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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구 세 마리와 개똥 줍는 스님의 생명이야기

  • 출판
  • 입력 2016.11.14 17:39
  • 수정 2016.11.14 17:40
  • 댓글 0

‘개·똥·승’ / 진엽 스님 글·사진 / 책공장더불어

▲ ‘개·똥·승’
‘개똥’. 보잘것없거나 엉터리인 것을 향해 사람들은 ‘개똥같다’고 퍼붓듯 말하곤 한다. ‘개똥같이 별것도 아닌 것이 약에 쓰려면 없다’고 투덜대기도 하고, 개똥을 던짐으로써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개똥이 무슨 죄인가.

아이·개들과의 일상 소개
긴 말보다 귀한 가르침 담겨
아이들 그린 그림들도 수록

그 개똥을 열심히 줍는 스님이 있다. 그래서 ‘개·똥·승’이라고 놀려도 화내지 않는다. 아침 공양을 마치면 봉투를 들고 ‘보물찾기 하는 냥’ 마당 이곳저곳에서 개똥을 찾는다. 개똥을 살피며 누가 속이 안 좋은지 누가 변비인지 알아본다. 척 보면 누구 똥인지도 안다. 그 스님의 이야기를 담은 책 제목도 그대로 ‘개·똥·승’이다. ‘네 발 달린 도반들과 스님이 들려주는 생명 이야기’가 부제다.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용문사 부설 선재나무어린이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진엽 스님은 어린이집 옆 요사채에서 사형 한 명, 그리고 ‘백구’ 세 마리와 동거 중이다. 첫 인연은 태어난지 두 달도 채 안 돼 만난 강아지 선우였다. 요사채에서 자란 하얀 강아지 선우는 어린이집 아이들이 산책길에 들르면 꼬리를 흔들며 반겼다. 그런데 어느 날 4살짜리 아이가 선우에게 돌멩이를 던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스님이 채 말릴 새도 없이, 그리고 뭐라 타이르기도 전에 또 다른 아이가 “그러면 안 된다”며 말리고 나섰다.

“그 아이들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돌을 던지는 아이와, 말리는 아이는 누구일까. 아이들의 마음은 하얀 도화지와 같다는데, 이 아이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해준다면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더 행복한 곳이 되지 않을까.”

▲ 진엽 스님은 개들과 지내면서 더 많은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스님은 그날부터 선우와의 일상을 글로 남기고 몇 장의 사진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짧은 몇 문장에 그칠 때도 있지만 때로는 긴 말보다 귀한 가르침을 담기도 한다.

‘텃밭에 심어진 무를 뽑아서 먹어 보니 연한 것이 참 달았다.…선우가 한 입 먹더니 가만히 나를 쳐다본다. 맛있구나. 깨달았다. 사람 입에 맛있는 것이 선우에게도 맛있다는 걸. 내게 맛있는 것이 남에게도 맛있다는 것.’(29쪽)

‘선우와 살면서는 귀를 열어 더 많은 생명의 소리를 듣고, 눈을 떠서 다른 생명의 삶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지 않던 주장도 목소리를 더 높여 말한다. 자비를 생각으로만 베푸는 게 아니라 자비를 실천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36쪽)

어느 날 선우가 ‘멋진 자유연애(?)’에 성공한 덕에 강아지 6마리가 태어났다. 좌충우돌 출산과 성장기를 거쳐 4마리 강아지들은 새로운 인연을 찾아 떠났다. 그리고 남은 선우와 두 딸 오페라·파랑이의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하다.

두 스님과 어린이집 아이들, 그리고 세 모녀의 동거는 수많은 생명이 살아가는 지구의 작은 축소판이다. 가기 싫다는 파랑이를 억지로 끌고 가 산책을 다녀온 후 1년간 파랑이는 스님을 경계했다. 몸을 말리기 위해 풀숲에서 나오는 뱀과 선우가 서로 싸우지 않도록 한낮에 선우를 내보내지 않으면 평화가 유지된다. 아이들도 다른 생명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다. 약한 존재에게는 어른보다 더 큰 자비심을 보여주기도 한다. 간혹 어린이집에서 배운 것과 달리 식용 개를 키우거나 보신탕을 해 먹는 집들도 있긴 하지만 스님은 이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조금씩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어린이집에서 만난 아이들이 벌써 자라서 초등학생, 중학생이 됐어요. 선우와 오페라·파랑이와 더불어 자란 그 아이들이 희망이죠. 지구라는 테두리에서 보면 인간도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자연 안에 잠시 왔다 가는 것인데, 인간 아닌 다른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것은 지나친 오만입니다. 모든 생명이 존귀하다 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면 모든 생명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좀 더 가까워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책에는 아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도 함께 수록됐다. 대부분은 선우를 비롯한 세 마리 백구의 그림이지만 검게 그려진 개도 간간히 눈에 띈다. 유기견보호센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아이들의 그림이다. 돌보는 손길이 부족해 검게 더렵혀진 개, 아스팔트 위를 위태롭게 걷는 유기견도 모두 검은색이다. 아이들은 유기견돕기바자회가 열린 날 동전이 담긴 저금통을 가져와 고사리손으로 내밀었다.

“그 저금통이 더없이 묵직하게 느껴졌다”는 진엽 스님은 “나와 남, 내 생명과 다른 생명이 똑같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이들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1만2000원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367호 / 2016년 11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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