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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수행법이 있어야 번창한다

기자명 김정빈

불교는 왜 대학을 세우지 못할까

기독교는 한국에 전파된 이래 여러 대학교를 창립하였다.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 사학만이 아니라 수많은 신학대학교를 설립하여 한편으로는 한국 사회에 기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독교를 선교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불교의 특징은 기독교와 달리
신앙만이 아닌 수행법에 있어
위덕대 설립한 진각종 같은
구체적인 수행법 중심 삼아야

그렇다면 불교는? 1996년도에 위덕대학교가 창립되기 전까지 불교에 근거를 둔 대학교는 동국대학교와 승가대학뿐이었다. 대학교를 넘어 일반 사회에 끼친 결과로 보더라도 기독교의 불교에 대한 우위는 분명해 보인다. 병원과 사회복지 시설로서 기독교를 표방하는 곳은 매우 많지만 불교를 표방하는 곳은 매우 적은 형편이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일까. 먼저, 기독교의 배경이 서양이고, 서양은 동양보다 현대문명이 먼저 발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점만으로 이 현상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필자는 이런 차이가 나타난 중요한 원인은 한국불교가 자신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지 못했고, 따라서 그 장점을 잘 발전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인들은 불교인들을 향해 말한다. “우리는 신을 믿는다. 그렇지만 당신이 믿는 석가모니는 인간, 즉 피조물일 뿐이다.” 이에 대한 불교의 대답은 “당신이 믿고 있는 신은 인간의 마음에 떠오른 상(想, saññā)일 뿐이다. 모든 것의 기초는 마음이다. 따라서 우리는 마음을 탐구하고, 마음을 수행한다.”이다.
불교인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믿지만 그 믿음은 신에 대한 믿음과는 다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우리에게 마음의 법칙을 가르쳐 주시고, 마음을 다스리는 길을 가르쳐 주시는 스승이시다. 이는 불교가 기독교를 이기는 길이 믿음 부분이 아니라 수행 부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교에 호의를 가진 친불교인까지 불교인으로 칠 경우 불교인의 수는 기독교인의 수와 비슷하다. 그렇지만 초파일에 한 번 절에 오는 친불교인을 매주 한 번 교회(성당)에 가는 기독교인과 같은 수준의 종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어떻게 하면 친불교인을 불교인으로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만 하고, 그다음으로는 이미 불교인이 된 분들을 어떻게 하면 기독교인 같은 철저한 신행인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 해법은, 앞에서 이미 말한 수행법에 있다. 불교는 철학성이 강하지만 본분은 철학이 아닌 종교이고, 종교는 인간에게 행복과 안심입명을 주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기독교는 절대자에 대한 신앙을 종교적 성취를 위한 방법으로 삼고, 불교는 마음을 다스리는 구체적인 수단인 수행법으로써 종교적 성취를 위한 방법으로 삼는다.

위덕대학교는 이에 관한 좋은 사례이다. 위덕대학교의 창립 주체는 진각종인데, 진각종은 한국불교의 주류인 조계종에 비해 역사도 짧고, 신자 수도 적다. 종단의 역사와 규모만으로 보면 조계종은 위덕대학교 같은 대학교 열 개쯤을 이미 세웠어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도 왜 조계종은 못하는 그 일을 진각종은 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종단의 힘을 한곳에 모은다는 조직의 특성을 제할 경우(조계종은 중앙집권제가 아닌, 교구 본사가 상당한 힘을 갖는, 세속 정치로 보면 지방 자치단체와 같은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진각종에 뚜렷한 자신들만의 수행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수행법이 뚜렷하면 신행이 깊어지고, 깊어진 신행은 힘으로 나타나며, 그렇게 나타난 힘이 위덕대학교를 창립, 발전시켜온 것이다.

수행법이 분명한 신행 단체가 힘을 나타내는 이런 현상은 한국불교 곳곳에서 발견된다. 조계종 안에서만 보더라도 그렇다. 화두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번창하고 있는 안국선원, 주인공 참구를 중심으로 교세를 넓혀 온 한마음선원 등이 그 사례가 될 것이다. 불교계 밖에서도 아바타, MBSR, 마음 수련, 단학 수련, 요가 등이 구체적인 수행법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필자는 먼저, 이들의 법이 옳고 그르냐는 둘째로 치고, 이들에게 수행법이 있다는 그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법의 옳고 그름 또한 매우 중요하며, 이 관점에서 필자는 앞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필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358호 / 2016년 9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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