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국대 명예교수 해주 스님

한국 화엄과 조사선 교섭은 의상 스님 법성성기 사상에 근거

▲ 해주 스님은 “한국의 화엄사상과 수행 전통은 의상에게서 비롯된 의상계가 그 주류를 이루고 있음은 널리 인정되고 있다”며 “의상의 법성성기 사상과 수증방편은 신라·고려·조선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승되고 발달돼 왔다”고 말했다.

한국의 화엄사상과 수행 전통은 의상에게서 비롯된 의상계가 그 주류를 이루고 있음은 널리 인정되고 있습니다. 의상 스님은 제자들에게 항상 자기의 오척(五尺)되는 몸과 마음인 십불(十佛)을 바로 보고, 본래자리인 법성가(法性家)에 돌아갈 것을 가르쳤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이미 온전한 존재임을 바로 보아서 본래 자리로 되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상 스님의 법성성기 사상과 수증방편이 제자와 법손들에게 전승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온 전체적인 흐름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지엄이 성기교설 처음 주목
의상·법장에 의해 재해석돼
의상은 법성성기로 발전시켜

법계의 제법은 법성의 성이
그대로 일어난다는 게 법성성기
의상 화엄일승법계 이해 핵심

표훈·진정·지통 등 직제자 거쳐
신라 하대에 이르기까지 발전
구산선문 개산되자 선·교 갈등

북악 입장서 화엄교단 통합시킨
균여는 일승법계도 중도설 주목
고려대에 의상화엄 다시 확산

조선대에 일승법계도 다시 주석
화엄전통 끊이지 않고 이어져

‘화엄경’의 세계는 경의 갖춘 제목인 ‘대방광불화엄경’과 구성 내용으로 보면 불과 보살 세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보살도 또한 부처님의 본생보살의 길이면서 우리 성불의 길로서 불세계 장엄행입니다. 그러한 화엄세계인 법계를 화엄사상의 2대 측면인 연기와 성기(性起)의 연성이기(緣性二起)로 일단 크게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성기는 화엄법계가 여래 성품이 그대로 일어난 여래성기이고, 연기는 법계의 존재가 연 따라 일어난 법계연기입니다. 다시 말해서 불세계는 부처님의 성품이 그대로 일어난 성기이고, 보살세계는 연생연멸(緣生緣滅)의 연기입니다. 또 불·보살의 인과세계는 연기이고, 보살도로 불세계에 이르므로 연기의 구극이 성기입니다. 화엄보살도가 불세계 장엄이라서 연기가 성기이며, 불·보살이 다 지정각세간이므로 성기가 연기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화엄경’의 ‘성기품’ 성기 교설에 대하여 제일 먼저 주목한 화엄조사는 지엄입니다. 지엄의 연기와 성기사상은 의상과 법장에게 이어지고 재해석됩니다. 의상은 특히 지엄의 성기설을 이어받아 법성성기로 발달시켜 갔습니다.

의상은 지엄의 성기설에 영향을 입어 연기의 구극이 성기이며 연기가 곧 성기인 수연행을 수용하면서도, 지엄이 정법연기에 성기를 포섭시킨 것과 달리 오히려 성기가 연기를 포섭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의상의 화엄사상은 ‘일승법계도’와 스님의 강설에 담겨 전해지고 있습니다. ‘일승법계도’의 일승은 ‘화엄경’을 뜻하고, ‘화엄경’의 세계가 법계이며, 그 법계를 ‘반시’로 그려 보인 것이 ‘일승법계도’입니다. 따라서 의상의 ‘화엄경’ 관은 크게 일승, 법계, 법성이라는 세 용어를 통해 알 수 있다고 하겠으며, 또 법성으로 일승법계를 담아내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법성이란 단적으로 말하면, 법의 성품이 그대로 일어난 법성성기입니다. 법계 제법은 법성의 성이 그대로 일어난 것이라는 법성성기가 의상의 화엄일승법계 이해의 핵심이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의상은 성기란 일어남이 없음이 성이고 일어나지 않음이 기이니, 기란 곧 법성이 분별을 여읜 보리심 가운데 현전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법의 본성과 같기 때문에 기라 이름할 뿐, 일어나는 모습이 있는 기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의상은 ‘화엄경’으로 안목을 삼아서 오오척법성인 십불을 바로 보는 수증법을 강조했습니다. 십불은 여래의 지혜성품인 여래성이 그대로 현현한 성기법성이니, 십불을 바로 본다는 것은 증분법성의 십불로 출현한다는 것입니다.

의상의 법성성기에 근거한 수증법을 다시 한 번 크게 두 가지로 묶어 부연해보겠습니다. 첫째, 법성을 바로 보고 오척신이 구래부동불임을 바로 깨닫습니다. 다시 말해서 오척법성신이 구래불로서 십불임을 바로 보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불정각해인의 보리심으로 자재하게 십불로 출현합니다. ‘이는 증분법성의 성기이다.’

둘째, 발보리심을 통한 보살행으로 법성가에 들어갑니다. 법성가인 법계안에서 법계를 장엄하는 것입니다. 나를 발심 수행케 하는 부처님은 나의 당래불로서 자체불이며, 발심한 보리심은 오오척신에 본래 구족되어 있는 여래심입니다.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의 보리심으로, 연을 따르는 보살도는 곧 무연의 선교방편으로서 그대로 불장엄행이며 해인삼매의 여의자재한 이타행입니다. ‘이는 성기가 연기를 포섭함이니 연기의 구극이 성기인 수연행이며, 수연하는 진성이 성기법성과 다르지 아니하니 연기가 곧 성기인 중도행이다.’

의상에게는 한 번 강의에 3000명이나 모여들만큼 제자들이 많았습니다. 뛰어난 제자로서 10대제자·4대의영·등당도오자(登堂覩奧者) 등이 회자되었습니다. 특히 표훈과 진정은 의상의 4구게에 대해 오관석과 삼문석 등을 지어 의상에게서 인가를 받았습니다. 4구게를 관법으로 발달시켜 자기의 몸이 곧 법성임을 알게 하고, 오척법성의 중도자리에서 일승법계인 불국토를 장엄하는 자량의 방편문을 펼쳐갑니다. 범부오척신의 세계를 바로보고 마음 쓰는 도리를 관법으로 접근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표훈·진정·지통·도신·상원 등의 직제자를 거쳐, 상원의 제자인 신림, 그리고 신림의 제자인 법융 등 신라 하대에 이르기까지 의상의 법성성기 사상과 이에 입각한 성기관법이 이어지고 발전되어 갑니다. 의상의 4세법손이 활동한 시기인 9세기 신라말에 이르기까지 전승되어간 의상의 법성성기 사상은, ‘총수록’에 수록된 삼대기와 ‘고기’ 등에 담겨 널리 전해집니다. ‘법융기’ ‘대기’ ‘진수기’ 등의 삼대기는 ‘일승법계도’를 수문석한 것입니다.

삼대기에서는 오척법성의 성기심에 의해 나타난 해인삼매 경계가 망상해인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승법계도’ 제목을 3중의 오중해인으로 거듭 해석하고, 일체법계를 망상해인, 즉 깨달음의 증분세계로 포섭시켜서 ‘일승법계도’ 전체를 상을 여읜 망상해인으로 거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증분법성의 법은 내 몸과 마음이고, 성은 법이 원융한 것입니다. 원융법성이란 미진법성이고 수미산법성이고 일척법성이며 오척법성입니다. 금일 오척법성에 근거하면, 미진법성과 수미산 법성 등이 자신의 지위를 움직이지 않고 오척에 알맞게 이루어집니다. 오직 오척인 까닭입니다. 또 제법부동이란 무주법성이며, 다만 오척법성일 뿐 곁에 다른 물건이 없는 까닭에 본래적입니다. 이러한 법성원융은 언어도단(言語道斷) 심행처멸(心行處滅)이니, 일체가 끊어진 이 일승 경계는 망정을 돌이켜 보는 자리라고 합니다.

이상과 같은 의상의 화엄사상과 수행전통은 부석사를 본찰로 한 화엄십찰을 중심으로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런데 신라말·고려초에 이르면 화엄이 남악과 북악 양파로 갈라지고, 중국에서 조사선을 배워온 선사들에 의해 구산선문이 개산되어 선과 교가 갈등 양상을 보이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균여가 북악의 입장에서 화엄교단을 통합시켰습니다. 균여는 의상의 법계관을 근간으로 주측법계관을 세웠습니다. 균여가 도문(圖文)을 연설한(958년) 것이, 후에 ‘일승법계도원통기’로 유통되었습니다. 균여는 ‘일승법계도’의 중도설에 주목하였습니다. 균여는 의상의 중도설을 법성중도의 7중으로 파악하고, 이를 잘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균여의 ‘일승법계도원통기’와 집자 미상의 ‘총수록’을 통해 의상화엄은 다시 고려시대에 퍼져나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 중기 이후로는 의상의 ‘일승법계도’가 선사들에 의해 선적으로도 이해되고 주석되어 갔습니다. 먼저 구산선문이 개산될 때부터 당시까지 갈등관계였던 선과 교가 서로 다르지 아니함을 확인한 보조지눌이 선교겸수·정혜쌍수·돈오점수의 선풍을 선양함에 ‘일승법계도’의 의상사상을 수용한 것입니다.

지눌의 돈오후 점수인 오후목우행(悟後牧牛行)은 단이무단(斷而無斷) 수이무수(修而無修)의 진수진단(眞修眞斷)이며, 이를 화엄교의 측면에서 돈오후의 원수(圓修)라 합니다. 돈오원수의 돈오점수는 화엄성기설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지눌은 불심인 선과 불어(佛語)인 교가 서로 다르지 아니함을 ‘여래출현품’의 여래심 교설에서 확인하였으며, ‘신화엄경론’에서 선교일원인 화엄교의 오입문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원돈성불론’을 짓고 원돈신해문을 시설한 것입니다.

‘원돈성불론’에서는 ‘신화엄경론’의 ‘부동지불(不動智佛)’설을 의용하여 “수심인은 먼저 자심의 일용무명분별의 종자로써 제불의 부동지를 삼은 후에 의성수선(依性修禪)하는 것이 묘(妙)하다”고 강조합니다. 지눌은 ‘신화엄경론’에 의거한 이러한 수행을 성기문으로 보았습니다. 초심범부가 자기 마음의 근본보광명지를 깨닫고, 이 깨달음에 의지하여 닦아서 결국에는 보현행을 이룬다는 것이 원돈신해문의 돈오원수입니다. 이는 의상이 누누이 강조한, 오오척신이 구래 십불 그 자체임을 바로 보아 십불로 출현케 한 것과 통한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의상의 특징적인 증분법성의 성기사상이 보조선의 돈오점수설에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점은 아울러 지눌이 의상의 ‘일승법계도’설을 인용하여 해설한 내용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선과 화엄의 교섭이 이루어지는 수행가풍 속에서 조선시대 설잠(雪岑)은 ‘법성게’를 선적으로 주석함으로써, 화엄과 선의 일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설잠은 법성에 초점을 맞추어 ‘법성게’를 주석했으니, ‘대화엄일승법계도주병서’입니다. 설잠은 서문에서 의상이 처음 ‘일승법계도’를 만든 법성원융의 본래면목이 교망(敎網)으로 인해 상실되었다고 개탄하고, 그 개요인 210자의 종지를 법성으로 파악하고 그 소식을 간명하게 드러내고자 함을 밝히고 있습니다.

‘법성게’가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등의 증분4구로써 대화엄의 중중무진법계를 다 설해 마친 것인데, 의상법사가 자비심으로 연기분을 시설하였다고 하며, 법성외에 따로 일단 진성이 있는 것은 아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법에는 심천이 없으나 깨달음에는 선후가 있기 때문에 중생이 증득할 수 있도록 방편으로 진성을 가작한 것이지 법성을 따로 두고 하는 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후 선수행자의 교과서처럼 중시된 ‘선가귀감’에서, 서산은 간화선을 중심으로 하는 조사선을 펴고 있지만, 교의 수행방편 또한 선수행과 동등하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수행가풍 속에서 ‘법성게’는 그 독송만으로도 공덕이 한량없음을 믿어 널리 유통되었습니다. 영·정조 시대에는 전국 사찰의 대소설재에 ‘법성게’가 독송되지 않는 곳이 없었다고 전해집니다.

‘일승법계도’는 조선시대에 또 한 번의 주석이 이루어졌으니, 도봉유문(道峯有聞)의 ‘법성게과주’입니다. 유문은 ‘법성무이상(法性無二相)’ ‘이사무분별(理事無分別)’로 법계를 원증하도록 한 것이 의상의 종안(宗眼)이라고 피력합니다. 그리고 ‘법성게’ 전체를 연기적 실천의 입장에서 의상의 법성을 드러내려는 해설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 후로도 참선·간경·염불의 삼문수업과 참선·간경(경학)·염불·송주·가람수호 등 오종의 수행가풍 속에서, 의상계 화엄전통은 끊이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 왔습니다.

의상 화엄은 지눌과 설잠의 경우처럼, 조사선과의 교섭이 있었음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화엄이 조사선과 교섭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의상의 법성성기 사상에 근거한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의상이 설파한 ‘행해본처(行行本處) 지지발처(至至發處)’의 불사가 면면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리=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이 내용은 8월31일 동국대 학명세미나실에서 진행된 해주 스님 정년퇴임 회향강연을 정리한 것입니다.

[1358호 / 2016년 9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