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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중품중생

하루 낮밤만이라도 계율 잘 지켜
그 공덕 회향하면 아미타불 친견

“중품중생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만약 어떤 중생이 하루 낮 하루 밤만이라도 팔재계(八齋戒)를 지니거나, 만약 어떤 중생이 하루 낮 하루 밤만이라도 사미계(沙彌戒)를 지니거나, 만약 어떤 중생이 하루 낮 하루 밤만이라도 구족계(具足戒)를 지님에 있어서 그 행동거지(威儀)에 허물이 하나도 없다고 하자.”

오역죄도 극락 가능하단 말은
죄인 구제하겠다는 데에 초점
오역죄도 좋다는 것은 잘못
잘못 해석하면 자신 망하게 해

요즘 우리도 단기출가를 많이 합니다만, 그런 상황입니다. 스님들이 받는 계율들인데 재가자가 단 하루 밤낮만이라도 받아서 지닌다고 합시다. 어떻겠습니까? 그 공덕이 적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대의 탓일까요? 지금 우리가 계율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계율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는 것도 대단히 어렵습니다. 더욱이 계율을 지킨다고 하는 것은 더욱더 어렵습니다. 왜일까요? 사람들이 싫어해서입니다. 사람들은 자유를 좋아합니다. 이때 자유는 자기 욕망대로 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그런데 계율은 구속 속의 자유입니다. 그러니 어찌 계율을 좋아하겠습니까. 뒤에 가면 나오겠습니다만, ‘관경’에서는 오역죄를 범한 중생들이라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그 길을 일러줍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오역죄의 중생들까지 구하려고 하는 아미타불의 자비심이 그 바탕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을 오해해서, 오역죄를 지어도 극락을 갈 수 있다 말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초점은 이미 지은 죄인들을 구제하려는 데 있지, 아직 안 지은 사람들에게까지 오역죄를 지어도 좋다고 허락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석하면 스스로를 망하게 하고 남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 밤낮만이라도 계율을 잘 지킨다고 한다면, 그 선근의 공덕은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생긴) 공덕을 (극락에 왕생하는 일에) 회향하여 극락국에 태어나기를 원하면서 계의 향기를 훈습해 간다고 하자.” 여기서 말해지는 회향은 왕상회향입니다. 극락에 가기 위한 ‘차표 한 장’으로 삼겠다는 회향입니다.

계복(戒福)만 극락행 ‘차표 한 장’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속의 선행도 될 수 있고, 대승의 보살행도 될 수 있습니다. 초기경전에서 설하는 사성제나 팔정도 역시 극락행 ‘차표 한 장’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수행이든 어떤 선행이든 다 극락행 ‘차표 한 장’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 회향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죽음이라는 하나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그 이어지는 삶을 위하여 뭔가 보탬이 되고 싶다고 하는 생각, 그것이 회향의 정신입니다. 그래서 정토신앙은 회향을 제하고서는 말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계율의 향기를 피워가다 보면, 어떻게 될까요? “목숨이 장차 끊어지려 할 때 아미타불이 모든 대중(권속)들과 함께 금색의 빛을 내면서, 칠보로 된 연꽃을 들고서, 그 수행자 앞에 나타나신다.” 이 장면을 보게 됩니다. 아미타불은 빛의 부처님입니다. 무량광불(無量光佛)이라 부르는 까닭입니다. 눈으로는 그 부처님의 상호를 뵙게 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수행자는 스스로 공중으로부터 어떤 찬탄하는 소리를 듣는다. ‘선남자(선여인이)여, 그대와 같이 착한 사람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따랐기(隨順) 때문에, 내가 그대를 맞이하러 왔다.’”

‘관경’에는 ‘선남자’만 있습니다. 만약 ‘선남자’만 있고, ‘선여인’이 함께 나오지 않는다면 성차별적이라 비판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바로 뒤이어 나올 중품하생에서는 ‘선남자선여인’이라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루 낮 하루 밤만이라도” 스님들이 지키는 계율을 잘 지켜보아라, 그렇게 되면 아미타불을 친견하리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토신앙이 민중불교의 대표가 되는 이유를 이런 데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호성 동국대 교수 karuna33@dongguk.edu
 

[1365호 / 2016년 11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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