공양을 책임지는 일인데도 탈이 없었다. 35년 전 정수암에는 지금보다 2배 많은 스님들이 주석했고 적지 않은 수의 어린아이들이 함께 생활했다. 대중이 많은 만큼 해야 할 일도 많았다. 나무를 해다가 불을 지폈고 나물을 캐 밥을 했다.

▲ 연화성 보살은 신도들 한명 한명에 가방을 선물하며 35년 동안 이어진 인연을 마무리했다.

열댓 명이 넘던 아이들의 밥과 빨래도 오롯이 그의 몫이었다. 하지만 연화성 보살은 한 번도 불평하는 법이 없었다. 그저 조카처럼, 자식처럼 정성을 다하며 때로는 언니가 되기도 했고 때로는 이모 그리고 엄마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연화성 보살의 손을 거쳐 간 동자가 14명이다. 대부분 사회로 나와 성실한 불자의 삶을 살고 있으며 그중엔 출가해 스님이 된 이도 있다.

상덕 스님은 “항상 예의 바른 행동과 겸손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연화성 보살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항상 밝은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던 그였다. 수많은 대중 속에서도 불화를 생기게 한 적이 없었고 곱고 부드러운 언행은 시비를 일으키지 않았다. 음식 솜씨는 물론이요, 바느질 솜씨며 정리정돈이며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정수암 큰살림을 조용하지만 확실히 이행했다.

상덕 스님은 송별식 내내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지난 이야기를 꺼낼 때는 자연스레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피어났다.

“분주한 도심 포교사찰에서 삼보를 봉양하며 늘 사명감과 고운 미소를 잃지 않았지요. 하루하루 공덕의 탑을 쌓아 1년의 역사를 이루고 새로운 1년에 그 1년을 더하며 어느덧 35년의 역사를 쌓아왔네요. 제 나이 서른에 연화성 보살을 만났으니 청·장년 시절 고락을 함께하며 이제 저도 노년에 이르렀습니다. 그동안의 지역 포교와 복지활동에서 연화성 보살의 노고를 빼놓을 수 없지요. 이제 우리 부주지 없이 살림을 어찌 꾸려가야 할지….”

자비보살의 마음으로 크고 작은 일을 담당하다 보니 상덕 스님은 그를 ‘정수암 부주지’라고 불렀다. 신도들도 마찬가지였다. 대를 이어 신행생활을 하는 신도들이 대부분이기에 35년을 한 가족처럼 지낸 신도들은 “1년에 60~70회 진행되는 정기법회와 절기 행사, 각종 신도 행사에 정성스럽고 맛깔스러운 음식을 마련해 준 연화성 보살 덕분에 신행생활이 원만히 이뤄질 수 있었다”며 ‘정수암의 살림꾼’이라고 입을 모았다. 강산이 3번 변하는 긴 세월을 함께한 이들은 이제 정수암에서 연화성 보살을 만날 수 없다는 아쉬움에 끝내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연화성 보살은 35년간의 수고로움보다 모자랐던 점들을 먼저 떠올렸다.

“조금 더 부처님 공양에 정성을 다할 걸, 스님들에게 더 따뜻한 공양을 올릴 걸, 반생을 함께한 혈연 같은 신도들의 손을 놓고 고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아쉽기만 합니다.”

연화성 보살은 “매일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면서도 몸이 불편해 절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고 말했다. 3000배 기도 정진을 하는 신도들을 볼 때면 마음 한구석이 아련해 ‘다음 생에는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그였다. 그는 “다음 생에는 건강하게 태어나서 불법을 전하는 스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머리를 깎고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는 스님이 되고 싶었지만 불편한 몸으로 어찌할 수 없었던 현세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 정수암 불자들은 연화성 보살을 떠나보내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지난 35년을 떠올리며 “항상 정갈한 모습으로 포교생활에 전념하는 스님들의 모습에서 배운 점이 많다”는 연화성 보살은 “35년 동안 절밥을 먹으며 하루하루가 새롭고 즐거웠다.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상덕 스님은 그간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며 35년 동안의 추억을 담은 사진 앨범과 기념품을 선물했다. 신도들도 그동안 수고했다는 의미로 전별금을 전했다. 연화성 보살은 신도들 한명 한명에 가방을 선물하며 35년 동안 이어진 인연을 마무리했다.

송별회 후 연화성 보살은 신도들에게 마지막 점심공양을 대접했다. 그는 직접 쑨 도토리묵에 깻잎나물, 고구마탕, 고추무침 등 정성이 가득 담긴 찬을 내놓으며 35년 공양주의 삶을 마무리했다.

상덕 스님은 연화성 보살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며 과장도 감춤도 없이 맑은 표정으로 함박웃음을 지었다. 송별회를 마치고 상덕 스님과 연화성 보살이 경내를 산책했다. 35년 동안 한 공간에 있었지만 따로 시간을 내어 산책하고 사진을 찍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도반으로서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우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들에게 말은 필요 없었다. 상덕 스님과 연화성 보살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만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의 표정이 가을 햇볕처럼 사랑스럽다.

임은호 기자 eunholic@beopbo.com

[1358호 / 2016년 9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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