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교수이자 선 수행자가
선화 58폭에 짧은 선시 붙여
맑고 향기로운 삶의 방향 제시
부처님 가르침과 절묘한 조합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몸과 마음을 상하고 만다. 또한 어느 정도 성공을 이룬 후에도 그 성공으로 인한 행복보다는 불안함과 공허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때야 비로소 자신을 돌아본다. 지금까지 겉으로 보아온 나와 또 다른 나를 찾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같은 삶을 반복하는 현대인들에게 일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을 돌아보며 맑고 향기롭게 나를 채우고 비우도록 돕고자 나선 이가 있다.
대만의 유명한 수묵화가 리샤오쿤이다. 대만 화범대학, 타이베이예술대학 등 강단에서 40년간 미술교육에 헌신해온 리샤오쿤은 오랫동안 선을 수행한 수행자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직접 그리고 쓴 글과 그림을 담은 ‘마음 쓸기’는 첫 마음의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내게 ‘선’은 종교가 아니라 일종의 믿음이자 사명이며 삶의 방향에 대한 탐색”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누구나 두 개의 내가 있다. 하나는 본아(本我)이고 또 하나는 자아(自我)다. 본아는 초심이고 자아는 사회에 구속당하는 마음이다. 자아를 버리고 본아에 집중하려면 일상을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 자만심을 버리면 본아가 드러난다”며 그림 속 동자승을 통해 나를 채우는 비움의 방법을 전하고 있다.
책은 무아, 마당 쓸기, 글쓰기, 다선, 천지, 인간 세상, 생사, 길을 묻다 등 8개 주제로 나눠 동자승의 일상생활을 그린 선화 58폭에 짧은 선시를 덧붙인 형태로 구성됐다. 저자는 여기서 무아를 말하며 “우리의 이름이 살아 있을 때 아무리 화려해도 솟구쳤다가 가라앉아 물 위에 흩어지는 물보라처럼 죽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고 일갈한다.
또 천지에서는 “떠돌던 구름이 조용히 멈추었네. 먼 하늘가에서 멈춘 구름 곧 석양이 내려와 화려한 옷을 지어주길 기다리고 있구나”라며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길 것을 주문하고, 생사를 말하면서는 “우리 인생은 우주의 만법과 함께 돌아간다. 올 때가 있으면 갈 때도 있고 모인 것은 또 흩어진다네. 무상이라는 놀이는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어라”라고 겉으로 보여지는 자기 모습에 천착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이 책을 통해 최소한 10분 만이라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일상생활에서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일을 한다면 올바른 선의 순환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한 저자는 “마당을 쓸고 마당을 쓸고 마음속을 쓸어낸다. 마당은 말끔해지지 않아도 마음속은 깨끗해진다”며 스스로 비우려 노력하는 동안 채워지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또 “우리가 바른 생각과 바른 마음을 내놓을 때, 우주는 우리에게 영혼의 피톤치드를 선물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음 쓸기의 본질”이라며 “욕심, 노여움, 어리석음은 두렵지 않소. 진정 두려운 것은 그것들로 인해 우리가 오랫동안 깨끗한 마음과 만나지 못하고 지혜의 불씨를 꺼뜨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다양한 소재로 선문답, 불교 이야기, 불법에 대한 격언 등을 담아낸 책은 동자승의 일상생활을 통해 부처님 가르침을 보여주는 절묘한 조합이어서 더욱 특별하다. 특히 그림 곳곳에 등장하는 동자승은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머금고 내면의 작은 아이를 볼 수 있도록 마음의 문까지 열어 준다. 덕분에 독자들은 “여백을 남기는 사람만 영혼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는 저자의 말처럼 맑고 향기롭게 나를 채우는 시간을 갖게 된다. 1만30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364호 / 2016년 10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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