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보통 사람을 위한 수행법 요청
34. 보통 사람을 위한 수행법 요청
  • 김정빈
  • 승인 2016.09.12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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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선은 최상근기 위한 수행법

한국불교의 중심은 조계종이며, 조계종의 종지는 종명에 잘 나타나 있다. 조계종이라는 종명에서 조계는 조계산을 의미하고, 조계산은 혜능대사가 주석했던 곳이다. 조계종은 혜능대사의 법에 준거하여 불교를 이해하고 수행한다는 것을 표방하는 종명인 것이다.

화두선은 우수한 수행법이지만
보통 사람은 접근조차 어려워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성적인 바탕의 수행법 필요


혜능대사는 그분의 가르침에, 부처님의 말씀에만 붙이게 되어 있는 ‘경’이라는 글자가 붙게 되었을 정도로 동북아시아 불교에서 매우 높이 존숭되어 온 분이다. 중요한 것은 그분에서 시작된 전통으로부터 화두선이 창안되었고, 화두선이 동북아 불교에서 수행법의 왕좌를 차지해 왔다는 점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화두선 자체는 혜능대사로부터 시작되지는 않았다. 혜능대사는 단지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라는 ‘금강경’ 한 구절을 듣고 갑자기 깨달음을 성취했을 뿐이다. 그런데 혜능대사는 종교적 천재였지만 그런 천재는 흔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종교적 천재가 아닌 보통 사람은 혜능대사 같은 천재를 찾아가 묻게 된다. “저에게 깨달음을 성취하는 방법(수행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화두선은 이런 요청에 대한 응답으로 출현하였다.

선의 전통에서 혜능대사로부터 대혜종고 선사에 이르기까지 3백여 년 동안은 깨달음을 성취하는, 화두선 같은 특정한 수행방법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선을 수행하는 이들은 달마대사로부터 전해져 온 것으로 알려진 선정법을 닦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선정법이 마음을 어떻게 닦는 수행법인지 구체적으로는 알려져 있지 않다.

화두선에서 가장 유명한 화두는 조주 선사의 기연에 근거하여 창안된 ‘무(無)’ 자 화두인데, 정작 조주 선사는 이 화두를 닦은 적이 없다. 바꿔 말해서, 조주는 혜능대사와 같은 천재에 속하는 분이었지만, 대혜종고 이하 화두선을 제창하거나 닦은 분들은 그런 천재가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천재에게는 교재가 필요 없다. 그렇지만 천재가 아닌 이들에게는 교재가 필요한데, 그런 의미에서 화두는 천재가 아닌 이들을 위한 교재(수행법)라고 할 수 있다.

화두선은 말한다. “이 법은 대승불교를 지향하는 보살 근기로도 닦을 수 없는 최상승의 법이다. 이 법은 여우나 승냥이의 법이 아니라 사자의 법이다”라고. 이 말은 필자가 앞에서 말한 보통 사람들이 다시 천재와 보통 사람으로 나뉜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두 없이도 깨달은 이들만이 종교적 천재가 아니라 화두선을 닦는 이들 또한 종교적 천재라고 화두선 지지자들은 주장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화두선은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직관, 마지막까지 직관― 일체의 이성적인 생각과 판단은 물론 감성적인 호오까지 철저히 배제하고, 마치 쥐가 쥐구멍을 파고들듯이, 홀로 높은 산봉우리에 앉은 것 같은 기상으로 화두일념을 밀어붙이는 것이, 그러다 보면 은산철벽이 앞을 가로막게 되는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치지 않고 밀어붙이면 마침내 새까만 통(칠통)이 깨어지듯이 화두가 부서져 천지미분전 본래면목을 깨닫게 됨으로써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이 화두선이라 불리는 수행법인 것이다.

이렇게 어렵고 어려운 법을 어떻게 보통 사람이 수행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이 법은 보통 사람을 넘어선 천재들을 위한 수행법이거나, 직관이 매우 발달한, 그 발달의 정도가 이성과 감성을 무시해도 좋은 수준인 사람들을 위한, 거기에 더해 전문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진 이들을 위한 수행법이다. 이것은 화두선이 일반화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적어도 대혜종고 선사에 의해 제시되었고, 한국에서는 보조·서산·경허·성철 선사들에 의해 표방된 화두선은 그렇다.

필자는 자신이 종교적 천재라고 여기는 수행자가 화두선을 최고의 경절문(지름길)으로 여겨 이 법을 수행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으며, 오히려 권장하고자 한다. 그렇지만 자신이 종교적 천재가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들, 자신은 그런 직관적인 수행법은 도저히 닦을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 이성적인 사고를 존중하고 감성적으로도 반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에게 알맞은 수행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내가 천재인지 아닌지부터 물어야 하고, 거기에서 얻은 답을 기초 삼아 수행법을 선택해야 한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359호 / 2016년 9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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