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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이 땅의 주인으로서

기자명 이미령

“스님께서 불의에 눈 감지말라 채근해 주시길”

▲ 일러스트=강병호

스님! 안녕하세요.

믿지기 않는 박근혜 부정부패
국민들이 악업 과보 깨닫도록
잘못 지적하고 벌주어야 마땅
그것이 반듯한 세상 만드는 길

거리에 나서면 맵싸한 바람이 얼굴에 와닿습니다. 추위에 약하지만 그래도 정신이 확 깨어나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이제야 제가 철이 드는 걸까요?

오래 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일본초서를 공부하면서 잠시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지하서고에 들어 있는 오래된 온갖 문서들을 정리하는 일이었지요. 다종다양한 문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는데, 그중 시골에서 농사짓는 노인이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에게 쓴 탄원서가 한 장 들어 있었습니다. 탄원의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노인의 글이 참 가슴 아팠던 기억은 또렷합니다. 탄원서는 하늘처럼 높으신 나랏님께 배운 것 없고 존재감 없는 늙은이가 엎드려 빈다는 인사말로 시작했지요. 구구절절 하소연한 뒤에는 나라 일 살피시느라 바쁘실 텐데 이런 사정까지 하게 되어 죄스럽기 그지없으며 건강 잘 챙기시기를 빌고 또 빌면서 탄원서는 끝을 맺었습니다.

스님, 그 탄원서를 읽고 순간 멍해지고 말았습니다. 평생 땀 흘려 노동하며 살아온 사람들이 이 나라를 돌아가게 하는 동력이요 주인인데, 어쩌자고 이들은 자신들을 미천한 존재로 스스로 규정하면서 손이 발이 되도록 사정하고 있는 것인가….

이 탄원서를 쓰던 시절만 해도 대통령이란 존재를 하늘이 내리신 임금님이라고 여겼던 시절일테니 공손하게 삼가는 마음이야 어느 정도 이해는 하겠지만, 이건 해도 너무한 비굴이었습니다.

군주를 섬겼던 시절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대통령은 그야말로 공무원에 지나지 않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나라를 대표하며 최고의 권력을 지니고 있는 막중하고도 막중한 자리이지만, 그 역시 국민들이 돈을 거둬서 마련한 월급을 받는 처지 아니던가요? 막중한 권력을 행사하는 만큼 그 자리는 말할 수 없이 무거운 의무와 책임을 강요받는 곳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명예를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고요. 왜냐 하면 그 자리가 지켜야 할 명예는 그 나라 모든 사람들의 명예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초기경전인 ‘디가니까야’에는 ‘세상의 기원에 관한 경’이라는 제목의 아주 흥미로운 경이 들어 있습니다. 한문본에서는 ‘세기경(世記經)’이라는 제목으로 ‘장아함경’에 들어 있지요. 이 경은 기독교의 창세기에 비견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세상의 기원에 대한 불교의 관점을 담고 있는 경입니다.

인간 존재가 어떻게 육신을 갖게 되었는지, 그리고 인간은 무엇을 먹이로 삼아 왔으며 어떻게 남자와 여자라는 성이 비롯하게 되었는지 또 노동과 형벌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인간 세상에 자리하게 되었는지를 흥미롭게 들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애초 인간은 하늘을 날며 몸에서 빛을 내고 기쁨을 먹이로 삼으면서 살아가는 존재였는데 지상에 맛난 것들이 생겨나게 되고 그것을 본 어떤 중생이 맛을 보면서부터 중생들에게는 지금의 인간과 같은 육체적 형체를 갖추게 되었다는 사실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자연스레 생겨난 것들에 맛을 들이면서 차츰 대지에 정착하게 되면서 인간의 ‘노동’이 시작되었다고 이 경에서는 말하고 있지요.

그런데 공유(共有)가 사유(私有)로 옮겨가면서 문제는 벌어집니다. 욕심 많은 어떤 중생이 제 땅은 놔두고 남의 땅에 침범해서 그 농작물을 자꾸 훔쳐갔기 때문입니다. 자기 것을 도둑맞은 사람이 가만있을 리가 없지요. 그는 범인을 색출해서 비난하고 매질을 하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냅니다. 하지만 그건 말뿐이었지요. 도둑질은 이후에도 계속 일어났고 사람들은 제몫을 지키느라 일상생활이 거의 스톱이 될 지경입니다.

사람들은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합니다. 그 결과 한 명의 인물을 선출한 뒤에 자기들을 대신해서 논밭을 지키고 형벌을 주관하는 일을 맡깁니다. 그 대신 선출된 그 사람은 다른 이들처럼 논밭에서의 노동은 면제를 받습니다. 그의 양식은 사람들이 조금씩 갹출해서 대주기로 하지요.

스님, 경에서는 바로 이렇게 선출된 사람이 오늘날의 ‘왕’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을 때면 언제나 전율합니다. 이 경이 일이백년 전에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테지요. 적어도 2000년 전부터 암송되어왔고 또 그 당시부터 문자로 기록되어 왔을 터입니다.

그렇다면 임금님은 하늘이 주신 분이라는 관념이 진리처럼 여겨졌을 그 시절, 이미 불교는 왕이란 존재는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선출하고 양식을 대신 보태주기로 한 신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명기하고 있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가 임금 앞에 ‘미천한 제가…’라며 머리를 조아릴 까닭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늙은 농부의 탄원서를 보고서 참담해진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농부의 땀과 노동으로 대통령의 밥상이 풍족해졌거늘 어찌 이리도 비굴하게 허리와 머리를 굽신거리게 역사가 흘러왔다는 말인가요.

아니 그 탄원서가 쓰인 시절은 그만두고 지금 2016년의 오늘을 봅시다.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을,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의 스캔들이 터지고 있는데도 우리 사회 한쪽에서는 여전히 박대통령 신화에서 깨어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어느 사이 ‘자꾸 대통령을 흔들다가 나라가 망하면 어쩌려고 그러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서서히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젠 우리 스스로가 자존감을 좀 지녀야 할 듯합니다. 우리가 이 땅의 주인이라는 자존감입니다. 고급관리들은 우리가 돈을 주고 일을 시키는 신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니 저들이 부정을 저지르면 마땅히 지적하고 벌을 주고 나아가 그 자리에서 쫓아내야겠지요. 악업의 과보에서 자유로울 존재는 이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스님, 지난 번 편지에서 어떤 신자가 “스님은 정치 이야기 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했다면서 너무나 안타깝다고 하셨지요.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는 유마거사의 말을 그 분은 모르시나 봅니다. 승속이 지금 세상의 병을 함께 앓는 환자인데 어찌 그런 말을 스님에게 하는 것일까요? 바른 것이 대접받는 세상이 올 때까지 스님들은 재가자들에게 똑바로 살라고, 불의에 눈을 감지 말라고 채근하고 또 채근하셔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선(善)과 정(正)이 반듯한 세상이어야 성(聖)이 빛날 테니까요. 스님! 이만 맺습니다.

이미령 드림

이미령 북칼럼니스트 cittalmr@naver.com
 

[1368호 / 2016년 11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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