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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자연에 겸손하기

함께 흙 매만지며 놀면 생명존중 가르칠 수 있어

9월12일 밤 8시32분에 규모 5.8의 지진이 경주를 엄습했다. 땅이 심하게 요동치며 좌우로 흔들리는 지진 앞에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몸을 피하는 것만이 전부였다. 집을 빠져나와 아파트 쉼터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겁에 질린 표정들, 신발도 신지 못하고 맨발로 급히 뛰어나온 엄마와 어린 딸의 모습은 때마침 내리는 가랑비에 젖어 더욱 안쓰러워 보였다. 단 몇 초에 불과한 지진의 위력에 인간은 정말 무력한 존재임을 실감하며 사람들은 그저 스마트폰에 매달려 정부의 소식만을 애타게 기다릴 뿐이었다. 과연 인간과 자연, 그리고 땅의 관계는 무엇이기에 이렇듯 예고도 없는 재앙을 일으키는 걸까?

무기력한 인간 알게 한 지진
아동교육에 자연 소중함 중요
법고소리에 담긴 의미 새겨야

독일의 교육철학자 프뢰벨은 “자연이 인간을 교육한다”라 하였으며, 아동교육철학자 루소도 “자연으로 돌아가라”와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무슨 의미인가? 한마디로 자연은 인간생명의 발생원이니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보고 배우라는 뜻이다.

아동은 이 자연을 무대로 산과 들과 바닷가를 뛰어다니면서 즐겁게 노는 사이에 마음과 몸을 키우고 오감을 발달시키며 우주의 질서와 삶의 방법을 터득해간다. 이처럼 인간은 땅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아이들이 건강하고 밝게 자라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흙이 오염되지 않고 깨끗해야만 한다.

이런 우주의 이치를 철저히 파악하신 분이 부처님이시다. 자연을 인간과 분리하지 않는 통합된 하나의 생명체로 파악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불교는 인간의 몸을 자연의 요소와 일치시킨다. 이를테면 인간은 지수화풍의 4대 요소로 이뤄졌다. 몸에서 근육이나 뼈의 단단한 부분은 흙(地)에 해당하며, 육체가 소멸되면 흙으로 돌아가 자연물질로 귀속한다는 연기론적 관점을 갖는다. 인간의 몸처럼 흙도 살아 숨 쉬며 역동하는 에너지이다. 우리가 흙을 소중히 여기며 같이 살아가야할 이유다.

그런데 어떤가? 인간은 흙을 오염시키는 온갖 행위를 서슴없이 저지르며 학대한다. 각종 화학제품들로 흙을 오염시키고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산을 뚫고 토양을 파헤치는 폭발을 일삼는가 하면 탐욕에 가득 찬 잔인성은 핵실험으로 드러나니 토양이 몸살을 앓고 병이 든다.

자연은 정직하다. 현재 상태를 잘 보이기 위해 꾸미거나 덧칠하지 않고 존재 그대로를 정직하고 솔직하게 보여준다. 그러므로 자연이 보여주는 각종 재앙은 지구가 위험 수위에 다가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징표이며 인과응보가 아닐까 한다. 

우리는 지금 자녀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적어도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능력이라고 가르치진 말자. 자연이 보여주는 아픔에 귀 기울이며 왜 내 몸처럼 자연을 아끼며 소중히 여겨야 하는지를 알게 하자.

“흙에서는 무엇을 얻을 수 있지?” “좋은 흙을 가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좋은 흙을 구분하는 법은?” 등에 관해 토론한다면 훌륭한 환경교육이 된다. 아이들은 이런 경험을 통해 흙에도 고유한 냄새나 색이 있으며 향긋한 냄새가 나는 좋은 흙에서 땅속의 생명체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배우게 된다.

사찰에서는 매일 새벽시간 ‘법고’를 쳐서 땅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일체 생명체의 괴로움을 덜어주고 안심시켜주는 의식을 갖는다. 철저히 일체만물의 생명을 존중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불교의 차원 높은 생명관이다. 우리가 의지해 살아가는 지구에서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천재지변에 맞서 그나마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부처님의 말씀처럼 자연과 조화하며 겸손한 삶을 사는 것이라 믿는다. 

황옥자 동국대 명예교수 hoj@dongguk.ac.kr
 

[1362호 / 2016년 10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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