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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도약을 위한 다짐

기자명 하림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6.11.08 15:07
  • 수정 2016.11.08 15:08
  • 댓글 0

얼마 있으면 우리 절에서 주지 이취임식을 합니다.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몇 분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도 줍니다. 제 기분은 너무 홀가분하고 기쁘고 고맙고 미안하고 그렇습니다. 물론 이 감정들에는 모두가 사연들이 깔려있습니다.

우리는 자연 속 존재이기에
언제나 돌아갈 준비를 해야
소임 놓고 떠나 미안하지만
은혜 갚으려 더 노력할 것

1994년 종단에 개혁 열풍이 불었습니다. 개혁회의란 이름으로 6개월간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비상종단에 있을 때였습니다. 그 때 중앙종회의장 선거가 있었는데 은사스님이 출마를 하셨습니다. 상대편 스님도 훌륭한 스님이어서 두 분이 선거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4표 차이로 갈렸습니다.

결과를 확인하고 은사스님을 보았습니다. 담담한 표정이었습니다. 회의장을 가득 메웠던 스님들이 새 원장스님과 함께 어디론가 가버려 주변은 썰렁했습니다. 은사스님은 혼자 부원장실로 올라가셨습니다. 조용히 따라갔습니다. 방은 텅 비어 있었고, 아무도 가사장삼 받아줄 사람도 없습니다. 선거 전까지 문전성시를 이룰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습니다. 그 순간에 권력의 무상함을 보았습니다. 선거 결과에 따라 사람들의 관심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을 그때야 알았습니다. 만약 그것을 불편하게 받아들였다면 은사스님도 많이 아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워하고 미안해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담담히 받아들이셨습니다.

흔히 권력과 돈은 사람을 모이게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왜 모이는지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주지는 권력도 돈도 아닙니다. 가장 약하고 부드럽고 연약합니다. 엄마가 아이를 대하는 마음과 같습니다. ‘신도들이 혹여 힘들어할까, 마음 상해할까, 서로 다투지는 않을까’하는 마음에 늘 걱정입니다. 엄마가 아이를 걱정하듯 주지는 신도와 절 살림 걱정이 놓아지지 않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위해 돈을 쓰듯, 주지는 신도를 위해 사찰의 성장을 위해 돈을 씁니다. 그러니 이게 무슨 벼슬이겠습니까. 떠날 때는 걸망에 담을 정도의 짐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주지는 봉사하는 소임입니다. 대중을 돌봐주고 살펴주는 소임입니다. 그러니 주지하길 싫어할 수 있고 부담스러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저도 ‘내가 남들에게 관심을 받고, 그런 관심에 길들여지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하는 존재들도 많이 있습니다. 담벼락에 돌들이 버티는 것은 눈에 띄지 않는 돌들이 함께 해 주기 때문입니다. 본래 우리는 혼자이고 본래 자연에서 왔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이치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은 뒤집혀도 세상이고 정의롭지 못해도 세상이고, 정의로워도 세상입니다. 세상은 늘 다른 견해가 있고 그래서 갈등이 있습니다. 바다를 향해 “제발 파도야 치지 말아라”고 한다고 안치는 것은 아닙니다. 또 파도가 없는 바다는 썩고 말 것입니다.

▲ 하림 스님
행복공감평생교육원장

 

자연의 존재임을 자각하고 자연으로 돌아갈 준비를 늘 해야 합니다. 본래 빈손이었는데 빈손이 된다고 한들 손해 보는 일이 아니고 본래 혼자였는데 혼자된다고 한들 외로울 리가 없습니다. 서로를 위해서 함께 사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지 다른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처럼 오래도록 대중을 살피고 신도들을 살피신 분은 없었습니다. 평생을 그리하시고도 피곤해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없으시니 가장 완성된 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조금하고 피로하다고 쉬고 싶다고 떼쓰는 제가 많이 부끄럽기도 합니다. 스스로 보현행을 포기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도 됩니다. 그러나 개구리가 먼 곳으로 도약하기 위해 잠시 다리를 모으는 것처럼 저도 좀 더 큰 역량을 모아 시주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더 열심히 살아갈 것을 다짐합니다.


[1366호 / 2016년 11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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