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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 허드레 일꾼인가
조기룡 교수  |  chokiryong@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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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9.12  11:5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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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우린 중(僧) 정신이 없다.”

지난해 조계종 총무원장스님은 요즘의 스님들이 출가 승려로서 가치관을 갖추고 있지 못한 현실을 질타했다. 비록 표현은 거칠게 들릴 수도 있지만 오늘날 한국승가에 대한 총무원장스님의 진솔하고 절박한 현실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중 정신’을 갖춘다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이는 스님이 출가 사문(沙門)으로서 여법한 가치관을 갖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사문이란 출가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사람이기에 사문의 가치관은 탈세속적이어야 한다. 즉 스님은 탐냄(貪), 성냄(瞋), 어리석음(痴)의 미망에 싸인 세속적 범부와는 다르게 사물과 현상을 사유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출가 사문으로서의 정신과 가치관은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는다. 초발심을 내는 행자 시절부터 은사와 종단의 체계적·지속적 교육이 이루어져야만 출가 사문으로서의 올바른 정신을 갖출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한국승가의 현실에서 행자 나아가 사미는 어른스님과 선배스님들의 심부름부터 사찰의 온갖 허드렛일까지를 묵묵히 해내야만 한다. 물론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행자와 사미들은 승가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하심(下心)을 키우고, 세속에서 몸에 밴 습관을 버리게 된다. 또한 허드렛일은 잡념이나 망상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방편이자 공동생활을 위해 필요한 울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는 오늘날 한국승가에서 행자와 사미를 허드렛일을 전담하는 존재로만 간주하는 인식과 온갖 허드렛일이 정식 승려가 되는 하나의 통과 관문이 되어버린 현실이다.

이런 인식과 현실 속에서 행자와 사미가 초발심을 지켜서 자신을 차분하게 관조하며 수행자로서의 정신 내지 가치관을 온전히 형성하기는 녹록치 않다. 행자와 사미가 절집안의 아랫사람으로서 필요한 궂은일은 해야 하나 그것이 출가자의 본분사와 전도될 지경에 놓여서는 안 된다. 오죽하면 절생활이 군생활보다 힘들다고 하지 않는가. 출가 사문에 걸맞은 여법한 정신을 갖추기 위해서는 행자와 사미를 허드레 일꾼이 아닌 초발심 수행자로 인정하고 대우하고 이끌어주어야 한다.

근래 한국승가의 최대 고민 중 하나는 출가자 급감의 문제다. 조계종이 출가 홍보포스터 제작, 토크 콘서트, 단기출가학교, 시니어 출가제도 등을 마련해 돌파구를 찾으려 하는 데서 그 문제의 심각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출가자 급감과 더불어 고민할 문제가 행자와 사미의 관리이다.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출가 사문으로서의 원대한 꿈을 품고 출가한 적지 않은 수의 예비 승려들이 허드렛일만 하는 현실에 실망하거나 수행과는 무관한 승가의 군대적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환속한다고 한다.

초발심 출가자는 절 집안의 기능인·생활인이 아닌 수행자로서 키워져야 한다. 사찰경영의 기법을 가르치기에 앞서 출가 사문으로서의 근기를 길러주어야 한다. 출가자의 본분은 주지를 하거나 세속적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생과 사를 넘나드는 수행을 통해 대자유의 깨달음을 얻는 것에 있음을 인식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초발심을 낸 출가자에게 사찰의 살림살이 요령을 긴요한 것으로 가르치는 것은 생사윤회의 고통에 그대로 머무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행자들이 여법한 정신을 갖춘 출가 사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미·사미니를 거쳐 비구·비구니로 이어지는 종단과 은사의 교육이 필요하다. 종단은 종지(宗旨)·종풍(宗風)에 기반한 출가 사문으로서의 정향성(正向性)을 조직적·집단적으로 가르치고, 은사는 일상의 생활 속에서 이를 개별적으로 점검하고 지도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행자와 사미·사미니가 구족계를 갖춘 출가 사문이 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배려는 그들을 허드레 일꾼이 아닌 초발심 수행자로 대하는 인식의 전환일 것이다.

조기룡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 
chokiryong@dongguk.edu
 

[1359호 / 2016년 9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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