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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팔정도에서의 번역어 문제 ①

기자명 김정빈

팔정도서 정견은 ‘정지견’ 뜻해

미래불교의 수행법을 제시함에 있어서 필자는 본고 39회에서 제시한 대승 십정도에 몇 가지 덕목을 더 추가할 필요성을 느낀다(1). 또한 각 덕목들의 내용에 있어서도 보다 역동적인 해석을 가할 필요성을 느낀다(2). 나아가 덕목을 지칭하는 단어 또한 매우 신중하게 선택되어야 함을 느끼는데, 그것은 새로 추가되는 덕목에 대해서도 그렇고 이미 사용되고 있는 덕목에 대해서도 그렇다(3).

정견은 과정, 정지견은 정견결과
빨리어 삼마딧티는 바른 지견
작의 뜻하는 번역어 염(念)도
있는 그대로 ‘봄’ 의미 놓쳐
바른 봄 통해 정정(正定) 성취

(3)부터 말해보자. 필자는 이미 그동안 팔정도에서 ‘정견(正見)’이라고 번역되어 온 팔리어 삼마딧티가 ‘정지견’이나 ‘정견해’라고 번역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정견은 팔리어 삼마딧티(sammāditthi)를 번역한 말인데, 이 말에서 삼마는 ‘바른’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것을 정(正)이라고 번역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딧티이다. 팔리어 딧티는 견해를 의미한다. 따라서 삼마딧티는 ‘정견해’로 번역되는 것이 옳다. 그런데 우리 불교계에서 견해는 ‘지견’이라는 말로 대체되어 쓰이고 있으므로 삼마딧티를 ‘정지견’이라고 번역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필자는 두 번역어 중에 정지견이라는 번역어가 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견해라는 말보다는 지견이라는 말이 더 불교적이고 범주가 넓기 때문이다.

조합된 글자를 단순하게 풀어보면 지견은 ‘보아서(見) 안(知) 것’을 의미한다. 이때 견(見)이라는 한자말과 지(知)라는 한자말 간에는 원인(과정)­결과의 관계가 있다. 본 것은 원인(과정)이고, 안 것은 결과인 것이다. 또한 두 단어는 앞의 것은 동사, 뒤의 것은 명사로도 분별된다.

이렇게 이해한 다음 삼마딧티로 돌아가보자. 삼마딧티는 불제자가 불교 교리를 들어서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불교 교리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그것은 부처님께서 있는 그대로 인간과 세계를 보신(見) 결과 얻어낸 결론으로서의 지식(知見)이다. 불제자는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그 지식이 옳다고 믿고 받아들이는데, 이것이 정지견이다. 팔정도의 정지견은 인간과 세계를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설하신 내용을 믿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불제자가 인간과 세계를 부처님처럼 있는 그대로 직접 보는 동사적 행동은 팔정도의 일곱 번째 덕목인 정념(正念)에서 행해진다.

정념으로 번역된 팔리어는 삼마사띠(sammāsati)이다. 이 말에서 삼마가 ‘바른’을 의미한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그대로이다. 이 경우에도 문제가 되는 번역어는 염(念)으로 번역된 사띠이다.

한국어나 중국어에는 없는 내용을 담고 있는 사띠를 어떤 말로 옮길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사띠야말로 팔정도 수행의 눈(眼)에 해당된다고 해도 좋을 만큼 중요한 수행법이기 때문이다. 삼마사띠(산스크리트어로는 삼마스므르티)를 정념이라고 번역한 것을 통해 우리는 중국의 역경가들이 사띠(스므르티)라는 말이 담고 있는 의미 전부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동안 중국 불교인들이 사띠를 번역한 말인 염을 작의(作意)라는 말로 풀었다는 사실이 그 증거의 하나이다. 작의는 ‘의도(생각)를 짓는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사띠에는 의도를 일으켜 생각을 짓는다(조작한다)는 뜻이 포함되지만(사마타사띠) 다른 뜻도 있다. 사띠에는 생각을 짓느니 마느니 하는 조작 이전의 단계, 즉 선입견이 없는 상태에서 사물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위빠싸나사띠).
있는 그대로 봄(如實見)은 그것을 과정삼아 깨달아진 결과물인 부처님의 법문(연기법)이 작의로 오염·왜곡되어 있는 세상(외도들)의 모든 견해를 넘어 고귀한 진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불교적 신념의 근거가 된다. 있는 그대로 봄은 곧 바른 봄(正見=동사)이다. 부처님께서는 팔정도의 일곱 번째 덕목인 이 바른 봄을 통해 여덟 번째 덕목인 정정(正定)을 이루셨고, 그 결과 아홉 번째 단계에서 무상정등각자로서의 지혜(般若·깨달음=명사)를 성취하셨던 것이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366호 / 2016년 11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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