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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작은 동물과 인연을 맺은 까닭은 ①

“모기가 피를 빨아먹는다고 죽이는 건 가혹하지 않나요?”

▲ 불광산 성운대사가 비둘기들에게 먹이를 나누어 주고 있다. 불광산 사진제공

“어린 시절부터 동물에 대한 애정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다른 아이들의 경우 잠자리 한 마리, 나비 한 마리, 매미 한 마리를 다리에 실을 묶어 놀다가 죽게 하지만 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예뻐했지만 학대하지 않았고 상자에 담아 먹이를 주면서 키우려고 했습니다. ”

‘무연대자 동체대비(無緣大慈 同體大悲)’의 근본교의는 “불교가 중생을 존중하고 생존권을 중시한다”는 가장 훌륭한 가르침입니다.

사람도 동물이기는 하지만 다른 동물들과는 다릅니다. 사람은 머리를 하늘로 향하고 발은 땅을 향하고 있으니 소위 말하는 하늘을 받치고 땅에 서 있는 존재로서 유정중생의 세계에서 오로지 사람만이 이러한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돼지나 말, 소, 양, 어류 패류와 심지어 조류 등은 다 머리를 하늘로 향하고 있지 않으며 등을 하늘로 향하고 있으니 사람이 만물의 영장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지혜가 있고 신앙이 있고 문화가 있고 자비로써 남을 사랑으로 돌보는 마음이 있으며 문학과 철학이 있어서 인류 최고의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고라고 하는 인류도 중생만물을 벗어나서 독자적으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생명계를 ‘사생구유(四生九有)’로 나누어 구분합니다. 이 사생에는 두발, 네발, 여러 발의 동물이 있으며 평지에 살거나 산림 속에 살거나 바닷물에 살고 있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생이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뿐만 아니라 불법에서 말하는 일체중생의 범위가 지극히 넓지만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고 단지 우리들과 접촉이 가장 많은 태생, 난생, 습생의 일반적인 동물들로 우리들이 자주 볼 수 있는 동물에 국한해 말하겠습니다.

자비로 돌봐주니 부리가 없는 닭도 알을 낳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개를 좋아해서 기르는 사람도 있고 고양이가 좋아서 기르는 사람도 있으며 날짐승을 좋아하거나 물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동물들이 인간의 애완동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성격적으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었기에 인간이 그들을 좋아하게 된 것입니다. 미주유럽지역에 돈 많은 부자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이 기르던 애완동물에게 자신의 수많은 유산을 물려줄 수 있도록 변호사를 쓰는 경우를 신문매체를 통해 보게 되기도 합니다. 돼지, 말, 소, 양을 길렀다면 그들은 돼지, 말, 소, 양이 평생을 즐겁게 살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 합니다. 여기에서 저는 불교에서 말하는 ‘복혜쌍수(福慧雙修)’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한 수행자가 지혜를 닦는 것만 알아서 나중에 ‘아라한’을 증득했지만 아무에게도 공양을 받지 못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의 사제는 복을 닦는 것에만 열심이었기에 다음 생에서는 코끼리로 태어나서 황실에 살면서 잘 먹으면서 금은보화로 치장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이 코끼리를 보게 된 아라한은 “지혜만 닦고 복을 닦지 않으니 공양이 부족한 나한이 되었고 복만 닦고 지혜를 닦지 않으니 코끼리가 되어서 영락을 걸쳤구나”라며 탄식하였습니다. 세간의 중생에게는 각자의 복덕인연이 있습니다. 빈승은 이 글에서 어려서부터 인연을 맺어 온 동물 친구들에 대해 서술하여 기념하고 기록하고자 합니다.

부모님께서 저를 낳고 키워주셨는데 제가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저에게 남을 사랑하는 마음과 자비로운 관념을 갖도록 해주신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저는 작은 동물을 좋아했습니다. 예를 들면 모기에 물리면 다른 어린이들이 손바닥으로 때려죽이는 것과 다르게 저는 모기의 발을 붙잡고 있다가 일분 후에 풀어주는 것으로 벌을 대신하였는데 모기가 내피를 조금 빨아먹었다고 죽이기에는 벌이 너무 엄하고 죽을 정도의 죄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5~6세 때로 기억하는데 아껴둔 세뱃돈으로 한두 마리의 병아리와 오리 새끼를 사서 길렀습니다. 언젠가 병아리 한 마리가 비에 흠뻑 젖은 것을 본 저는 안타까운 마음에 병아리를 아궁이 입구로 가져가서 털을 말려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병아리가 놀랐는지 아궁이 속으로 뛰어 들어가자 저는 위험을 무릅쓰고 아궁이 속으로 손을 넣어서 병아리를 꺼냈지만 병아리 발가락은 이미 화상으로 상처를 입고 주둥이도 위쪽 부리만 남고 아래부리는 타버렸습니다.

그날 저도 피부에 상처를 입어서 지금까지도 오른손 손톱이 화상으로 납작해진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병아리가 반쪽만 남은 부리로 먹이를 쪼아 먹을 수 없으니 엄격하게 말한다면 이 작은 생명은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고 컵에 좁쌀을 가득 담아서 날마다 한입 한입씩 인내심을 갖고 먹이를 먹여주었습니다. 물론 이렇게 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큰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만 해 낼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1~2년 이후로 기억하는데 한 근 무게도 되지 않는, 장애를 가진 어린 닭이 알을 낳았습니다. 비록 비둘기 알만큼 작았지만 저는 큰 성취감을 느꼈었는데 자비와 사랑이 성취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당시 가난한 우리 집에서 개는 저녁 한 끼만 먹을 수 있었고 아침과 점심에는 먹을 것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린 저의 마음에는 사람이 세끼를 먹는데 개는 어떻게 한 끼만 먹어야 하는지, 개는 배가 고프지 않다는 말인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개를 키우기로 했다면 개를 사랑해 주어야 하는데 배가 고프면 사람은 말을 하지만 개는 배가 고파도 말을 못하니 우리가 마음을 써서 돌봐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매번 제가 개를 먹이려고 음식을 찾으면 집안 어른들은 저를 야단쳤습니다. “사람도 먹을 것이 없는데 개를 먹이려고 하느냐”고 야단을 맞고 난 이후로 저도 어른들 앞에서 제 마음대로 할 수 없었기에 밥을 먹을 때 제가 밥그릇을 들고 바깥으로 나가면 개가 이를 알아차려 저를 따라왔습니다. 저는 밥을 바닥에 쏟아 개가 먹도록 하였는데 식구들은 제가 먹은 줄로 알았고 개와는 상관이 없으니 개를 키우는 부담을 적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비둘기를 돌려받고자 상심하여 강가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8~9세가 되면서 저는 병아리나 오리새끼를 키우는데 흥미를 잃고 오로지 비둘기를 키우고 싶어 했습니다. 비둘기가 하늘 높이 날아올라서 멀리 갔다가도 집으로 찾아오는 것이 마치 저의 인생도 공중에서 마음껏 날아오르며 걸림이 없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번은 비둘기 한 마리가 다른 집의 비둘기를 따라 갔는데 저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그 집으로 찾아 갔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은 돈을 내고 사가라고 하면서 돌려주지 않았는데 당시 저에게 비둘기를 살 돈이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저는 어머니께 비둘기를 사올 수 있게 ‘30전’ 동전을 달라고 울면서 졸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비둘기 한 마리에 그 많은 돈을 쓸 수 없다며 어머니는 당연히 들어주시지 않으셨는데 당시에 저는 애타는 마음에 살고 싶지 않아서 강물에 빠져 죽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양자강 물가에서 태어나 3~4세부터 물에서 놀면서 컸기에 수영을 아주 잘했습니다. 강 이쪽에서 뛰어내려도 저쪽으로 올라오게 되니 물에 빠져 죽지도 못하게 되어 저는 강가에 앉아 “내 비둘기~, 내 비둘기~”하고 소리치면서 울었습니다.

지난 일들은 저는 어린 시절부터 동물에 대한 애정이 있었음을 말씀 드리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다른 아이들의 경우 잠자리 한 마리, 나비 한 마리, 매미 한 마리를 다리에 실을 묶어 놀다가 죽게 만들었지만 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예뻐했지만 학대하지 않았고 상자에 담아 먹이를 주면서 키우려고 했는데 만약 제가 주는 것을 먹지 않으면 그만 풀어 주었습니다. 동물을 예뻐한다면 괴롭히거나 힘들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길에 있는 지렁이를 보면 저는 반드시 풀잎이 있는 곳으로 옮겨주어 사람들한테 밟히지 않도록 하였고 달팽이가 길 위에 있는 것을 보아도 길가 풀잎이 있는 곳으로 옮겨 주어 밟히지 않게 했습니다.

작은 동물들을 모두 총애한 것은 아니지만 저는 어려서부터 생명을 아끼고 생명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보살피려는 마음과 성격을 갖고 성장했습니다. 물론 출가한 이후 저는 자연스럽게 사람을 아끼고 대중을 아끼고 단체를 아끼며 나라를 아끼게 되었지만 불가에서 애정을 반대한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실 사랑은 오염된 것이 있고 청정한 것도 있습니다. 저는 남녀의 애정에서 사랑으로 인한 미움으로, 결국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는 일부 사람들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랑한다면 희생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강제로 상대방의 생명을 차지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제불보살님께서는 ‘자비’로서 중생을 아끼고 돌보시므로 저는 자비를 사랑의 승화이고 사랑이 확대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불교의 자비주의’라는 글을 발표해 자비는 대가를 필요로 하지 않고 보답을 바라지도 않으며 단지 상대를 위해 자기의 마음을 다하여 봉사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사랑의 마음과 지혜와 원력과 보시를 모두 합쳐 상대방을 성취시키는 원력의 마음이기에 자비에는 적군이 없다고 말합니다.

대륙에서 대만으로 건너온 이후 몇년 동안 저는 신죽과 의란 등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 머물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거주할 공간이 부족한 당시의 주거환경에서 동물을 키울 여력은 더욱 없었습니다. 어떤 때는 강가를 거닐다 물고기가 뛰어 노는 것을 보게 되거나 교외에서 허공을 날아다니는 새들을 보게 되면 마음속으로 만약 내가 물속의 물고기라면 세계로 헤엄쳐 다닐 것이고 만약 허공을 나는 새라면 세계 오대주로 날아다니겠다는 마음을 먹곤 했습니다. 물고기와 새들에게는 그들만의 넓은 세계가 있어서 어떤 면으로 보면 인간이 그들보다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꼈습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도망간 원숭이를 우리로 돌려보낼 수도 있었습니다. 의란에서 유치원을 지어 개원했는데 어떤 사람이 작은 원숭이 한 마리를 보내왔기에 어린이들의 주의를 끌 수 있고 우는 아이들을 달래는데도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원숭이를 보내온 사람은 원숭이에게 물을 먹이면 덩치가 커지니까 저에게 절대 물을 먹이지 말라고 재삼 경고를 했습니다. 저는 물을 먹이지 않는 것은 동물학대라는 생각이 들어 그래도 물을 먹게 하였습니다.

생각지도 못하게 원숭이는 정말로 몸집이 큰 짐승으로 자랐습니다. 어느 하루 저는 염불당에서 수백 명을 이끌고 칠일정진 염불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치원 원장이던 자혜 스님이 갑자기 밖에서 “큰일 났어요. 원숭이가 도망갔어요. 길 건너편 집 지붕으로 도망갔어요!”라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원숭이가 크게 자란 이후 성격이 매우 사나워져 사람들에게 공격성을 보였기에 저는 길가는 사람을 다치게 할까봐 매우 걱정을 하였습니다. 당시 저는 원숭이와 이미 오랫동안 왕래가 없었지만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 다른 방도가 없었기에 길가 반대편에 서서 길 건너 건물 지붕에 있는 원숭이를 향해 “이리로 내려와!”라고 크게 소리를 쳤습니다.

사실 제 마음 속에는 별다른 자신이 없었지만 저의 말을 들은 원숭이는 기가 죽어서 고개를 숙이고 건물을 내려왔으며 제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정말 얌전하게 우리 안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원숭이의 이러한 행동에서 저는 동물의 영민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다른 사람이 원숭이를 돌보고 있었지만 어려서부터 자신을 키워온 인연이 있었기에 원숭이가 저의 체면을 살려주었다고 하겠습니다.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1365호 / 2016년 11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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