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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 여러분, 조윤선 장관에게 이렇게 요구하시라”

기자명 법보신문
  • 기고
  • 입력 2016.10.31 19:29
  • 수정 2016.11.01 09:25
  • 댓글 0

이병두 전 종무관이 문체부 간부들에게 보내는 글

이병두 전 문화체육관광부 종무관이 10월31일 자신의 네이버 블로그(향산의 세상이야기)에 문화체육관광부 간부들에게 보내는 당부의 글을 올렸다. 이 전 종무관은 이 글에서 ‘최순실·차은택’이 문체부를 망가뜨린 배경에는 해당 부서 관계자들의 책임도 크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제라도 “조직을 살릴 자신이 없으면 떠나 달라고 신임 장관에게 당당하게 요구하라”고 당부했다. 편집자

현 문체부 상황엔 간부 책임도 커
‘문체호’ 이러다간 가라앉을 수도
“조직 살릴 수 없다면 떠나 달라”
신임 장관에게 당당히 요구해야

▲ 이병두 전 문화체육관광부 종무관
“안녕하십니까?”라고 안부를 묻기도 힘든 시절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단군 이래 최대의 스캔들’ 때문에 온 나라가 휘청거리고 있는데, 그 중에서 제가 5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근무했던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아주 큰 어려움에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몸과 마음을 다 바쳐 국가 발전을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체부의 조직 안정을 위해 낮과 밤을 가릴 것 없이 고생해 오신 여러분들의 잘못이 아니라, 외부의 불순(不純) 세력(이렇게밖에 표현할 수가 없음을 이해 바랍니다)에 휘둘려 국민들에게 마치 문체부가 ‘문제의 근원’이고 문체부에 봉직하는 공직자들은 ‘무자격자’라도 되는 것처럼 알려지고 있어서 답답함을 넘어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러나 최순실과 차은택이라는 외부 불순 세력에게 기대어 장관과 차관이 부임해 왔다는 사실 자체가 어찌 보면 문체부가 얼마나 취약한 곳인가를 드러내 준다고 할 것입니다. ‘최와 차’, 그들은 정부의 수많은 부처 중에 왜 문체부를 선택해서 음모를 꾸미고 그 일을 대행할 사람들을 뽑아 보냈을까요. 여러분이 인정하기 싫으시겠지만, 문체부가 그만큼 약하게 보였다는 뜻이 아닐까요. “저곳은 손을 대기 쉬워. 저항도 별로 없을 거야…” 뭐 이런 식이 아니었겠습니까.

하긴 지난 MB정부 시절에도 기획재정부(기재부) 출신이 두 명이나 차관으로 왔었죠. 그 두 사람의 개인적 인격과 능력은 논외로 합시다.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박근혜 정부에서도 기재부에서 실장을 하나 보냈죠. 문체부를 마치 기재부의 식민지나 보호령쯤으로 여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셨나요.

기재부가 가끔 자기네 사람을 보내고 반半 접수를 하는 것까지는 같은 정부 부처로서 그냥 봐줄만 합니다. 그러나 요즈음 문제가 되고 있는 ‘최순실-차은택’처럼 베일에 쌓인 이상한 사람들에 기대어 그들의 추천으로 장관과 차관이 부임하고, 부임한 뒤에도 그 두 사람 ‘최-차’를 위해 뛰느라 조직을 망가뜨린 데 대해서는 이해를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용서가 되지 않던데,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도 어쩔 수 없었다.…”라고만 할 수 없을 정도로 파장이 큽니다. 부처 밖에서 떨어진 위상과 체면은 둘째 치고, 여러분들을 믿고 따라온 아래 직원들의 무너진 가슴은 어떻게 위로해주시겠습니까. 아니 위로하는 마음은 갖고 계십니까. 주무관을 국정 감사장에 내세워 국회의원들의 공격을 막아내는 ‘총알받이’를 시키면서도 아래 직원들에게 “공복으로서 국가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하라”며 업무 지시를 할 수 있던가요. 벙어리 냉가슴처럼 끙끙 앓고 있을 직원들, 가정에서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된 그들의 심정은 모른 채, 혹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자리를 지키겠다’거나 ‘위 자리로 승진하려는’ 꿈을 꾸고 있는 분은 없었습니까. 그러려고 외부 유력 인사를 찾아다니며 부탁을 하고 그런 분은 없었습니까.

MB정권 시절 어느 고위 공무원이 문체부 내 간부들의 성향을 분석해서 보고서를 만들어 외부에 전한 적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살생부(殺生簿)라는 섬뜩한 이름을 가진 이런 보고서를 만든 것이 그때 이후 사라졌던가요. 혹 ‘최-차’의 도움으로 장관과 차관이 된 이들에게도 이런 보고서를 만들어 전한 간부는 없었나요. 그 보고서가 명실상부한 살생부가 되어 여러분의 선배들이 갑자기 떠나가게 하고, 문체부의 조직을 계속 흔들리게 하고 이제는 침몰 직전에까지 몰고 가는 원인이 되지는 않았던가요.

이런 부역(附逆) 행위를 하고 있는 동료를 야단치지 못하고 모른 척 한 분들은 또 없습니까. 자유당 정권 시절 부녀자 수십 명을 농락한 박인수라는 인물에 대해 초심 법정은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 보호할 수 있다.”라고 판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요즈음 기준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논리였습니다만, 저는 이 말을 이렇게 바꾸고 싶습니다. “민심은 스스로 지킬 능력과 의지가 있는 조직과 그 구성원만 보호할 수 있다.” 여러분 스스로 그럴 능력과 의지를 갖고 있다고 여기십니까. 과연 그럴 것이라고 외부인들이 동의해줄 것이라고 보십니까.

섭섭하시겠지만, 그렇게 봐드릴 수가 없습니다. 문제가 불거진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허가 건을 예를 들어 봅시다. 장차관조차 거부하기 어려운 힘 센 곳의 부탁으로 하루 만에 “무조건 처리하라”는 부당한 지시를 장차관이 내려도 여러분이 버텨주었어야 합니다. ‘최-차’와 관련된 예산 수립과 집행을 막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셨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주 조금만이라도 그런 의지를 보여주셨다면, 과장 이하 사무관과 주무관들은 여러분들의 의지를 눈치 채고 마음 편하게 “이렇게는 못 합니다”며 버텨주어 그것이 다시 여러분들을 보호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지금 ‘최-차’ 스캔들이 온 나라를 흔들어놓게 되더라도 문체부까지 이처럼 나락에 빠지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다음 정권에서는 문체부의 해체 내지는 분리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이렇게 약하게 된 뒤에 그 모든 것을 ‘최-차’와 정치인들의 책임으로만 돌리실 수 있습니까.

2014년 4월16일 세월호가 좌초하여 수백 명 생명과 함께 침몰하는 장면을 TV생중계로 지켜보던 아픔을 겪고 아직도 그 슬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데, 지금 ‘문체호(文體號)’가 반 이상 기울어서 영원히 침몰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느껴집니다. 혹 여러분은 “괜찮다”고 여기실 수도 있겠군요. 하긴 거대한 댐 가까이에 사는 사람일수록 그 댐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 ‘심리적 거부(psychological denial)’라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만, 여러분들도 그렇게 심리적으로 거부하고 계신 것은 아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문체호(文體號) 신임 선장인 조윤선 장관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하십시오. 조직이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있는지 모두 솔직하게 털어놓으십시오. 그리고 “장관께서 이 문체호를 다시 끌어 올려 힘차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이끌어 주시면 도와드리겠습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죄송하지만, 당장 떠나 주십시오!”라고 당당하고 의연하게 요구하십시오.

떠난 세월이 1년이든 5년이든 20년이든, 조직을 떠났어도 문체부 사랑을 놓지 못하고 있는, 아니 결코 그 사랑을 버릴 수 없는 여러분의 선배들도 함께 힘을 보태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힘을 내십시오!

(저는 2010년 7월 19일부터 2015년 5월 말까지 만 5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머물렀을 뿐인데도, 문체부가 겪고 있는 위기가 안타깝고 가슴이 찢어집니다. 그러니 수십 년을 봉직하고 계신 여러분들의 가슴은 얼마나 더 쓰라리고 찢어지겠습니까? 그런데도 이렇게 공개 글을 드리는 것은, 여러분들을 탓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위하는 마음 때문임을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이 없으면 관심도 갖지 않을 테니까요. -2016. 10. 31. 이병두 드림)

[1366호 / 2016년 11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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