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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문화대학원대 교수 서광 스님

“인생은 소유가 아닌 경험…삶을 음미하는 만큼 풍요로워져”

▲ 서광 스님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은 외부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내면에서 일어나는 자성”이라며 “내면의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확신이라는 꽃을 피워낸다”고 강조했다.

오늘 이야기의 주제는 ‘심플하게 사는 법’입니다. 먼저 고백할 게 있습니다. 저는 어떻게 사는 게 심플한 것인지 잘 모릅니다. 아마 복잡하게 살고 있어서 그러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대화하며 어떻게 사는 게 심플한 것인지를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청년들 고민은 취직·사람 문제
외로움 느끼며 좌절·방황해도
‘인’이라는 씨앗 심고 기다리면
끝내 찬란히 빛나는 태양 만나

극한 상황에서 나오는 행동은
전적으로 사람의 의지에 달려

경쟁의식에 사로잡혀 시기하며
스스로를 소비의 도구로 사용
각자가 다른 건 다양성의 발현
존재 고귀함 우열 가릴 수 없어

세속적으로 볼 때, 저는 내년에 환갑을 맞습니다. 20~30대인 여러분들과는 성장해온 환경이 많이 달랐습니다. 현재 처한 조건도 다릅니다. 가장 최근에 20~30대 청년을 접했던 게 2008년 동국대에서였을 것입니다. 16년 동안 미국생활을 했고 IMF사태도 경험하지 못해 한국생활에 익숙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나름대로 학생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음악을 들으며 적극적으로 대화해본 결과 2가지 고민을 알게 됐습니다. 취직과 사람 문제가 그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이 당면하고 있는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 되는 부처님 가르침이 무엇일까를 생각했습니다. 인간이 현실을 살며 겪게 되는 문제에 대해 시대·공간을 떠나 통용될 수 있는 본질적 해결법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때 저는 스스로를 돌이켜봤습니다. 내가 20~30대일 때 불교를 통해 무엇을 얻었을까, 어떤 가르침이 나에게 유익했었나를 말입니다.

불교는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을 발견하게 해줍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잘 이해한다면, 어떤 길을 어떻게 가야할지 막막할 때 길이 보일 것입니다. 처음에는 강한 믿음에서 시작했지만, 다음에는 통찰이 됐습니다. 당시 제가 불교를 통해 얻은 것은 이러한 믿음, 이러한 통찰이었습니다. 저는 학창시절에 교회를 다니고 성당도 다녔지만 불교를 만나며 ‘나랑 참 잘 맞구나’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인생의 주인공은 너’라는 가르침을 얻은 것입니다. 주인공일 뿐 아니라 기획도 내가 하고 연출도 내가 하고, 거기다 열연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이 가르침은 저에게 확신이 됐습니다. 그러나 기획, 연출, 열연을 모두 스스로 한다는 것은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 대가는 지독한 외로움입니다. 굉장한 고독, 앞이 보이지 않는 암흑, 끝없는 불안, 마치 어둠 속 터널에 놓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수행을 하며 어둠에 잠긴 터널이라도 반드시 끝이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터널이 끝날 즈음에는 어른들이 말하고 요구하는 그런 최선의 결과가 아니라, 내 고통과 내 방황, 내 고독의 열매를 만나게 됩니다. 불교에서는 ‘인(因)’을 중시합니다. 내가 기꺼이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하고 역할을 하는 것은 내가 인을 심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이 외롭고, 때로는 좌절하며 방황도 하겠지만 그런 과정이 언젠가 끝나면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을 만나게 됩니다. 매미는 땅속에서 7년을 기다린 끝에 날개를 달고 날아오릅니다. 똥파리도 구더기 시절을 보내다 날개를 다는 그게 바로 최고의 순간입니다. 내가 가진 잠재능력은 시간을 통과한 후에야 비로소 빛이 나는 것입니다.

모두에게는 그런 순간, 그런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를 위해서는 일정 시간 동안 고통, 방황, 외로움을 피할 수 없습니다. 20~30대인 여러분이 그것을 피하려 하는 것은 진흙탕에서 계속 허우적거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늪에서는 빠져나오려고 허우적거리면 더 깊이 빠져들게 됩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발버둥 치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잠깐 동안만 숨죽인 채 기다려 보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시야가 트이며 어디로 가야할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늪 혹은 안개 속에 있을 때, 가만히 있다는 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개인마다 나름의 방식이 있겠지만 제 경우 독서와 사색이었습니다. 정말 가만히 있는 게 아니고, 독서와 사색을 하며 때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나는 수행자가 될 것도 아닌데 스님 이야기는 너무 동떨어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스님 생활이라고 해봐야 여러분들과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굉장히 나약하던 중학생을 지도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학생에게,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내면에서 확신이 나올 때까지 매일 아침 운동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학생은 6년 동안 매일 1시간씩 검도를 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당시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운동도 좋고, 독서도 좋고, 기도, 염불, 사경, 절도 좋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불안해질 뿐입니다. 자신에 대한 확신을 키우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성취를 위한 게 아니라 나 자신과 대화하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 말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온 몸으로 하는 것이지 머리로 하는 게 아닙니다. 남이 모르는 나만의 시간을 반복적으로 쌓아가다 보면 엄청난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인생을 사는 데 거름이 되고 힘이 되고 무기가 됩니다. 이건 굉장한 자원입니다.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건 경쟁입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운동을 잘했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시합에서 그 친구를 이겨 1등을 해야겠다고 열심히 달렸는데, 그 친구도 저도 아닌 엉뚱한 친구가 1등을 했습니다. 허무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허무함은 경쟁의 구도에 들어갔을 때,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는 계기가 되어줬습니다. 한국사회가 강요하는 경쟁 구도에서 벗어나면 수치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이후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학업성적과 관련해 느낄 수 있는 수치심도 그러한 경우입니다. 그때 저는 제 가슴에 물어보곤 했습니다. 내가 인생을 사는 데 있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유익한 것인가. 아니라면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저에게 질문을 해도 모르면 모른다고 했습니다. 친구들이 성적표를 숨기려 노력할 때,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재미있었던 것은, 친구들이 저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부러워했다는 것입니다. 제 성적 역시 나쁜 편은 아니었는데, 긴장하지 않고 발버둥 치지 않으니 오히려 잘 나올 수 있었습니다.

빅터 프랭클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에는 나치의 강제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의 일화들이 나옵니다. 저자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 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설명합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 자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유, 통찰은 그것에 이르는 힘이 되는 것이고, 불교에서는 참선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다섯 가지 항목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질주를 이어왔지만, 사실 다른 답도 가능합니다. 가슴에 물어보면 됩니다.

경쟁은 친구들과 하는 게 아니라 자신과 하는 것입니다.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내일의 나와 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성취하거나 소유하는 게 아니라 경험하는 것입니다. 체험하고 음미하는 만큼 삶은 풍요로워집니다. 20~30대인 여러분들은 무엇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살든, 결국에는 각자 자기의 세계를 만들어가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소통이 가능해집니다. 나와 다른 상대를 수용하고 인정하는 단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부처님은 필요 없는 인연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누구를 만나든, 무엇을 만나든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을 성장시키고 가르쳐주는 메시지입니다. ‘내가 왜 저런 인간을 만났을까’가 아니라 ‘복을 짓고 지혜롭게 살기 위한 인연이다’라는 메시지입니다.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 화를 내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이 경험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얻게 되는지를 생각하는 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허황되게 많은 이들을 부러워하고 경쟁하면 스스로 비교당하는 존재가 되고, 절대적 가치가 아닌 일개 숫자 취급을 받게 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스로를 소비하는 도구로 사용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그렇게 놔둬선 안 됩니다. 부처님은 당신이 깨달음을 얻은 뒤 모든 이들이 부처로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내가 얼마나 거룩하고 고귀한 존재인지를 말하셨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교만이 아닙니다. 내가 돈, 학위, 외모와는 상관없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 존재임을 아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인을 심으면 때가 무르익어 과가 나옵니다. 최상의 진리입니다. 과의 경우, 사람마다 다르게 드러나는 건 질적 차이가 아닌 다양성 차원입니다. 처한 환경, 사회적 조건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고귀함 자체의 우열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면 어디서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은 외부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내면에서 일어나는 자성입니다. 내면의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확신이라는 꽃을 피워냅니다. 어떤 지식도 내면에서 나오는 통찰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외롭고 불안할 때, 그것에 매몰될 게 아니라 진짜 자신을 만나가는 공부를 하길 바랍니다.

정리=임은호 기자 eunholic@beopbo.com

이 내용은 서울 조계사 청년회가 10월8일 회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법회에서 초청 강연자로 나선 서광 스님의 법문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1364호 / 2016년 10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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