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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금강율학승가대학원장 적연 스님

‘승단의 갑옷’으로 현대사회 이정표 만들어가는 비구니 율사

▲ 전계식이 열리던 날 묘엄 스님은 “계율은 출가자 본인이 스스로 느끼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주셨다. 그 가르침을 간직하고 있는 적연 스님은 소소한 행동 하나라도 혹여 계율에 어긋나는 것은 아닌지 늘 되돌아 본다. 그 조심스럽고 단정한 자취는 이제 후학들의 길잡이가 되고 있다.

“나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위해 그것을 끊으라고 말하는데 그들은 곧잘 ‘이것은 작은 일이다. 끊을 것도 못 된다. 그런데도 부처님은 이것을 끊으라고 한다’며 계율을 하찮게 여기며 도리어 불만을 품는다. 그들은 계율을 지키는 것을 싫어하고 욕심에 결박되어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계율을 하찮게 여기지 않고 그것을 잘 지켜서 욕심에 결박되지 않으며 결박에서 벗어난다.” (중아함 50권 192경)

2007년 묘엄 스님 첫 전계 제자 
비구니 간 율맥 잇는  새 역사   

2012년 율원장 소임 맡은 후
계율특강·계상표해 발간 등
지계 정신 선양에 혼신의 노력

“계율은 율사들만의 학문 아닌
성불로 나아가는 수행의 과정 
계율 바로 서야 사회와도 소통”

우다이존자로부터 문안을 받으신 부처님의 말씀이다. 우다이존자는 “부처님께서 계율을 정해서 한량없는 악법을 멸하고 한량없는 착하고 묘한 법을 더하도록 해주셨기 때문에 아무 걱정도 없으며 안온하고 즐겁다”고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우다이를 칭찬하시며 계율에 대해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계율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깨달음에 이르고자 수행하는 사람이 반드시 닦아야 하는 세 가지[삼학, 三學]의 첫 출발은 계율을 지키는 것이다. 출가자의 계율을 집대성한 ‘사분율’에서도 “계율을 지키면 모든 수행자들이 피로하지 않고 편안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계는 속박의 굴레가 아니라 악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갑옷이라는 의미다.

금강율학승가대학원은 바로 이 계율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비구니 율사를 배출하는 비구니 전문교육기관이다. 조계종의 비구니 율원은 2007년 개원한 청암사 율학승가대학원과 이어 2008년 문을 연 운문사 보현율원까지 더해 단 세 곳뿐이다. 그 가운데서도 금강율학승가대학원은 가장 이른 1999년 6월 금강율원으로 개원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비구니 율원이었다. 이후 종단의 전문교육기관으로 인가되며 ‘율학승가대학원’으로 개편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금강율학승가대학원을 이끌고 있는 대학원장 심인적연(心印寂然) 스님은 2000년 2대 율원장 소임을 맡은 데 이어 지난 2012년 3월 대학원장의 소임을 맡아 다시 한 번 율원을 이끌게 됐다. 비구니교육사에 큰 봉우리로 남은 세주당 묘엄(1931 ~2011) 스님이 열반에 든 직후였다.

어느 곳 하나 묘엄 스님의 향취 서리지 않은 곳 없는 봉녕사지만 그중에서도 금강율학승가대학원은 더욱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곳에 율원이 세워지기 전까지 ‘비구니 율사’는 종단 내에서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비구니 율원이 없으니 비구니 율사가 있을 수 없다’는 논리였다. 율사 자운 스님으로부터 수학하고 1981년 전계 받은 묘엄 스님이 금강율원을 설치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8년 후인 2007년 5월, 묘엄 스님으로부터 전계 받은 첫 제자가 탄생했다. 적연 스님이었다. 비구니로부터 비구니에게 율맥이 이어지는, 한국불교사에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비구니율맥의 전계라는 역사적 순간, 묘엄 스님의 당부는 무엇이었나.
“계율은 부처님이 지키라고 해서 지키는 것이 아니고, 부처님이 되기 위해 출가자 본인이 스스로 느끼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셨다. 계율을 지켜야만 자신의 수행을 이끌고, 중생을 제도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적연 스님은 묘엄 스님의 강맥과 율맥을 모두 이은 제자다. 1997년 묘엄 스님의 강맥을 이어 받아 전강제자가 된 지 꼭 10년, 다시 율맥을 이은 첫 전계제자가 되었다. 경남 창원이 고향인 스님이 이곳 봉녕사에서 묘엄 스님과 이처럼 지중한 인연을 맺게 된 과정도 흥미롭다.

8남매의 일곱째로 태어난 스님은 어찌된 영문인지 어린 시절부터 “절에 가 살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리고는 약속을 지키기라도 하듯 스무 살을 넘긴 어느 날 김천 청암사로 출가했다. ‘절구통 수좌’로 명성이 높았던 비구니 선객 진오(1904~1999) 스님의 상좌가 되고 싶었지만 “나는 나이가 많으니 내 상좌인 보원 스님에게 출가하라”는 말씀을 따랐다. 은사 보원 스님은 운문사강원에서 강주 묘엄 스님에게 수학한  제자였다. 그렇게 묘엄 스님과 인연 깊은 은사스님의 손에 이끌려 온 봉녕사강원에서 묘엄 스님의 가르침을 받게 됐다. 출가의 첫 인연부터 모든 것이 적연 스님을 이곳 봉녕사, 묘엄 스님의 회상으로 이끌기 위해 마치 약속이라도 돼 있는 듯하다.

묘엄 스님은 엄한 부친이자 자상한 모친과도 같았다. 그날 배운 경전은 그날 모두 외워야 했다. 어려운 한자가 나오면 수없이 노트에 베껴 쓰며 외우도록 했고 매일 ‘쪽지시험’을 보며 점검했다. 새로 배운 한문 단어의 뜻도 빠짐없이 정리하고 외워야 했다. 학인들 주머니에는 그날 배운 경전, 한자, 단어 등 외워야 할 것을 적은 쪽지가 늘 들어있었다. “예불, 염불, 취침 시간을 빼고는 도량에 경 읽는 소리가 끊어져선 안 된다”는 묘엄 스님의 엄격한 원칙에는 누구도 예외가 없었다. 그런가 하면 묘엄 스님은 학인들의 말하는 법, 행동 하나하나 꼼꼼히 보살피는 어머니와 같았다. ‘걸음은 이렇게 걸어야 하고 웃을 때는 이렇게 웃어야 된다’며 직접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묘엄 스님께서 보여주신 ‘박자에 맞게 웃는 법’을 흉내 내며 학인들끼리 장난을 친 적도 있었다”며 “그때는 그저 재미삼아 어른스님 시늉을 낼 뿐, 왜 이렇게 가르치실까를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것이 율장에 나와 있었고 스님의 일상, 일거수일투족이 그대로 율장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렇게 적연 스님은 묘엄 스님의 가르침을 무엇 하나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이어받았다. 배우고 익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믿고 지원해준 묘엄 스님 슬하에서 적연 스님은 학문의 폭을 넓혀나갔다.

▲ 적연 스님은 2007년 묘엄 스님의 율맥을 이은 첫 전계제자가 되었다. 비구니로부터 비구니에게 율맥이 이어지는 한국불교역사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강원 졸업 후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이유는.
“강원에서 학인들을 가르치며 현대 학문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다. 전통적인 강원의 교육 방식도 중요하지만 세대와 시대의 변화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교육을 실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승가대학의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되나.
“승가대학은 출가자의 기본 정신을 배우는 곳이다. 승가의 공동생활을 배우고 행동, 위의, 역할 등을 익히는 곳이다. 교과목이 아닌 생활 속에서 익혀야 한다. 그런 기능을 수행하는 승가대학의 교육은 고수돼야 한다. 하지만 방법, 수단은 능률적이고 편리한 것들을 활용할 수 있다. 대장경이 전산화되고 인터넷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굳이 서책만 갖고 공부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교육 방법의 변화는 사실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이다. 무엇보다도 계율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체득, 계체(戒體. 잘못된 일을 막고 나쁜 짓을 그치게 하는 힘을 지닌 계의 본체)에 대한 인식의 확립을 적연 스님은 첫 손에 꼽는다. 승가교육의 기본과정에서 계율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체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본교육과정에도 계율 교육이 포함돼 있지 않나.
“개론에 불과하다. 계율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사상을 정립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계율은 탐욕을 버리고 대자유를 찾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수행자가 수행자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계율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습의가 필요한 것이다. 기본교육과정에서 충분히 계율을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제도가 보완돼야 한다.”

▲계율이 일부 율사 스님들만 배우고 연구하는 학문으로 인식되는 원인은.
“참선위주의 수행풍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선불교 위주의 풍토에서 형식적인 부분에 대한 소홀함이 원인일 수 있다. 계율은 행동 덕목이다. 학문으로 접하기 전에 익히고 실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계율에 대한 인식 변화가 재가자, 나아가 오늘날 사회에 갖는 의미는.
“계율의 상당부분은 재가자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됐다. 재가자들이 출가자들의 언행을 보고 부처님께 건의해 만들어진 것이 상당수다. 출가자들이 계율을 바르게 알고 지키는 것은 재가자와의 올바른 관계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계율에 대한 정체성이 올바르게 확립돼야만 현대사회가 종교인에게 요구하는 윤리적 대안을 율장에 근거해 제시해 줄 수 있다. 또한 승가의 운영과 사부대중의 관계, 화합의 방법을 두루 다루고 있다. 계율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 화합대중도 이뤄질 수 없다.”

묘엄 스님이 금강율원 설립 직후 가장 먼저 승가대학 강사와 사중 소임자들에게 율원 입학을 권한 것도 같은 의미였다. 묘엄 스님은 “강사도 율을 알아야 하고, 선사도 율을 알아야 걸림 없는 자기 소리가 나온다. 소임자도 율을 알아야 인과를 알고 소임을 바르게 살 수 있다”며 계율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강조했다. 강사였던 적연 스님도 율원 1기생으로 입학했다. 금강율원이 설립되기 전에도 봉녕사에서는 계율법석이 열렸었다. 계율을 배우고 공부할 여건이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1984년 열린 계율법석은 비구니스님들에게 그야말로 희유한 기회였다. 묘엄 스님 열반 후 봉녕사에서는 묘엄 스님의 계율사상을 선양하는 동시에 약화된 계율정신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고자 다시 한 번 계율법석을 펼쳤다. 2013년 열린 제1회 계율특강이 열띤 호응 속에서 회향되고 이듬해부터는 조계종 교육원의 연수교육과정으로 인가돼 매년 이어지고 있다.

금강율학승가대학원은 최근 또 하나의 뜻 깊은 성과를 이룩했다. 지난 2월 ‘사분율비구니계상표해’를 발간한 것이다. 금강율학승가대학원에서 비구니계 연구과정의 교제로 삼고 있던 ‘사분율비구니계상표기’의 번역을 발원, 4년 만에 맺은 결실이다. 단순한 번역에 그치지 않고 알아보기 쉽게 도표로 정리했다는 점이 탁월한 성과로 손꼽힌다. 또 저본에는 누락돼 있는 연기, 즉 각 계율이 설해지고 제정된 배경을 찾아 수록함으로써 완성도 높은 증보작업이 이뤄졌다는 점도 높이 평가된다. 이 과정에는 적연 스님이 대학원 재학시절 주력했던 ‘범망경’ 번역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번역 지침을 만들고 범어표기법을 통일하는 등 철저한 사전 준비작업의 결과 5~7명이 함께 이룩한 결과물은 마치 한 사람이 번역한 것처럼 통일성과 일관성을 갖추게 되었다.

▲번역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처음에는 후배스님들이 좀 더 편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번역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일이었고 1~2년 정도면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 지난 2월 발간된 ‘사분율비구니계상표해’에는 한 명이라도 더 계율을 쉽고 가깝게 접하길 바라는 스님의 바람이 담겨있다.

▲번역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 가장 주력했던 부분은.
“‘표기’본은 말 그대로 표로 정리돼 있는 형태다. 하지만 한문의 표라는 것이 우리말과는 배열 구조가 다르다. 그것을 우리가 볼 수 있는 한글 표로 재편집하는 것이 상상 이상으로 어려운 작업이었다. 누구든 쉽고 편하게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야만 한 명이라도 더 계율을 접하고 공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적연 스님은 2012년 동국대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대학원 합격 소식이 전해지고 얼마 후 묘엄 스님이 열반하고 대학원장의 소임이 맡겨졌다. 대학원 입학을 놓고 스님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기 위해서는 평생 걸어온 강사와 율사의 길, 그리고 스스로의 공부를 점검하고 정리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무엇보다 대승계에 대한 참고서가 필요함을 감안한 스님은 대학원 공부를 강행했다. 그리고 올해 ‘범망경의 수계행법과 수행체계 연구’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범망경 연구의 목적은.
“‘범망경’에서 제시되고 있는 보살계 정신은 자비심에서 출발해 남을 이롭게 하는 공덕 성취를 목표로 삼고 있다. 이 점에서 ‘범망경’은 오늘날 우리나라 불교계가 지향하는 대승불교 보살정신 선양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논문에서는 ‘범망경’을 통해 지계수행으로 불성을 깨달을 수 있음을 규명했다. 지계가 곧 수행이며 성불의 길임을 밝혀 지계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었다.”

계율은 학문이기 이전에 실천의 덕목이고 나아가 수행의 길이다. 이는 곧 오늘날 불교의 사회적 역할과도 맞닿아있다고 강조하는 스님은 ‘지계정신의 사회화’를 역설한다. “오계만 잘 지켜도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지만 구호로만 그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계율과 그 정신을 생활 속에 접목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들이 제시돼야 한다. 봉녕사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에게 팔재계를 수지토록 하고 하루만이라도 이를 지키게 하는 것은 지계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방법의 일환이다. 다도에 조예가 깊은 스님이 ‘불교다례’를 발간한 이유도 현대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다도를 통해 수행에 접근하고 그 과정에서 계체의 가치를 깨닫기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수준급을 자랑하는 서예 솜씨도 계율에 관한 경구들을 아름답게 적어 일상 속에서 가까이 접할 수 있는 서예작품들을 만드는 데 활용됐다.

‘어리석은 이들을 위해’ 계율을 제정하신 부처님의 자비, 그리고 비구니승가의 올바른 정체성을 세우고자 율원을 연 묘엄 스님의 원력은 이제 적연 스님에게 이어지고 있다. 그 깊은 자비와 굳은 원력 위에서 스님은 2500여년 역사의 계율과 그 정신을 대중의 눈높이와 생활에 맞게 전해야 하는 무거운 소임을 안고 서있다. 그러기에 ‘웃을 때 치아가 보이지 않게 하라’는 소소한 가르침조차 되새기며 지키려는 스님의 모습에선 묵직한 지계정신의 의미와 책임감이 느껴진다. 어리석은 이의 눈에 ‘그것은 그저 작은 일’로 보일지 모르지만 바로 그 우직한 정신이 살아있는 한 청정한 승단의 보배로움은 퇴색되지 않을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보일 듯 말 듯 엷은 미소로 인사를 건네는 적연 스님 뒤로 ‘비구니계율근본도량’이라는 현판이 장엄하게 빛나고 있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존경받을 만한 수행자…신도에 하대하는 법 없어 

내가 본 적연 스님

강원 도반 해인 스님=학인시절부터 외우기도 잘하고 이해도 빨랐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성격이었다. 우리 반 도반이 20여명이었는데 화합이 잘 돼서 묘엄 스님께서 예뻐하셨는데 적연 스님은 학인 때도 대중을 이끄는 통솔력이 좋았다. 계율을 철저히 지키는 것도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그다지 쾌활하거나 재미있는 성격은 아니다. 공부밖에 모르니 어디를 가든 점잖고 조용했다.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부지런히 맡은 일에 몰두하는 성품은 타고난 것이다. 평생 대중과 함께 생활하며 그 속에서 흐트러짐 없이 자신의 소임을 해내는 것만으로도 존경받을 만한 수행자임이 분명하다.

백흥암 도감 소현 스님=적연 스님의 강원 첫 제자다. 치문반 때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시자 소임을 맡았는데 연탄으로 난방을 할 때여서 밤에 연탄불을 갈아야 했다. 밤 12시가 넘어 연탄불을 갈기 위해 가다 보면 스님 방에 불이 훤히 켜져 있었다. 그때까지 수업준비를 하고 계신 것이었다. 스님은 학인들에게 계율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했다. ‘계율만 잘 지켜도 평생 수행자로 사는 데 큰 허물이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   단순히 계율의 문장을 설명하고 외우는 것을 넘어 계율의 의미와 중요성을 알려주신 스님의 가르침은 출가자로 살아가는 데 큰 지침이 되고 있다.

오정순 봉녕사 마야회장=적연 스님에게 ‘화엄경’을 배운 적이 있다. 설명이 매우 체계적이고 분명해 그 어려운 ‘화엄경’이 쏙쏙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혹여 강의 시간에 조금이라도 늦으면 숨을 헐떡이면서도 ‘늦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늦어진 시간만큼 수업을 더 했다. 바쁘다는 이유로 당신에게 맡겨진 책임을 소홀히 하는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이가 적은 신도에게도 늘 존댓말을 쓰며 먼저 다가가는 모습도 스님에 대한 존경심을 더욱 크게 만든다. 공양간에서 마주칠 때면 ‘잘 먹었습니다’ ‘음식을 참 맛있게 잘 하셨습니다’라고 먼저 인사하며 신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시한다. 얼마 전 계율특강에서 계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스님의 모습을 보면서 ‘묘엄 스님이 살아계셨으면 이런 제자의 모습을 보시며 얼마나 기뻐하실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1366호 / 2016년 11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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