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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청년이 가져야 할 애정관-상

“혼인의 조건은 상대와의 신뢰와 연분, 너그러움입니다”

▲ 대만 불광산 불자들이 사찰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불광산 사진제공

“한 인간이 수 많은 인간 중에서 감정적인 특별한 만남이 있게 되면 좋고 나쁜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지만 지혜를 거친 선택을 하는 경우는 아주 적습니다. 사실상 상대를 알게 되어 교제를 시작하면 한 동안은 관찰의 시기를 가져야만 합니다.”

‘출가자가 된다’는 것은 아주 쉽지 않고 성불은 더욱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든다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삼계의 스승(三界導師)이고 사생의 자애로운 아버지(四生慈父)”라고 말한다면 석가모니 부처님은 삼계와 사생의 온갖 정황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잘 보살펴주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하듯 현재에서 한 사람의 출가인이 되고자 한다면 불법을 널리 펼치고 보살도를 행하면서 고난에서 중생을 구해주어야 합니다. 수많은 중생 속에서 고난은 언제 어디서든지 끊임없이 발생할 것인데 일반인들이 사람노릇 하기가 어렵다고들 말하지만 사실 출가하여 승려가 되는 것도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사회에서 출가인을 ‘스님’이라 부르고 있는데 ‘스님’의 책임은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저는 본래 ‘빈승’이라서 특수한 조건을 달리 갖고 있지는 않지만 어르신들이 저를 찾아와서는 “자녀들과의 세대 차이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요?”라거나 “절에 와서 수행을 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어요”라는 질문을 합니다. 또 중년의 부부들도 성격 차이나 가정사 같은 고민을 갖고 자주 저를 찾아옵니다. 출가인으로서 일반들의 삶과 경험을 많이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특히 지금은 불법(佛法)을 배우는 청년 제자들이 아주 많기 때문에 그들이 사회진로에 대해 어찌할 바를 몰라서 막연해 하는데 간혹 우리의 도움으로 그들을 이끌어줄 필요가 있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취직문제로, 어떤 사람은 해외로 유학을 가는 문제로, 어떤 사람은 경제적 지원을 받기 위해 장학금을 필요로 하는 등등의 문제들이 있기도 합니다. 이 중에서 가장 해결하기 곤란한 것이 바로 청년 남녀의 감정적인 갈등입니다. 불교가 청년들을 필요로 하고 의지해야 하는데 어찌 청년 친구들의 전반적인 문제를 살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과거 수십 년 이래로 청년 불자들 가운데 청년남성의 경우 자신의 여자 친구가 어떠어떠하니 잘 결정할 수 있게 자신을 도와 달라고도 하고 청년여성들도 찾아와서 최근에 남자친구가 새로 생겼는데 저에게 사람을 보고 의견을 달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본래 이러한 수많은 일들은 그들의 가장이나 부모님과 의논해야 마땅하지만 부모의 집착과 편견으로 젊은이들과의 소통이 쉽지 않은듯 합니다. 소위 말하는 “옆에서 보는 눈이 더 정확하다”는 말처럼 그들은 부처님의 제자인 스님이 비교적 객관적이라는 생각에서, 자신에게 조언을 해주고 방향을 알려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우리를 찾아오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청년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청년들에게 가장 중대한 인생여정과 애정의 길에 대해서 약간의 의견과 지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오늘날 이 사회의 남녀가 흔히들 “한 눈에 반했다”라고 말하는 상황에 대해서 매우 염려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남녀간 왕래는 너무 자유롭습니다. 청년 시기는 생각이 아직 성숙하지 않아서 인생의 오고가는 관계에 대해서 깊게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많은 남녀들이 흔히들 “잘 알지 못해서 결합하였고 알게 되었기 때문에 헤어진다”고 하는 것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불교에는 본래 출가와 재가의 구분이 있으며 신앙은 같지만 출가와 재가의 생활은 현저하게 다릅니다. 출가자도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고 출가자의 감정은 소위 말하는 ‘이기심이 없는 큰 사랑’으로, 개인을 위한 점유와 욕망이 아니라 ‘모든 중생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희생하고 기여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재가불자는 불교에 대한 참되고 지극한 신앙으로, 불교의 기본교의인 ‘삼귀의’ ‘오계’를 봉행할 수 있다면 불제자로서 평생으로 믿고 받들어 실천하면 무한한 도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저는 과거에 취업센터를 설립하려는 생각으로 사찰 한 곳을 바꾸려고 했습니다. 출가와 재가의 중간 정류장으로 활용하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지방에서 도시로 몰려든 청년남녀들이 오색찬란한 불빛과 눈길을 끄는 온갖 구경거리가 가득한 도심에서의 생활을 갑자기 접하게 되면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비록 사회에 직업 소개소가 있기는 하지만 책임을 지지 않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순수한 많은 남녀들을 정당치 못한 길을 걷게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만약 많은 청춘남녀들을 단기간 절이라는 단체에 머물게 하면서 그들이 학원에 다니며 공부를 하거나 도서관에서 공부하도록 하고 여러 곳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참관하도록 하고 여러 회사와 공장을 견학하고 설명을 듣기도 하고 노약자나 어린이 보호시설에서 단기 봉사를 체험하게 하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중에 학업을 계속하거나 혹은 취업을 할 것인지는 다시 결정하면 됩니다.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서 찾아온 도시에서 먹고 잠자는 어려움 때문에 쉽게 외부의 유혹에 넘어가 인생의 아름다운 꿈을 펼치지도 못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빈승의 이러한 이상이 비록 완전하게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저는 우리 불광청년회, 청년팀, 학생회에 전문 인력을 배치해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단지 수많은 젊은이들은 남녀교제를 비밀스럽게 하면서 남에게 알리지 않습니다. 한 인간이 수많은 인간 중에서 감정적인 특별한 만남이 있게 되면 좋고 나쁜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지만 지혜를 거친 선택을 하는 경우는 아주 적습니다. 사실상 상대를 알게 되어 교제를 시작하면 한 동안은 관찰의 시기를 가져야만 합니다.

수십 년 전 우리 사회는 “우선은 친구로 지내다가 나중에 혼인을 논하자”는 주장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친구’의 단계가 거의 없어졌으며 평생가는 친분을 가지려는 먼 안목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냥 내가 좋으면 바로 쌍쌍으로 어울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결합이 너무 쉬우니 역시 너무 쉽게 헤어집니다. 이러한 많은 젊은이들 때문에 저도 자주 걱정을 합니다.

과거 중국의 전통적 도덕에서 ‘남녀의 혼인’이라고 함은 부모가 시키는대로 하고 중매쟁이가 하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물론 상대를 잘 알고 감정적으로 결합한 혼인이 아니다 보니 원만한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게임과도 같은 애정이 또 어찌 오래갈 수 있겠습니까?

“정이 넘치지 않는 소년이 어디 있겠는가? 사랑의 마음이 없는 소녀는 또 어디 있겠는가?”라는 비유가 있습니다. 젊은 남성은 세상을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한 이성을 만나게 되었을 때 몇 번 보고 마음에 들거나, 몇 번 말해보니 ‘잘 통한다’고 느끼면 이상적인 상대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물론 나중에 다른 여성을 만나게 되었는데 나중에 만난 여성이 더 좋게 느껴지면 바로 상대를 바꾸려고 합니다. 이렇듯 게임 같기도 하고 술래잡기 같기도 한 애정에 어찌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가정 환경이 좋은 여성은 사귀는 상대의 사회적 출신이 비교적 뛰어난 남성일 것이지만 일반 여성들은 소위 말하는 잘 난 남자를 사귀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에는 적당히 결합하다 보니 좋은 결과를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사회의 청춘남녀를 옆에서 지켜보면 서로 존중해야 하고 남녀 간 서로 적절한 거리를 지켜야 한다고 느낍니다. 단체 활동에 참가하여 수시로 모임을 가지면서 단체 속에서 천천히 상대방의 인격과 사상과 행동거지와 진실성 여부를 알아가야 합니다. 곧바로 일대일 왕래를 하면 안 됩니다. 일대 일 교제로는 선택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나중에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되면 그 사람은 아무런 배려 없이 상대방을 버리게 됩니다. 감정적인 혼란과 배신을 초래하게 됩니다. 이는 개인적인 손실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 풍기를 문란하게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하는 말이 서양 사람의 혼인은 ‘코미디’이고 동양인의 남녀결합은 ‘황당극’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청년남녀의 교제에 대해 우리는 방관자의 입장에서 의견을 제시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보통의 친구사이라면 집안배경을 알려고 하지 말고 다들 “군자의 교류는 담백함이 물 같아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평범하게 지내는 것이 맞습니다. 만약 마음을 두고 사귀고자 한다면 필히 먼저 상대의 가정배경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하고 그 사람의 지난 친구관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하며 상대방의 생활능력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앞으로 두 사람이 함께 하려면 필히 생활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의 신앙과 공동의 언어와 공동의 성격과 공동의 생활습관이 있어야 합니다.

심지어는 너무 친밀하게 지내서도 안 되고 동급생이라거나 동료이거나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하더라도 세명이나 다섯 명이 함께 왕래를 가져야 합니다. 아주 냉정해야 하고 앞날을 깊게 생각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후회하지 않을 수 있고 기꺼이 원하는 마음일 때 깊이 있는 감정이 담긴 교제를 합니다.
둘째, 과거에 남녀혼인은 집안배경이 맞는지를 중시했습니다. 사실 집안배경이 서로 맞아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남녀 쌍방의 결합은 앞으로 같이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일생 수십 년의 세월이기는 하지만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 배려해주지 못하며 서로 믿지 못한다면 매우 위험합니다. 그래서 남녀 간 왕래는 피차의 성격과 상호간의 믿음과 포용심에 대해서 모두 진지하게 생각해서 결정해야 하는 일대사입니다.

셋째, 중국사회에서 남성은 감정적인 면에서 많은 공간을 갖고 있지만 여성의 감정 공간은 상대적으로 좁습니다. 오늘의 사회에서는 여성이 과거 정절을 지키는 부녀처럼 ‘열녀비를 세우려는 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행동하고 쉽사리 남성과 왕래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자기 앞날 일생에 큰 아쉬움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지난 일을 잊지 않고 앞으로의 교훈으로 한다”는 말처럼 일부 지난 사람들의 경험과 교훈을 자신의 거울로 삼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어쨌든 앞날에 대한 꿈이 없고 책임을 지려는 생각이 없고 감정을 함부로 휘두르면서 경제적 관념도 없이 멋대로 지출하고 귀가 얇고 신뢰가 없다면 남녀를 막론하고 좋은 결실을 맺는데 있어서 심각한 장애가 될 것입니다. 오로지 연애편지만 믿거나 심지어 현재 유행하는 이메일, SNS로 교제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마음을 솔깃하게 쓴 글귀가 한 사람의 진실한 인생 면모를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인터넷을 통해 사람을 안다면 피차 진실한 성격은 알 수 없으니 실제로 교제를 해보아야만 합니다.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1368호 / 2016년 11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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