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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플라스틱 생수병의 불편한 진실

기자명 최원형

생수병 대신 물통 휴대는 생태계 지키는 첫걸음

찬 이슬이 맺힌다는 한로가 지났다. 그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폭염도 시간 앞에선 어쩔 수 없이 밀려나는 걸 보며 무상함을 느낀다. 아침, 저녁 일교차가 벌어지는가 싶더니 벌써 단풍 소식이 산꼭대기에서 전해져온다. 봄에 떠들썩하던 벚꽃 행렬이 더운 여름 내내 주춤하다 단풍으로 그 행렬을 이어갈 것이다. 나들이 철이 되면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보다 곳곳에 수북이 쌓일 쓰레기가 내게는 먼저 떠오른다.

페트병 하나 만드는 데
막대한 양 석유 사용돼
무분별한 지하수 개발로
하천 마름 현상도 심화

걱정도 팔자라는 이들도 있겠으나 실상이 그렇다. 어릴 적 소풍 다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배낭과 물통은 소풍의 필수품이었다. 물통은 나들이 때만 쓰다 보니 일 년에 겨우 몇 번 빛을 보았다. 소풍 준비를 할 때 내가 했던 건 찬장 어딘가 깊숙이 박혀 있던 물통을 찾아 깨끗이 물에 헹궈 말려놓는 일이었다. 소풍가서 먹을 것들이며 김밥 재료를 준비하느라 분주하신 어머니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게 바로 그 일이었다. 이른 새벽 김밥을 싸느라 분주한 부엌보다 더 먼저 잠이 깬 나는 물통에 물을 담아 배낭 곁에 두었다. 뛰어다녀도 물통에 물이 넘치지 않으려면 얼마만큼 담아야하는지 학년이 올라갈수록 정확해졌다. 어떤 해에는 물통을 소풍가는 당일 아침까지 못 찾아 집안이 발칵 뒤집혔던 기억도 있다. 소풍이 끝나고 며칠 뒤 예상치 못했던 곳에 물통이 버젓이 놓여있는 걸 보고는 억울해했던 기억도 있다. 그러고 보니 물통에 얽힌 기억들이 꽤 된다. 그만큼 나들이에 물통은 필수이기도 했고 요즘처럼 물을 돈 주고 산다는 것은 상상 밖의 일이었던 시절 얘기다. 소풍 길은 언제나 들떴다. 교실 밖에서 친구들과 함께 보는 풍경은 매일 보던 풍경이어도 달리 보였다. 친구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다 앞 친구와 거리가 한참 벌어지면 보조를 맞추기 위해 뛰어야 했다. 그때 어깨에 맨 물통에서 출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를 듣고 친구들과 또 까르르 웃기도 했다. 어쨌든 우리는 물을 싸가지고 다녔다. 그게 불과 20여년 전까지의 풍경이다.

내가 생각할 때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아까운 쓰레기는 플라스틱 생수병이 아닌가 싶다. 500ml 생수병 하나를 비우는 데는 불과 몇 분이 걸리지 않는다. 특히 갈증이 나서 마실 때는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쓰레기 하나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게다가 거기엔 깨끗한 물이 담겨 있던 통이 아니던가. 뭔가 더렵혀질 틈도 없이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플라스틱 생수병을 볼 적마다 늘 죄의식에 사로잡히곤 한다. 이런 죄의식의 배경에는 생수병이 그저 생수병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PET병이라 불리는 생수병은 석유화학제품이다. 500ml 페트병 하나 만드는데 125ml의 석유가 쓰인다. 페트병에 1/4을 채울 수 있는 양이다.

놀랍지 않은가? 플라스틱 생수병은 휴대하기 편하고 언제 어디서나 물을 마실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그러한 장점이 있는데도 최근 캐나다, 미국 등지에서 플라스틱 생수병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들이 통과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대신 이들은 곳곳에 음수대를 설치해서 불편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들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플라스틱 생수병에는 불편한 진실이 몇 가지 숨어 있다. 플라스틱이라는 재질 특성상 장기간 그곳에 내용물을 보관하거나 유통과정에서 고온에 노출될 경우 환경호르몬이 발생할 수 있다. 거기다 생수를 취수하는 곳이 어떠한지, 과연 생수가 깨끗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 페트병에 담긴 생수에 대한 규제는 정부당국이 하지 않고 생수 회사의 자체 검증에 맡겨두기 때문이다. 정부당국은 단지 생수업자가 수질분석을 하는지 점검만 한다. 반면 수돗물은 정부당국의 면밀히 관여하고 있다. 과연 무엇이 더 안전한 물일까?

물은 공기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공공재다. 세계 최고의 물 전문가 피터 글렉은 생수가 더 안전하다는 식의 광고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엄격히 관리, 정수한 수돗물을 불신하도록 부추겼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한 마디로 생수에 대한 신뢰는 환상에 기반한 것이라는 얘기다. 무분별한 지하수 개발로 지하수위가 매년 낮아지면서 하천이 마르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생수취수 역시 그 한 원인으로 꼽힌다.

나의 소비가, 생활습관이 주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매순간 알아차린다는 것은 곧 부처님의 가르침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일이다. 올 가을 단풍놀이에는 생수병 대신 물통을 준비해보는 건 어떨까? 자연을 감상하고자 떠나는 발걸음인지 오가는 길에 쓰레기로 발자국을 남기는 발걸음인지, 내 발밑의 허물부터 챙겨볼 일이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362호 / 2016년 10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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