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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

불교 통해 삶의 참 모습 드러냈던 20세기 대표 문학거장

▲ 자신의 서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창작에 전념했던 올더스 헉슬리.

소설가이며 극작가인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는 1932년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를 출간하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로 등극했다. 위트 넘치는 글과 풍자가 가득한 단편으로 20세기 대표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약한 시력에 과학자 길 포기
소설가, 비평가, 극작가 활동

젊은 시절 인도를 여행하며
동양의 역사와 종교에 심취

대표작 ‘멋진 신세계’에는
불교의 ‘무상’ 가르침 담아

생애 마지막 저서 ‘섬’통해
불교적 유토피아 세계 소개

세상에 많은 종교 존재해도
겁 안 주는 종교 불교 유일

작품 배어있는 불교의 흔적
찾지 못한 비평가 안타까워

헉슬리는 1894년 영국 고들밍(Godelming) 지역 명망가 집안인 헉슬리 가문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유명한 생물학자 토마스 헨리 헉슬리(Thomas Henri Huxley)였으며 아버지는 차터 하우스의 교감, 어머니는 소설가였다. 어린 시절 각막염을 앓아 헉슬리는 3년을 실명 상태로 지냈다. 할아버지와 같은 훌륭한 과학자를 꿈꿨던 헉슬리는 앞을 보지 못하는 절박한 상황을 경험하며 자신의 진로를 수정해 글쓰기에 몰두했다. 헉슬리는 1차 세계대전에 참여하려고 했지만 나쁜 시력으로 인해 군으로부터 거부당했다. 그나마 한 쪽 눈의 시력을 조금씩 회복되면서 헉슬리는 22세가 되던 해 ‘옥스퍼드 시집(Oxford Poetry)’이라는 잡지의 편집을 맡으며 많은 시를 창작할 수 있었고 동시에 옥스퍼드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이런 헉슬리에 대해 그의 형은 헉슬리의 실명이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작용해 과학자가 아닌 훌륭한 문학인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 올더스 헉슬리는 미국 대통령이었던 케네디,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 루이스와 같은 날에 세상을 떠났다.

비판적이면서 신랄한 풍자를 담은 소설로 경력을 쌓아가던 헉슬리는 대표작 ‘멋진 신세계’를 출판하며 작가로서의 이름을 세계에 널리 알렸다. 비평가들은 “‘멋진 신세계’는 당시 문단에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미래지향적인 내용들을 담은 걸작으로 20세기 최고의 소설 중 하나”라고 호평했다. 헉슬리는 매우 실험적인 사람이었다. 특히 초자연적이거나 미스터리 한 일들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내면의 자아를 성찰해 인생에 있어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에 만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것들을 초월한 궁극적인 행복을 찾고자 골몰했다. 1960년 암 진단을 받은 헉슬리는 2년 간 글쓰기만 몰두하며 생애 마지막 작품인 ‘섬(Island)’을 출간했다. ‘섬’이라는 소설은 대단히 흥미롭다. 티베트 불교를 따르는 섬 하나를 유토피아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교에 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소설이다. 1963년 11월 22일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존 에프 케네디(John F. Kennedy)가 암살됐던 그날 헉슬리는 죽음을 맞이했다. 69년의 삶 동안 헉슬리는 50여편이 넘는 책을 출간했으며 비평가, 시인, 극작가, 소설가로 활약하며 20세기를 대표하는 훌륭한 문학인으로 이름을 남겼다. 헉슬리의 대표작인 ‘멋진 신세계’는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불교소설임을 인식하기 힘들다. 그러나 면밀히 살펴보면 불교에 대한 헉슬리의 사상이 집약돼 있다. 부처님의 삶과 가르침인 ‘무상’의 철학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종교들이 존재하지만 오직 불교만이 그 어떤 검열과 차별을 하지 않으며 우리에게 ‘최후의 심판’이라는 단어로 겁을 주지도 않는다. 종교 재판과 같은 무시무시한 역사는 불교에서는 절대 찾아보지 못할 것이다.”

헉슬리는 평소 주변에 불교를 이렇게 소개했다. 그래서 헉슬리의 작품을 깊게 들여다보면 불교에 대한 그의 생각과 느낌, 나아가 불교의 가르침, 불자로서의 삶의 모습 등이 향처럼 스며들어 있다.

▲ 올더스 헉슬리의 대표작 ‘멋진 신세계’의 표지.

대표작 ‘멋진 신세계’ 또한 마찬가지다. 헉슬리는 서로 다른 두 사회에 대한 객관적 효율성을 증명하기 위해 불교의 가르침을 틈틈이 등장시키고 있다.

헉슬리는 글 쓰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을 세계의 종교, 철학, 명상 등을 익히고 습득하는데 보냈다. 평소 개신교와 천주교에 환멸을 느꼈던 헉슬리는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과정에서 다양한 철학이론들을 탐독했다. 서양철학뿐만 아니라 동양의 종교와 철학까지 폭넓은 탐구욕을 발휘했던 헉슬리는 마침내 불교를 만나면서 그토록 갈구했던 답을 찾게 됐다.

헉슬리는 1925년 아내 마리아와 함께 인도를 방문했다. 헉슬리는 인도를 여행하며 그들의 소박한 삶과 다양한 문화, 깊은 역사에 큰 감동을 받았다. 인도 여행은 그의 창작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인도를 여행하며 헉슬리는 인간사회에 분열을 촉발시키고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심도 깊게 돌아보는 계기를 갖게 됐다. 그러면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강조했던 종교 체계와 ‘중도(中道)’의 의미에 대해 특별히 더 주목하게 됐다. 기존 서양종교의 도그마들을 거부하고 융통성이 부족한 종교인들에 환멸을 느끼며 그는 점점 더 불교에 깊이 빠져들었다.

▲ 명상 중인 올더스 헉슬리의 모습.

생애 마지막 저서였던 책 ‘섬’에서 헉슬리는 끊임없이 경고해왔던 우리 사회의 암적인 요소들을 다뤘다. 유토피아였던 섬 팔라(Pala)는 인구의 과도한 증가, 부패한 정치, 심각한 기계화, 심화되는 물질에 대한 의존, 환경 파괴, 과학과 기술에 대한 지나친 숭배 등을 통해 파괴되고 결국 종말을 맞게 된다. 팔라 섬의 사람들은 불교의 가르침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섬에 사는 사람들은 ‘세상은 영원불변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선과 악 또한 공존함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명상을 통해서 마음을 다스리고 인간은 텅 빈 공의 세계를 인식함으로써 무한함을 얻게 되는 진리를 이해한다. 그러나 결국 독재자가 지배하고 있는 이웃 섬에 의해 사라지고 만다.

헉슬리가 생애 마지막 무렵에 집필한 ‘섬’은 그의 어떤 저서보다 더 불교적이며 또한 불교에 관한 그의 생각이 가장 촘촘히 드러나 있다. 삶과 진리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열 속에서 인도와 동양의 역사와 철학, 그리고 종교를 깊이 이해했던 헉슬리는 마침내 불교를 통해 진리를 향한 갈증을 풀 수 있었으며, 불교를 통해 더욱 풍요로운 삶과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 올더스 헉슬리의 마지막 작품 ‘섬’의 표지.

헉슬리가 불교와 만난 것은 친구가 그에게 남긴 한마디 말을 통해서였다. “불교는 나에게 그저 단순히 이국적인 종교만은 아니야. 불교에서 설명하는 철학들, 인간의 인생을 설명하는 방법 등은 너무나도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동시에 기존의 과학과는 상반되게도 우리의 마음에 따스한 감동을 주기도 하지.”

올더스 헉슬리가 세상을 떠난 후 오랜 친구였던 러시아 출신의 작곡가였던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는 그의 마지막 오케스트라 작품이었던 ‘산타페 변주곡(Variations in Santa Fe)’을 헉슬리에게 헌정하기도 했다. 

헉슬리의 불교에 대한 이해는 대표작뿐만 아니라 논픽션 에세이와 편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불교에 대한 헉슬리의 깊은 이해가 많은 작품들 속에서 드러나고 있음에도 문학계에서 이런 면을 애써 간과해왔다. 그 어떤 문학 비평가도 ‘멋진 신세계’ 속에서 불교를 찾아내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라도 20세기 걸작으로 간주되는 ‘멋진 신세계’를 불교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노력들이 경주되길 기원한다.

알랭 베르디에 저널리스트 yayavara@yahoo.com

[1367호 / 2016년 11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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