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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부산 초량동 금수사

민족 아픔 보듬은 정신 계승해 힐링도량으로 도약

▲ 부산 금수사는 한국전쟁을 계기로 매년 순국선열 추모재를 봉행하는 호국사찰이다.

부산 초량동 구봉산 금수사(주지 상천 스님)에 조용한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부산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른 초량지역 변화의 흐름에 발맞춰 휴식과 힐링 공간으로 새롭게 거듭나고 있다.

법홍스님 원력으로 기도도량 우뚝
한국전쟁때는 피난민 지원에 앞장
염불이만일회 구성 등 마음치유도
지역민 함께하는 ‘힐링공간’ 발원

초량사람들 기억 속 금수사는 호국도량이다. 금수사는 예부터 국운과 관련된 호국사찰로 그 역할을 다해왔다. 역사적으로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난 뒤 사명대사가 조선인 포로의 귀환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 머물며 기도했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금수사가 현재의 사격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해인사 법홍 스님이 주석하며 기도의 전법의 도량으로 자리매김하면서다.

역사 속 호국도량 금수사가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1950년 6·25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그야말로 부산 전역은 피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피난민들의 처절한 삶을 목도한 법홍 스님은 그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자 오갈 곳 없는 이들에게 절 마당을 내주었다. 이내 소문이 퍼지자 금수사에는 도움을 호소하는 이들의 발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스님은 교육청 소유 산림 1만2000평을 불하받고, 주변 땅 1000평을 매입해 모두 피난민들의 생활공간으로 제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산으로 피난 온 초대 부통령 이시형 박사가 찾아왔다. 금수사의 보살행에 감화된 이 박사는 국난극복의 염원을 담아 금수사에 윤봉길, 안창호, 안중근 등 애국지사의 위패를 모셔 달라 간청했다. 금수사는 애국지사 22인의 위패뿐 아니라 만해 스님 등 민족대표 33인의 위패까지 모시고 이들을 위한 추모법회를 봉행했다. 순국선열 추모법회는 금수사의 전통으로 자리 잡아 매년 원효 스님 탄신일에 맞춰 봉행되고 있다. 현재 금수사가 호국도량으로 불리는 이유다.

또한 금수사는 초량사람들에게 마음 따뜻한 이웃으로 기억된다. 전쟁의 포성이 멈춘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들은 구봉산 줄기를 따라 마을을 형성했다. 전쟁의 고통과 아픈 기억, 그리고 가난과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따뜻이 감싸준 이웃이 바로 금수사였다. 금수사는 피난민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백양사 강백 설호 스님을 초청해 100일 화엄법회를 여는가 하면, 염불이만일회(念佛二萬日會)를 조직해 피난민들의 고단함을 위로했다. 1959년 입재한 염불이만일회는 1986년 1만일을 회향하고, 2014년 2만일 회향법석을 가졌다.

그렇다고 맑은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차례 몰아친 폭풍에 바람 앞 등불과 같은 위기를 겪기도 했다. 원효종 종정이자 중심이었던 법홍 스님이 2003년 입적하자 종단 내분이 발생했고, 총본산 역할을 수행했던 금수사는 각기 정통성을 주장하는 이들의 각축장이 됐다. 이후 총본산 금수사를 차지하기 위한 시도가 10여년간 계속됐고, 부침을 겪는 과정에서 잠시 산문이 폐쇄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혼돈의 금수사가 안정을 되찾은 것은 현 주지 상천 스님이 부임하면서부터다. 우선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데 진력했다. 끊어진 기도소리와 목탁소리가 다시 이어지게 했고, 도량을 정비해 옛 금수사의 모습을 회복했다. 소박하지만 어려운 이웃을 위한 보시활동을 재개하는 한편, 다도교실, 불교대학, 경전학당을 열어 초량사람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았다. 금수사의 노력에 초량사람들은 동참으로 환영했다. 외부적 요인으로 잠시 멀어지긴 했지만 금수사는 여전히 초량사람들의 우리절이었다.

지금 금수사는 초량사람들 속으로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한 조용한 변화를 완성해가고 있다. 부산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구봉산 편백나무 군락지에 위치한 입지적 장점을 살려 다도와 명상, 휴식이 가능한 힐링공간 조성불사를 추진하고 있다. 또 장학재단을 설립해 지역 청소년들을 지원하고, 지역 어르신 점심공양을 위한 무료급식소 운영도 계획 중이다. 400여년 구봉산에 기대 살아온 사람들의 귀의처 금수사는 앞으로도 영원한 동네절로 초량사람들과 함께하길 발원한다.


 

“호국교육·나눔실천, 부산 대표사찰 발원”

부산 금수사 주지 상천 스님

 
“최근 몇 년의 부침에도 한결 같은 마음으로 금수사를 지켜준 지역 주민들과 불자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제 해야 할 불사는 금수사가 받은 애정을 다시 되돌려드리는 일입니다. ”

부산 금수사 주지 상천<사진> 스님의 굳은 각오다. 스님은 “법홍 스님이라는 큰 그늘아래 성장한 금수사가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삼독심(三毒心)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수행과 기도, 회향이라는 불교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작은 것이라도 나누면서 함께하는 도량으로 일구겠다”고 말했다.

특히 연내 착공을 목표로 추진 중인 힐링공간 조성불사에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스님은 “힐링공간은 다도와 명상, 휴식이 가능한 현대적 시설을 갖춘 열린공간이 될 것”이라며 “또한 한국불교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관을 조성해 부산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국도량으로서의 역할도 강화할 계획이다. 스님은 “장경각을 조성해 금수사가 소장중인 해인사 팔만대장경 인경본을 공개하고, 애국지사의 위패를 모신 호국영각도 여법한 공간으로 다시 건립할 예정”이라며 “이를 통해 금수사를 호국정신을 배우는 교육처이자 한국의 불교와 문화, 역사를 만날 수 있는 지역의 명소로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상천 스님은 “금수사 일대는 최근 산복도로 정비와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외형적으로 크게 바뀌었지만, 그 속에 살고 있는 초량사람들의 삶은 변하지 않았다”며 “무엇보다 지역민들의 마음을 살펴 보듬고 나누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상천 스님은 1989년 법홍 스님을 은사로 유발승으로 출가했다. 1999년 원효종 유발승 대표를 역임하고, 향운 스님을 은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현재 부산 금수사 주지, 원효종 사회부장, 한일불교문화교류협의회 이사 등을 맡고 있다.

부산=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1363호 / 2016년 10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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