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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안거와 미슐랭 가이드

기자명 김유신

사찰음식, 미슐랭 가이드 선정
맛보다 음식에 담긴 인연 중시

안거는 1년에 한번 각자 흩어져서 수행했던 수행자들이 한 곳에 모여 대중생활을 하면서 수행을 독려하고 각자의 증과(證果)를 확인하는 고유의 수행방식이다. 본래 우기(雨期)를 맞아서 행했던 것인데 인도와 기후환경이 다른 북방불교권에서는 혹독한 추위를 피하기 위해 겨울에도 안거를 행하고 있다.

안거를 행할 때 중요한 고려사항 중 하나가 수행대중들의 공양이 가능한지 여부였다.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수천 명의 대중들이 한 곳에서 수개월 동안 머무를 경우 식사문제는 대중생활의 가능여부를 결정하는 최우선 고려사항인 것이다.

여러 경전에 안거와 관련하여 부처님께서 어려움을 겪으셨던 이야기가 나오는데 대표적으로 비란야 지역에서 3개월간 말먹이로 쓰일 보리를 공양 받으신 일이 있었다. 이 때 아난을 비롯해 제자들이 여래가 거친 음식을 드시는 것에 대해 크게 걱정을 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여래가 흙이나 나무나 기왓장이나 돌멩이 등을 먹어도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안에는 여래가 먹은 그 흙과 나무와 기왓장과 돌멩이 등의 맛과 같은 훌륭한 맛은 없다. 왜냐하면 여래는 최상의 묘한 맛 중의 맛인 대인(大人)의 상을 얻었기 때문이다. 선남자야,이런 뜻으로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즉 여래의 일체 모든 음식은 다 최상의 묘한 맛이니라”(한글대장경 ‘불설대승십법경’)라고 말씀하셨다. 음식의 탐착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가르치신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증일아함경’의 ‘마왕품’에 보면 부처님께서 바라동산(婆羅園)에 계실 때 마왕(魔王) 파순의 방해로 인해 탁발을 할 수 없게 되자 이를 계기로 음식을 통해 수행자들을 깨우치고자  ‘세간식(世間食)’과 ‘출세간식(出世間食)’으로 구분하여 말씀하신 바가 있다. 세간식은 4가지로 단식(揣食), 갱락식(更樂食), 염식(念食), 식식(識食)이며 출세간식은 5가지로 선식(禪食), 원식(願食), 염식(念食), 해탈식(解脱食), 희식(喜食)이니 비구들은 세간식을 버리고 출세간식을 얻으라고 하셨다.

어떤 음식을 먹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음식을 대하느냐가 더 중요함을 강조하신 것으로 중생의 음식을 부처의 음식으로 비유한 것이다. 부처님의 눈으로 보면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닐진대 세간의 음식도 출세간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곧 해탈의 음식이 되고 진리의 음식이 되는 것, 이것이 불교의 음식관이자 사찰음식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1월7일 세계적으로 권위를 자랑하는 프랑스의 미식 소개서인 ‘미슐랭 가이드(Michelin Guide)’의 서울편에 수록될 식당들이 발표되었고 사찰음식전문점 ‘발우공양’이 25개의 ‘스타레스토랑’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서양에서는 18세기 이후 미식(美食)에 대한 개념이 자리 잡았는데 미식, 혹은 미식가를 칭하는 말인 ‘가스트로노미(gastronomy)’는 위를 뜻하는 ‘gastro’와 ‘지식·법칙’을 뜻하는 ‘nom’이 합쳐진 말로 직역하면 ‘먹는 법’, 의역하면 ‘맛있게 음식을 요리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구별하는 방법이나 사람’을 의미한다. 즉 ‘맛’이 음식을 분류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서양의 미식개념에 기초하여 운영되고 있는 미슐랭 가이드에 사찰음식을 다루는 발우공양이 선정된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지만 일개 맛집 소개서에 불과하니 심상하게 넘길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맛 그 자체에 대한 탐닉에서 벗어나 음식이 만들어지기까지 이루어지는 온 우주적 질서에 대한 각성과 생명에 대한 감사, 온 세상의 조화로운 공존을 지향하는 것으로 미식 개념이 변화하는 계기로 삼아도 좋지 않을까 싶다.

김유신 yskemaro@templestay.com

[1368호 / 2016년 11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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