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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산비명 쓴 최치원, 흥전리사지 비문도 썼다”

  • 성보
  • 입력 2016.10.26 14:20
  • 수정 2016.10.26 19:38
  • 댓글 0

[단독] 10월25일, ‘紫金魚’ 비편 확인
최치원 사산비명에도 ‘紫金魚袋’ 명시
흥전리사지 비문 찬술 가능성 제기
“선종사 연구의 획기적 자료” 평가
사역 전체 사적 지정 보존·관리 필요

▲ 불교문화재연구소는 10월25일 삼척 흥전리사지에서 홍형우 강릉원주대 사학과 교수, 이경미 역사건축기술연구소장, 차순철 서라벌문화재연구원 조사단장을 초빙해 학술자문회의를 열고  ‘紫金魚(자금어)’가 적힌 비편을 확인했다.
삼척 흥전리사지 출토 비편에서 통일신라시대 대학자였던 최치원이 비문을 지었다고 추정할 수 있는 단서가 발견됐다. 특히 최치원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사산비명(四山碑銘)’이 당시 선종을 대표하는 스님들에 대한 비문이었고, 흥전리사지 발굴조사 과정에서 ‘國統(국통)’이 새겨진 비편 등이 발견됐다는 점에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이 예상된다. 비편 문장을 최치원이 지은 것으로 밝혀질 경우 흥전리사지가 지닌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확장되는 것에서 나아가 통일신라시대 선종사 연구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일감 스님)는 10월25일 삼척 흥전리사지에서 홍형우 강릉원주대 사학과 교수, 이경미 역사건축기술연구소장, 차순철 서라벌문화재연구원 조사단장을 초빙해 학술자문회의를 열었다. 이날 차순철 단장은 지난해 출토된 유물 가운데 ‘紫金魚(자금어)’가 적힌 비편이 최치원의 글일 가능성을 제기해 주목을 끌었다.

▲ 지난해 발견된 비편의 탁본. 오른쪽에 ‘紫金魚(자금어)’가 새겨져 있다.
통일신라시대 말기 대학자이자 대문장가였던 최치원은 12세이던 868년 당나라로 유학을 떠난 뒤 17년 동안 머물며 이름을 떨쳤다. 881년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토벌군에 참여하며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짓는 등 공을 세웠는데, 이를 계기로 황제에게 자금어대(紫金魚袋, 정5품 이상 벼슬에게 내리는 붉은 주머니)를 받았다. 최치원은 시문집 ‘계원필경(桂苑筆耕)’에서 ‘中和正月日前都統巡官侍御史內供奉賜紫金魚袋臣崔致猿狀奏(중화 6년 정월일 전도통순관 시어사내공봉 사자금어대 신 최치원 장주)’라고 적어 황제에게 자금어대를 하사받았다는 사실을 밝혔다.

뿐만 아니라 사산비명(쌍계사진감선사대공탑비, 성주사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 대숭복사비,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에서도 자신이 ‘자금어대’를 하사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 8월27~10월21일 흥전리사지 2차 시·발굴조사 과정에서 수습된 ‘자금어’ 비편의 비문 역시 최치원이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설명이다. 해당 비편은 ‘자금어’ 외에 ‘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이 탈락된 상태다.

차순철 단장은 “‘사산비명’이 아니라 ‘오산비명’이 될 수 있는 획기적인 발견”이라며 “최치원이 쓴 비문은 당대 선종 최고 스님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로 확인될 경우 흥전리사지 사격을 규명하는 것에서 나아가 선종사 연구에도 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삼척 흥전리사지에서 불교문화재소 연구원과 자문위원들이 현장답사를 실시하고 있다.
그간 흥전리사지에서 발굴된 유물들에서 왕이 임명하는 승단 최고 통솔자인 ‘國統(국통)’이 주석했다는 증거가 속속 모아지고 있다는 점 또한 이러한 주장의 신빙성을 높이고 있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 2014년 8월18일~10월8일 진행된 1차 시·발굴조사에서 ‘國統’이 새겨진 비편을 발견했다. 국통은 신라시대 최고 승관직으로, 551년(진흥왕 12)에 고구려에서 온 혜량(惠亮) 스님을 임명하면서 시작됐다. 이 밖에 발견된 비편들과 올 8월9일 시작된 정밀발굴조사 과정서 수습된 ‘唐朝將大藏經而至咸(당조장대장경이지함)’ 비편을 통해 흥전리사지에 주석했던 스님이 김(金)씨 성을 가진 신라왕경 명문집안 출신이며 당나라에 유학, 대장경을 연구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존에 ‘大藏經(대장경)’이 언급된 통일신라시대 비편은 대안사적인사조륜청정탑비(大安寺寂忍禪師照輪淸淨塔碑) 1건밖에 확인되지 않았다.

▲ 2호 건물지에서 출토된 모서리암막새와 가릉빈가문 수막새 등 유물들.
이날 현장답사를 실시한 자문단은 흥전리사지 서원 탑지에 대해 “탑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기단부 아래 땅을 깊이 판 뒤 돌을 다져 넣은 흔적이 보인다”며 “이는 왕경이 있던 경주지역서 탑을 조성하던 방식으로 중앙에서 인력이 파견되지 않고는 이런 식으로 탑을 조성하는 게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왕궁 건축에서 쓰인 모서리암막새와 정교한 문양의 가릉빈가문 수막새 등 최고급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는 것은 당시 흥전리사지의 사격이 대단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 “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비(寶林寺普照禪師彰聖塔碑)에서 ‘자금어대’가 새겨진 것을 제외하고는 9세기경 최치원만이 ‘자금어대’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흥전리사지 비문에 대한 추정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며 “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사역 전체를 사적으로 지정해 보존·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10월25일 오전 흥전리사지에서 출토된 부도편.
한편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이날 학술자문회의에 앞서 그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부도편을 수습했다. 흥전리사지 부도편은 강릉 굴산사지에서 발굴된 부도편과 유사한 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향후 원형 연구에 단초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삼척=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365호 / 2016년 11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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