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신불교의 모색
40. 신불교의 모색
  • 김정빈
  • 승인 2016.11.0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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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하는 세계 신불교의 흐름

지난주에 대승불교의 수행법을 팔정도에 정신(正信)과 정원(正願)을 더해 십정도(十正道)로 재정리해 보았다. 그렇지만 다시, 필자는 십정도에 몇 가지 덕목을 더할 필요성을 느낀다.

외적환경 적응한 대승불교처럼
현대불교도 새로이 거듭나야
유연하게 외부비판 수용하면
신불교 다종다양하게 펼쳐져


그 논의를 진행하기에 앞서, 필자는 나 자신이 이렇듯 불교의 기본 수행법을 재구성하는 충정에 대해 설명할 필요성을 느낀다. 필자는 본고의 제일 첫 부분에서 불교가 시작된 지 2500년 동안 내외적인 환경이 엄청나게 변했다는 것, 그 변화에 대해 테라와다 불교처럼 근본주의 입장을 취해 불교의 첫 모습을 배타적으로 지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 그러나 환경 변화에 대응하여 불교를 변화시키는 다원주의 입장을 취할 수도 있으며, 대승불교는 그 입장에서 탄생하였다는 것을 말한 바 있다.

그리고 대승불교 또한 탄생한 지 2000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재탄생을 요청받고 있다. 이 판단에 기초하여 필자는 (1)불교의 기본 교리인 연기법을 굳건하게 지키는 것을 전제로, (2)초기불교(부파불교·테라와다 불교)의 장점과 (3)대승불교의 장점을 충분히 수용하면서, (4)현재 불교가 처해 있는 외적 환경, 즉 자연과학·사회과학·인문학·예술·이웃종교 등의 성과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필자가 본고를 쓰고 있다는 것을 독자들께서는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한다.

그 입장에서 필자는 지금까지 여러 논의를 펼쳐 왔고, 그런 끝에 수행법을 토론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필자는 대승불교의 육바라밀과 초기불교의 팔정도 수행법 중 팔정도가 더 체계적이며 설득력이 크다는 점을 이미 논한 바 있다. 그래서 지난주에 불교 신행의 전제조건이지만 팔정도에는 빠져 있는 바른 믿음(正信)과 대승불교가 강조하는 덕목인 바른 발원(正願)을 추가하여 십정도를 제시하였다.

그런데 십정도는 불교의 내적인 환경, 즉 (1)과 (2)와 (3)을 반영한 것이긴 하지만 외적 환경, (4)를 반영하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필자는 (4)를 반영하여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4)의 범주는 매우 넓다. 지난 2500년 동안, 더 넓게는 문명사 6000년 동안 인류가 불교 밖에서 성취해온 모든 성과가 (4)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4)에 대한 관심과 검토 및 수용이 미래불교를 구상하는 이들로 하여금 길을 잃어버리게 할 위험성이 매우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미래불교가 결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거기에도 타당한 이유가 있다. 미래불교는 (4)를 충분히 반영해야 하는데 (4)의 성과를 다 반영할 만큼 방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이 탄생하는 미래불교(또는 신불교)는 그 주체에 따라 저마다 다른 양상을 띨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지만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신불교는 탄생되어야 하고, 탄생될 것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현대 지식인들을 설득하는 것을 목표삼은, 예를 들어 과학을 불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와 결합한 사이언톨로지교(Scientology)가 많은 신자를 확보하고 있고, 명상을 중심으로 하는 불교 내지 준불교(準佛敎)적인 센터와 기법(아바타·MBSR 등)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준불교 내지 아불교(亞佛敎)로 분류할 수 있는 갖가지 수행법(마음수련 등)이 등장하여 성과를 거두고 있다. 준불교가 번창하는 이런 흐름은 계속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불교는 지금 격변의 시기를 맞이했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으며, 그 격변을 어떤 특정한 사람이나 단체가 온전히 수렴하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이는 필자가 제시하는 신불교(미래불교)에 관한 견해가 필자만의 것이라는 점, 이 견해가 정리(定理·正理)는 아니라는 점을 의미한다. 필자는 준불교·아불교가 아닌, 충실히 불교의 근본을 지키는 본불교(本佛敎)의 틀 안에서 하나의 안을 제시하는 것뿐이며, 이 안은 비판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고, 노출되는 것이 마땅하다. 필자는 건전한 비판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이다. 필자의 신불교 교리는 멈추어 있는 고정·고착형 교리가 아니라 계속 변화·진보·진화하는 교리인 것이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365호 / 2016년 11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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