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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의 상징성과 막말

거울은 사유와 상징 대상
불교에선 자기성찰 도구
막말은 구업을 지을 뿐

오늘날 거울은 생활필수품이다. 집안 곳곳에 크고 작은 거울이 있으며, 상점이나 길거리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다. 손바닥 크기의 거울에서부터 외벽 전체가 거울로 된 건축물도 있다. 성별과 연령, 그리고 취향에 따라 몇 분에서 몇 시간씩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거울과 마주하게 된다.

하나 거울이 대중화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서구에서도 거울은 16세기까지 값비싼 사치품이었다. 그런 탓에 대다수 사람은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만 자신의 얼굴과 몸의 상태를 알 수 있었다. 난생처음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는 것이 대단히 신비롭고 경이로운 일임을 말해주는 신화와 민담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사빈 멜쉬오르 보네의 ‘거울의 역사’에 따르면 오랜 세월 거울은 철학과 종교의 사유 대상이었다.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은 곧 신성(神性)이 반사하는 형상”이라 했으며, 아우구스티누스는 “보다 비극적으로 성서라는 거울에 자기 모습을 비춰보는 사람은 빛나는 신의 영광과 자기 자신의 비참함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서구 중세시대에 이르러 거울은 신의 완전성을 드러내는 도구로 여겨졌으며, 수많은 중세의 화가들이 거울을 든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즐겨 그렸다. 17~18세기 거울이 대중화되자 모럴리스트들은 거울이 ‘광기의 시선’을 끌어들일 뿐 아니라 사치와 허영에 불을 지피고, 악령과 죽음을 감추고 있다고 비판했다. 거울이 욕망과 심리적 불안을 대변하게 된 것이다.

불교에서도 거울은 자주 등장한다. 초기불교에서 거울은 출가자가 엄격히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다. ‘오분비구니계본’에는 ‘만약 비구니가 거울을 보면 바일제(참회해야 할 죄)’라고 말하고 있으며, ‘마하승기율’에서는 ‘얼굴빛을 아름답게 꾸미고 거울로써 얼굴을 비추는 것은 위의가 아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승불교, 특히 선에서 거울은 있는 그대로를 비추는 ‘청정한 불성’으로 간주됐다. 그런 이유로 거울은 선종 5조인 홍인대사의 제자인 신수대사와 혜능대사가 대결하는 게송에 등장하는 것을 비롯해 ‘육조단경’ ‘보장론’ ‘마조어록’ ‘오조법연어록’ ‘서장’ ‘조계진각국사어록’ 등 수많은 어록에 나타나고 있다. 먼지와 얼룩이 끼지 않은 맑은 거울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춰주기 때문이었다.

미국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와 필리핀 대통령 로드리고 두테르테를 비롯한 정치인들이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범죄자들의 시체를 빨랫줄에 널어버리겠다” “(가톨릭 교황에게)개XX 집으로 돌아가라고 해” 등 조폭 언어를 방불케 한다. 현실에 좌절하고 분노하는 이들에게 기름을 들이부음으로써 지지율을 끌어올리겠다는 술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최고의 지성이라는 대학교수가 “한국불교는 변태불교” “조계종은 늘 약자의 등에 빨대 꽂고 돈만 보면서 산다” 등 차마 입에 담기도 민망한 막말이 담긴 책을 펴내 물의를 빚고 있다.

▲ 이재형 국장
불교설화에서는 종종 업경대(業鏡臺)가 나온다. 지옥에 있는 염라대왕이 중생의 죄를 비추어 본다는 거울이다. 업경대는 선어록의 거울처럼 사바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이 청정하게 살 것을 강조하기 위한 상징이다. 어떤 경우라도 막말은 전혀 불교적이지 않으며, 스스로 구업을 지을 뿐이다. 해당 교수가 정말 불자가 맞다면 타인의 행위를 비난하기에 앞서 업경대에 서있다는 자세로 스스로의 허물부터 참회할 일이다.

이재형 mitra@beopbo.com


 

[1360호 / 2016년 9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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