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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 촛불

기자명 원빈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6.11.21 11:47
  • 수정 2016.11.21 11:48
  • 댓글 0

며칠 전 BTN에 청년불자 10명이 절친 녹화를 위해 모였습니다. 녹화를 잘 마무리한 후 헤어짐의 순간, 한 청년이 자신의 다음 행선지를 말하더군요.

100만명 숫자 한마음 된 것은
대통령서 내모습 발견해서기도
‘꼭두각시’ 자화상서 해방위해
침묵 벗어나 마음 촛불 밝혀야

“스님 전 오늘 촛불 하나 보태러 갑니다.”

그리고 그 날 역사상 최다수의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100만 평화촛불집회가 안전하게 치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100만이라는 숫자가 한마음으로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정말 희유한 인연입니다. 무엇을 원동력으로 그들은 그 자리에 나서게 되었을까요? 비선실세에 대한 분노? 현 대통령에 대한 실망? 도대체 무엇일까요?

사실 근현대 한국의 정치 역사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정치인에게 국민은 끊임없이 실망을 반복해 왔습니다. 수많은 정치인이 비리를 저질렀고, 그것이 드러나면서 국민은 분노했죠. 하지만 그 분노는 쉽게 사그라들었고, 그렇기에 비리를 저지르는 정치인은 그들의 자리를 만들어줄 힘의 원천인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개돼지’라는 비하 발언이 이슈가 되기도 했었죠.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의 국민들이 보여주는 분노는 예전과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고, 오히려 더 넓게 그리고 깊게 불타오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신의 의견을 발언하기 시작했고, 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거리로 나가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전(前) 세대의 청년들에 비해 나약하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전  세대 대학가의 극성이었던 시위와 비교해보면 현재의 대학생들은 지극히 온순하다는 것은 쉽게 수긍이 갑니다. 헬지옥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온순하게 참고 있던 청년들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작은 이화여대에서부터였죠.

대학생들뿐인가요? 중고등학생들이 집단을 이뤄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뉴스에서 봤습니다. 그들이 들고 있는 자극적인 문구의 팻말이 어른들의 심장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집회에 나온 어린 소녀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진을 보고 전 궁금했습니다. 이토록 국민의 마음을 불타오르게 만든 원동력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부처님께서는 세상 모든 존재가 자신을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잘못된 점을 보고 분노한다는 것은 그를 통해 스스로의 잘못된 점을 발견하기 때문이죠. 만약 스스로에게 그 잘못된 점이 없다면 상대방의 실수를 인지조차 못하지 않을까요? 어린아이가 모르는 욕설에 반응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국민에게 밝혀진 현 대통령의 신세는 꼭두각시입니다. 그리고 국민은 그 모습을 보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통령에 대한 분노이기도 하지만 그 모습에서 자화상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지금 국민은 정치인들과 자본가들, 그리고 외세의 꼭두각시 노릇을 해오고 있던 스스로의 모습에 직면해 있습니다.

4대강, 부정투표, 세월호… 헤아리기 어려운 비리 속에서 국민의 분노는 금방 사그라들었습니다. 소수의 지성이 ‘잊지 말라’고 애원하는 소리가 국민의 무관심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것 같습니다. 연일 보도되는 현 대통령의 모습이 끊임없이 국민에게 피하고 싶은 진실의 단어 ‘꼭두각시’와 직면하도록 강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전 정치인들의 비리가 남의 문제였다면 지금의 비선실세 문제는 더 이상 남의 문제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국민은 이제 ‘꼭두각시’ 자화상에서 해방되고 싶어 합니다. 아직은 정치적 지성의 부족으로 그 방법이 매끄럽지 못하기도 하고, 다양한 정치놀음에 이용당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해방의 몸부림인 촛불이 번져가고 있습니다.

▲ 원빈 스님
행복명상 지도법사
현 비선실세 이슈는 더 이상 대통령의 처분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잠들어 있는 국민의 정치적 지성을 일깨운 이 인연이 대한민국 역사의 분기점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미래의 정치인들이 국민을 꼭두각시로 볼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순간입니다.

미래의 정치인과 국민의 대결의 승패는 촛불의 깊이와 크기에 의해 결정될 것입니다. 침묵하고 있는 불자들 역시 이제는 마음의 촛불을 밝혀야 할 때입니다. 정치인들의 힘의 근원은 국민이라는 진실을 분명히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이들이 자각의 촛불을 밝혀 꼭두각시에서 벗어나시길 발원해봅니다.

[1368호 / 2016년 11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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