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굴석굴, 외적방어 염원으로 조성
골굴석굴, 외적방어 염원으로 조성
  • 김규보 기자
  • 승인 2016.10.31 1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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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사硏 37회 학술대회
문명대 소장 ‘석굴구조~’발표

 
경주 골굴사 석굴은 산 자체의 기묘한 형상과 더불어 국내서 보기 드문 12개 석굴, 마애여래좌상(보물 제581호)〈사진〉의 도상적 특징 등으로 많은 이들에게 언급돼왔다. 조선시대 석학 우담 정시한이 “돌 봉우리는 기괴하고 층층으로 이뤄진 굴과 전각은 완연한 그림 같다”고 감탄하는 등 관심을 받아왔지만 정작 현재까지도 학술적 연구가 부족해 아쉬움을 남겼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골굴석굴과 마애여래좌상의 연원과 의미, 향후 복원 과제까지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처음으로 마련돼 주목을 끌고 있다.

한국미술사연구소(소장 문명대)는 11월5일 오후 1시 경주 컨벤션센터에서 ‘정통 석굴사원 골굴사의 문화와 석굴구조 재조명’을 주제로 제37회 학술대회를 연다. 문명대 한국미술사연구소 소장이 ‘골굴사의 석굴구조와 마애 장륙 석가불좌상의 의의’를, 유미나 원광대 교수가 ‘겸제 골굴 석굴도의 의의’를, 손신영 한국미술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이 ‘정시한 선생의 골굴암 순례기를 통해 본 골굴석굴의 원형 탐색’을, 한동수 한양대 건축학과 교수가 ‘골굴사 석굴복원안’을, 문무왕 동국대 불교사회문화연구원 연구교수가 ‘골굴사의 문화콘텐츠 모색’을 발표한다.

기조발제는 문명대 소장이 맡는다. 문 소장은 이날 발표할 논문에 골굴석굴의 조성시기를 추정해보고 구조를 규명하는 한편, 마애여래좌상의 도상 특징과 의미를 담았다. 문 소장은 발제에서 “골굴석굴에 대한 기록은 많지만 역사에 대한 언급은 찾을 수 없어 현재로서는 골굴 암봉 상단 마애불좌상 편년에 따라 9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창건 이후 골굴 전실 전각이 불에 탄 1880년까지 우리나라 유일의 장엄하고 아름다운 다층의 반개착 석굴로 남아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마애여래좌상이 석굴암 본존불 수인과 동일한 항마촉지인 수인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문 소장은 “석굴암 본존불과 동일한 수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등으로 볼 때, 골굴사 마애여래좌상은 석굴암 본존을 의식해 석가모니불로 조성됐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골굴 마애불이 동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문무왕의 외적방어 염원이 서린 대왕암의 조성 의도와 동일하다고 판단되며, 이는 유가밀교인 신인종(神印宗)이 석굴암의 조성과 동일하게 골굴 조성에도 관여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신인종은 유가종 내지 유가밀교계로 통일신라시대에 외적방어에 주력한 종파였다. 외적을 막겠다는 의미로 감은사·석굴암·골굴암을 차례로 건립했다고 알려졌다.

끝으로 문 소장은 “30m 높이의 거대한 바위봉우리 상단에 장육존상으로 조성된 예는 중국에서도 유래를 잘 찾을 수 없다”며 “질서정연하면서도 역동적인 아름다움을 멋들어지게 표현한 우리나라 최고의 불상”이라고 강조했다.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365호 / 2016년 11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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