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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지원 스님과 상추대궁전

음식은 맛보다 담박한 마음이 중요…정체성 모호한 사찰음식 걱정

▲ 일러스트=강병호 작가

문수사는 부산시내 한 가운데 자리한 도심포교당이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도량이지만 전통사찰의 면모를 갖춘 것이 특징이다. 주지 지원 스님은 이곳을 평화도량으로 만들기를 발원한다. 모든 사람이 어울려 함께 잘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종교인의 사명이자 종교의 존재 이유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벽안 스님께 배운 나물무침
된장과 고추장 비율이 비결

상추대궁전은 최고의 요리
신경안정과 숙면에 큰 도움

송광사 현문 스님의 짜장면
항상 생각나는 별미 중 별미

스님은 1966년 14살 나이에 법흥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은사스님은 통도사 강주였던 홍법 스님에게 지도를 부탁했고, 이에 통도사에서 행자생활을 시작했다. 몇 개월 뒤 사미계를 받은 지원 스님에게 벽안 스님 시봉 소임이 주어졌다. 당시 벽안 스님은 편찮으신 중에도 후학들에게 ‘사문은 쌀 한 톨, 나물 한 젓가락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늘 강조하셨다. 심지어 공양간 하수구를 살펴 밥풀 하나라도 발견하면 아무런 말씀 없이 걷어내 물에 씻어 드셨다.

스님의 이러한 철저함은 어린 사미들에게 살아 있는 교육이자 큰 경고였다. 지원 스님 역시 시봉시절 보아온 벽안 스님의 실천행이 그대로 인생의 지남이 됐다. 실제로 그랬다. 지원 스님은 벽안 스님에게 채공법을 비롯해 음식 만드는 법, 옷 짓는 법, 도배하는 법 등 승가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기본을 모두 배웠다.

“당시 통도사 대중들은 모두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그런데 벽안 스님은 병환으로 편찮은 상태셨기에 따로 상공양을 올렸습니다. 공양간에서 공양을 얻어와 어른스님이 편안하게 드실 수 있도록 간단하게 다시 조리를 했습니다. 이때 어른스님은 채공법이며 음식 만드는 방법을 직접 가르쳐주었습니다.”

벽안 스님에게 배운 공양비법 중 하나가 나물무침이다. 채소는 된장으로 무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된장과 고추장의 비율을 8대2 또는 7대3으로 하면 향과 맛이 배가 된다. 국수도 자주 만들어 올렸던 음식 가운데 하나였다. 위가 좋지 않아 많이 드시진 못했지만 결코 국수공양을 물리는 법이 없었다. 벽안 스님은 특히 꼬들꼬들한 면을 좋아했는데, 뜨거운 물에 면이 삶아지면 바로 찬물에 넣어 치대며 헹구는 것이 비법이다. 여기에 표고버섯 삶은 물을 기본으로 간을 맞추고 잘게 썬 김치를 고명삼아 조금 얹으면 한 끼 공양으로 손색이 없는 맛있는 국수요리가 된다.

“벽안 스님에게 전수 받은 최고 요리는 단연 상추대궁전입니다. 상추대궁은 칼로리가 적고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한 식재료로 상추줄기 속 우윳빛 유액은 신경안정 작용과 숙면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선 준비한 상추대궁을 잘 씻은 후 대궁 부분을 방망이로 두드려 부드럽게 만듭니다. 밀가루로 묽은 반죽을 만들어 상추대궁에 묻히는데 여기서 포인트는 밀가루 옷을 최대한 얇게 입히는 것입니다. 부침에는 들기름을 사용하는데 노릇하게 구운 상추대궁전은 예나 지금이나 누구나 좋아하는 최고 별미입니다.”

어린나이에 출가한 만큼 스님에겐 유독 간식에 대한 추억이 많다. 사미시절 최고의 간식은 부각이었다. 감자부각을 가장 좋아했고, 미역이나 미역귀로 만든 것도 좋아했다. 스님들 공양상에는 소금간을 한 부각을 내놓았지만 사미들은 몰래 설탕을 넣어 달게 해 먹었다. 통도사에는 손님이 오시면 대접하려고 감을 저장해 두는 뒤주가 있었다. 뒤주는 월하 스님 방 옆에 있었는데 하루는 사미들이 몰래 먹으려 뒤주를 뒤지려다 그 속에 빠지는 소동이 일어났다.

“사고를 쳤으니 사미들 모두 잔뜩 겁을 먹었어요.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며칠이 지나도 어느 하나 이에 대해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겁니다. 그런데 몇 십 년 후 찾아뵌 월하 스님께서 웃으시며 그 일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누구보다 가슴 졸였을 어린 사미들이 더 상처받지 않도록 감싸 안아준 어른스님에게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물론 그 일이 일어난 후에도 재를 지낸 뒤 평소 못 먹던 사탕 등을 한꺼번에 많이 먹어 배탈이 나는 등 이러저러한 소동들이 적지 않았어요.”

스님은 1970년대 초 은사 법흥 스님을 좇아 잠시 송광사에 머문 적이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절 살림은 확실히 영남보다 호남이 빈약했다. 찬이 많고 적음을 떠나 통도사에서는 그래도 쌀밥을 먹었는데 송광사 공양은 100% 보리밥이었다. 그러나 음식은 역시 전라도를 따라 갈 수가 없었다. 송광사에서 최고의 음식을 만났으니 구산 스님의 상좌 현문 스님이 만드는 짜장면이었다. 현문 스님은 한 달에 두 번 절에서 키운 채소만으로 짜장을 만들어 대중공양을 올렸는데 한 번 맛보면 정신이 확 돌아올 정도로 맛있었다.

“옛날 사찰음식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양념도 많지 않았고, 예쁘게 만들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맛보다 음식을 대하던 스님들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최근 사찰음식에 마음은 사라지고 정체모를 음식만 남은 것 같아 걱정입니다. 사찰음식의 맛도 전승돼야겠지만 무엇보다 옛 어른들의 쌀 한 톨 아끼는 마음, 음식 하나에 기도하는 그 간절함이 전승되어야 할 것입니다.”

정리=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지원 스님은

1966년 법흥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중앙종회의원, 총무원 사회부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 2015년 효봉 스님을 주제로 동방문화대학원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368호 / 2016년 11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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