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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규 불교문화재硏 유적연구실장-하

불교유적 현장에서 부처님을 보다

 
‘이제 현장에서 원 없이 조사할 수 있겠구나.’

사찰문화재 일제조사 사업 진행
불상 엑스레이 조사기법도 도입

가야 할지를 두고 많은 고민을 했었지만, 막상 조계종 문화유산 발굴조사단에 합류하게 되자 고민의 흔적들은 깡그리 사라져버렸다. 대신 현장이 주는 설렘과 긴장감이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끄는 것을 느꼈다. 같은 탑이어도 오늘 본 것과 어제의 그것이 확연히 다르다. 현장은 늘 어제까지의 지식과 관점을 오늘의 지평으로 옮겨주곤 했다. 더군다나 부처님 말씀 깃든 문화재들을 조사하는 일인데, 환희롭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제 막 첫 발을 내딛은 조계종 문화유산 발굴조사단의 책임연구원으로서 해야 할 일은 하나 더 있었다. 자립 여건을 만들기 위해 사업을 개척하는 것이었다. 강화도 문화유적 분포도를 만들었고, 용인시 불교유적 조사보고서를 작성했다. 특히 2002년 닻을 올린 ‘전국 사찰문화재 일제조사’ 사업은 자립 기반은 물론 문화유산 발굴조사단의 역량 강화와 위상 정립에도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1년에 100일 이상을 현장에서 보냈다. 출장, 출장, 그리고 출장. 어느 순간부터인가 집에서 자는 게 어색해질 정도였다. 당시를 돌이켜보면 문명대 선생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동국대 미술사학과 대학원에서 나는 문명대 선생님에게 많은 것들을 배웠다. 선생님은 학문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몸으로 가르쳐주셨다. 선생님 논문을 꼼꼼히 필사하며 공부하기도 했다. 그렇게 무던히 노력했던 대학원 시절의 경험은, 전국 사찰문화재 일제조사 사업을 진행하는 데 든든한 역할을 해주었다.

불상 엑스레이 조사를 도입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흙으로 불상을 만들고 그 위에 삼베와 옻칠을 반복 도포하는 건칠기법에 대한 이렇다 할 연구가 없어 의아해하던 차에, 엑스레이 조사가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호기심을 느껴 2001년 사비를 들여 일본서 엑스레이 판독법을 배웠다. 이를 계기로 2002년 처음으로 남원 선국사 아미타여래좌상에 엑스레이를 투과했다. 엑스레이 장비뿐 아니라 유물 조사 장비까지 단원들과 이고 지며 올라가 엑스레이를 쏘고, 현상하기 위해 변소에 검은 천을 달아 만든 임시 암실에서 밤을 새워가며 일했다. 첫 번째 작업이었기에 시행착오는 많았지만 엑스레이 조사 노하우를 쌓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2006년 8월까지 목조로 알려졌던 대구 파계사 원통전 관음보살상의 재료가 건칠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 남원 실상사 부처님과 나.

2007년 3월, 공부에 대한 미련을 떨칠 수 없어 문화유산 발굴조사단을 나왔다. ‘동아시아 칠기 연구소’를 열어 연구에 진력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일본으로 유학을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석사논문을 쓸 당시 인연 맺었던 박형국 교수가 있는 일본 무사시노미술대학(武藏野美術大學)의 박사과정에 합격했다. 한국에서 배우지 못했던 것들을 마음껏 흡수했다.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2012년 1월, 문화유산 발굴조사단이 법인 등록을 통해 이름을 바꾼 불교문화재연구소로 돌아왔다. 일본에서 당분간 공부를 이어갈 계획이었지만, 소장이었던 미등 스님의 요청에 다시 한 번 현장에 뛰어들기로 했다. 2000년 문화유산 발굴조사단에 합류했을 때의 설렘과 긴장감이 현재 나를 또 다른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주고 있다.

대학을 다닐 때 친구들과 석굴암을 참배한 적이 있다. 동이 트기 전, 석굴암 감실 안으로 들어가 부처님을 올려다보았다. 아무 말 않던 친구들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 눈물의 의미, 당시는 몰랐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래서 내가 해왔던, 하고 있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의 의미도 조금이나마 헤아려볼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준 환희심이 바로 부처님이었음을. 나는 오늘도 부처님 손짓 따라 길을 걷고 있다.

정리=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365호 / 2016년 11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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