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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변재천(辯才天)

힌두 음악 여신서 스님들 경전 기억과 학습 돕는 신으로 변모

▲ 엘로라 16번 석굴 카일라사 신전의 전방 좌측 갤러리. 이 갤러리에서 변재천이 강가, 야무나와 같은 강의 여신들과만 서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변재천의 강 의미가 강조된 조각이라고 볼 수 있다. 9세기경.

변재천은 힌두교의 학문과 언어, 음악의 여신인 사라스바티(Sarasvatī)를 가리킨다. 변재천 이외에 묘음천(妙音天) 또는 미음천(美音天)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변재천은 학문·언어·음악 담당
힌두교의 여신인 사라스바티

4세기 후반 성립 ‘금광명경’에
불교의 여신으로 변모해 등장
구전 전통 뿌리깊은 인도에서
암송은 스님들의 중요한 덕목
학문의 여신으로서 면모 보여

한국에는 일본 등과 달리 이 여신에 대한 전통적 도상이 전해지지 않을 뿐 아니라 고려시대에 여러 신중에 대한 도량(道場)이 시설된 것과 달리 변재천 도량이 시설되었다는 기록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이 여신에 대한 신앙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토착화 되었다기보다는 다만 불경과 승려들을 통해 활용되거나 회자될 뿐이었다는 추측을 하게 만든다.

불교 내의 또 다른 대표적 여신인 길상천(吉祥天 Lakṣmī)과 변재천을 비교해보아도 두 여신에 대한 신앙의 비중은 길상천에 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 ‘금광명경(金光明經)’에 등장하는(초기 담무참의 번역본에 한하여) 두 여신의 서술을 비교해보아도 확연히 대조적이었던 것을 볼 수 있다. 길상천에 대해 비교적 구체적인 의례와 주문 등과 함께 공양법이 설명되고 있는 것과 달리 변재천은 그 여신의 특징과 장점만이 소략하게 묘사되고 있다. 즉, 그 경전에서 변재천은 ‘지혜를 주어 경전을 설하는 승려에게 기억력을 회복시키고 경전을 널리 알리는’ 역할로 그려진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변재천은 지혜와 학문의 여신, 그리고 음악의 여신이라는 특징으로 이 경전에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이 여신이 역사 속에 등장한 것은 아마도 인도-이란인들의 공동 문화 속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베스타’에도 동일한 이름이(harahvaitī) 지역의 명칭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어떤 강을 끼고 있었던 지역을 가리켰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라스바티의 단어 속에도 강 또는 연못(saras)의 뜻이 숨어있다. 학자들은 이 단어가 인더스(Indus) 강의 별칭으로 사용됐을 것이라는 추측도 해보지만 천상(天上)의 강, 즉 은하수를 가리켰을 수 있다는 주장을 펴는 학자도 있다. 초기 베다 문헌 속에서 주로 사라스바티는 강(江)의 여신으로 등장한다. 이 여신이 인도학의 중요한 논란으로 떠오른 것은 이 강이 드리샤드바티(Dṛṣdvatī)와 더불어 브라마바르타(Brahmāvarta) 즉 아리아 인들이 살던 성스러운 땅으로 후기 베다 경전에 묘사되어 있기 때문인데, 사라스바티 강이 역사 속에서 실제로 등장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강이 단지 오래전에 말라버렸지만 인공위성 사진판독으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노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여신에 대한 해석은 현대에 들어와 힌두트바(Hindutva 인도보수민족주의)의 역사적 논쟁거리로 변질되어 버렸다.

▲ 카르나타카 호이살라 왕조의 사라스바티(변재천) 조각상. 여덟 개의 팔마다 각각의 지물을 들고 있는데, 그 중 앞쪽에 비나와 경전을 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할레비드(Haḷebīḍ). 12세기경.

이 강이 현실적인 강인지 아닌지는 별개로, 이 신이 초기에 강의 여신으로 그려졌으며 풍요와 번영을 암시하는 존재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도인들에게 중요한 신으로 자리했던 신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강의 이미지 외에, 초기 ‘리그베다(Rigveda)’에 묘사된 사라스바티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이 여신이 베다 찬가 속에서 가끔 ‘창조적 사유(dhī)’를 만들어내는 어떤 정신적 존재로 묘사된다는 점이다. 여기서 창조는, 말이나 언어 또는 신에게 바치는 찬가(讚歌)를 만들어내는 것을 뜻하며 이러한 시적인 언어행위를 생산해내는 근원으로 사라스바티가 그려지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후대에 이 여신이 지식과 학문의 여신으로 등극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하지만, 후대에 사라스바티가 언어와 학문의 여신으로 그려지듯이, 그리고 불교에서 묘음천(妙音天)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이, 사라스바티는 언어(言語 Vāc) 또는 말, 그리고 그것을 대표하는 시(詩)의 여신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이 여신과 언어가 연결되었으며 어떤 근거에서 그렇게 연결되었는지 다소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언어와 사라스바티가 연결되는 신화를 후기 베다문헌 속의 신화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문헌에 따르면 신들(Devas)은 천상에 있는 소마(Soma: 신들의 음료)를 얻기 위해서 아름다운 여인 바츠(Vāc)를 만들어낸다. 그 소마는 간다르바들(Gandharvas)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여인을 유독 밝히는 간다르바들에게 여자를 보내어 유혹하면, 간다르바가 쉽사리 여자에게 소마를 내어줄 것이고 다시 자신들에게 여자가 돌아올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여인 바츠에게 소마를 내어준 간다르바들은 바츠를 소유하기 위해 여인을 좇아왔다. 신들과 간다르바들은 결국 한 여자를 두고 어느 쪽에서 그 여자를 차지할 것인가 내기를 한다. 양쪽에서 여자를 유혹하되 여자가 원하는 쪽으로 가면 이기는 게임이었다. 신들은 노래(gāthā)를 부를 뿐만 아니라 악기(vīṇā)도 연주하여 바츠를 유혹했고, 반면 간다르바는 베다를 읊어댔다. 결국 여자는 신들의 차지로 돌아가는데 이후로 여인 바츠는 비나를 들고 등장하게 된다.

이 신화에서 등장하는 신들이 만들어낸 여인 바츠가 곧 사라스바티라는 것은 비나(vīṇā)라는 그녀의 현악기를 통해 알 수 있다. 물론 이 바츠가 사라스바티라는 것은 후대 푸라나 문헌 속에서 뒤늦게 밝혀지지만 바츠와 사라스바티가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은 훨씬 오래전이라고 볼 수 있다.

▲ 라비 바르마의 사라스바티 회화. 인도의 근대 예술가인 라자 라비 바르마(Raja Ravi Varma)는 인도의 ‘달력 그림’(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이발소 그림’)의 원조라 할 수 있다. 20세기초 리토그라피.

사라스바티 즉 변재천이 불교 속으로 비교적 늦은 시기에 유입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경전뿐만 아니라 조각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아마도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이른 불교 변재천의 모습은 대략 기원후 6세기경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이는 다른 공덕천 등과 같은 여신들이 비교적 기원전에 등장하는 것과는 다소 대조적인 양상을 보인다. 물론 기원전 2세기경 바르후트(Bhārhut) 스투파의 조각 속에서 그 여신의 악기인 비나를 들고 있는 모습의 여인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나, 이것을 변재천으로 보기는 힘들 것이다. 변재천의 소유물로 비나를 서술하고 있는 힌두경전도 6세기경 이후에나 등장하며, 비나가 사라스바티의 전속 소유품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원후 2세기경에 찬술된 ‘불소행찬(佛所行讚)’에 변재천의 이름이 등장하지만, 이 경우는 여전히 힌두 여신의 하나로 열거되고 있을 뿐이며 불교적인 기능과 의미를 갖는 신으로 탈바꿈하지 않은 상태이다. 불교의 여신으로 변모한 변재천은 4세기 후반에 성립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금광명경’이 가장 이른 경우라 할 수 있다. 앞서 말한 바처럼, 이 경전의 경우는 아마도 변재천이 불교적인 맥락으로 유입된 이후로 불교인들의 의례와 공양을 받게 되는 가장 이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구전 전통이 매우 뿌리 깊은 인도 내에서 경전의 독송과 암송은 승려들의 중요한 덕목이자 의무사항이었기 때문에 이 경전에서 별도의 품(品)으로 변재천에 할애해 승려들의 경전에 대한 기억과 학습을 돕는 신으로 변모시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기억력을 높이고 경전에 대한 학습을 증진시켜 속히 지혜를 얻게끔 하는 역할은 힌두교와 마찬가지로 변재천이 학문의 여신으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변재천에 대한 기능적 전통은 현대의 네팔 사람들에게 잘 전해지고 있다. 불교인이건 힌두인이건 학업을 시작하는 학생들이 부모와 함께 사라스바티 신전에 가서 학업에 충실히 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중요한 시험을 앞둔 학생들이 사라스바티 신전에서 기도하는 일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변재천의 기능적 모습은 다른 신들과 혼합되거나 중첩되면서 다른 신의 화신이나 하위 신으로 변화하면서 공존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네팔 불교에서는 지식의 증진과 지혜의 존재로서 문수보살이 신앙되고 있는데 그의 전각에 변재천이 함께 모셔진 경우가 종종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삼국유사’에서도 문수보살과 변재천이 함께 등장하는 일화가 그려지고 있다. 신라 원성왕때 고승 연회(緣會)는 ‘법화경’을 읽고 수행을 한 결과 기적을 일으키게 되는데 그 기적의 소문을 듣고 왕이 그를 찾아 국사(國師)로 삼으려 했다. 그는 그 의도를 알고 미리 은신하고자 했고, 그 도피의 과정에서 노인과 노파로 각각 변모한 문수보살과 변재천을 차례로 만나게 되고 이들의 설득에 따라 국사에 오른다. 이같이 승려의 학업이나 특정한 깨우침의 계기를 제공하는 기연(奇緣) 속에서 문수보살과 변재천은 동일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변재천 혹은 사라스바티의 모습은 조각에서도 다소 뒤늦게 나타나며 비교적 다른 여신의 조각에 비해 그 숫자도 적게 나타난다. 그러나 다른 여신과 동일하게 불교와 힌두교 그리고 자이나교에서 모두 숭배되고 있다.

때로 변재천은 공작새나 염소를 타고 다니는 것으로 그려질 경우가 있지만 대개는 흰 거위를 타고 등장한다. 인도의 현대 회화 속에는 백조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지만, 이것은 전통적인 표현이 아니다. 경전에 변재천의 탈 것으로 공작새가 묘사되는 경우도 있지만 썩 많지 않으며, 그보다는 창조신인 브라흐마 신이 타고 다니는 흰 거위를 그의 부인인 사라스바티가 타고 다니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 더 중요하게도 이 흰 거위는 우파니샤드나 브라흐마나 문헌 등에서 해탈을 지향해가는 개별적 자아를 암시한다. 변재천은 네 개 또는 여덟 개의 팔에 다양한 물건을 들고 있는데 소리의 여신으로서 특징을 보여주는 악기 비나(vīṇā), 지식과 학문의 신임을 뜻하는 경전 또는 책, 그리고 사제의 여신으로서의 특징을 보여주는 물병과 염주 등을 들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심재관 상지대 교양과 외래교수 phaidrus@empas.com

[1359호 / 2016년 9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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