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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살상을 금하노라

현대 동물권 논의 서구 주도
근대 이전엔 전혀 다른 상황
첫 동물권 제정자는 아쇼카왕

오늘날 동물의 생명권에 대한 논의를 주도하는 것은 서구사회다. 전통적으로 서구에서는 인간이 신으로부터 모든 동물을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고 여겨왔다. 근대철학의 출발 이후에도 동물은 기계와 같다는 인간중심의 관념이 뿌리 깊게 이어져 왔다. 그럼에도 동물 권리의 실현을 위해 이론을 개발하고 과격한 시위를 마다하지 않은 것도 서구였다.

1641년 매사추세츠에 식민지를 건설한 미국 청교도들은 “어떤 사람도 인간을 위해 잡혀 있는 동물에게 잔혹한 힘을 발휘해서는 안 된다”는 법규를 만들었다. 1822년 영국에서는 동물학대를 금지하는 법안이 등장했고, 이 법은 유럽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1987년 이탈리아에서 ‘동물의 고문 등 잔혹한 행위는 처벌 대상’이라는 판결은 동물보호운동의 큰 성과였다. 오늘날 서구에는 수십만 명이 가입된 동물보호단체들이 있고, 사냥, 동물싸움, 생체실험까지 반대하는 운동이 광범위하게 확산돼 있다.

이것만 보면 동물권은 서구의 지성들과 운동가들이 발전시켜온 결과로 보기 쉽다. 반면 동양은 여전히 야만의 문화로 인식하는 경향이 적지 않다. 이러한 견해는 근대 이후에 국한해 옳을 수 있다. 서구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기 이전 동양의 동물관은 현대와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인류사에서 동물의 권익을 옹호한 법을 처음 제정한 인물은 기원전 3세기 때 인물인 아쇼카대왕이다. 불교신자며 인도 첫 통일제국의 건국자였던 그는 ‘아쇼카왕 비문’에서 확인할 수 있듯 ‘어떠한 생물도 제물로 바치기 위해 도살되어서는 안 된다’는 법을 명문화했다. 크고 작은 제사와 집회 때마다 수많은 동물의 목숨을 빼앗았던 당시 상황을 보면 참으로 파격적인 법이라 할 수 있다.

동물을 불교의 자비로써 끌어안으려는 노력은 동아시아에서 빛을 발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살생금지령이다. 신라에 불교를 처음 공인했던 법흥왕은 서구보다 1000년 이상 앞선 529년 신라 전역에 살생을 금지시키고 그물 등을 소각시키도록 했다. 불심이 깊었던 백제 법왕도 즉위 원년(599)에 살생금지령을 내려 수렵과 어로행위를 못하도록 했고, 이러한 전통은 고려의 도축금지령으로 이어졌다. 한국의 음식문화에 유독 나물이 발달한 것도 불교의 전통에서 비롯됐다는 견해들이 많다.

▲ 이재형 국장

 

일본은 더하다. 고대불교의 융성을 이끌었던 덴무천황은 불살생의 계율을 정착시키기 위해 살생금지 및 육식금지령을 내렸다. 그리고 육식금지령은 메이지시대인 1872년까지 무려 1200여년간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일본 스님들이 ‘대처육식’으로 급격히 바뀌어갔던 것도 이때부터다.

살생금지령은 자비를 내세워 백성들을 굶주림으로 내몰았다는 비판이 있다. 그렇더라도 모든 생명을 존중하려는 이상은 높은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오늘날 보다 바람직한 동물권 담론과 법제정에도 당시 살생금지령은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 첫 단계는 동아시아 정신과 음식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살생금지령에 대한 연구다. 그렇지만 학위논문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연구 논문 한 편조차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우리 불교학계의 관심이 절실하다.

이재형 mitra@beopbo.com

[1364호 / 2016년 10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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