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문순태의 ‘인연-아내 유영래의 고희를 맞아’
43. 문순태의 ‘인연-아내 유영래의 고희를 맞아’
  • 김형중
  • 승인 2016.11.22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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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겁의 인연으로 만난 사랑 표현
아내에 대한 존경 글자마다 담겨

‘무엇이 우리를 맺어주고 있나요/ 전생 어느 낯선 모퉁이에서/ 우리 단 한 번이라도/ 스쳐 지나간 적 있나요/ 윤회의 뜨락 서성이다가/ 눈빛이라도 마주친 적 있나요/ 이슬과 햇살이 만나 꽃을 피우고/ 하늘과 땅 사이/ 두 줄기 강물 되어/ 흐르다가 멈추었나요/ 유성처럼 끝도 없이 떠돌다가/ 구름 딛고 떠내려왔나요/ 피안의 깊은 골짜기/ 억겁을 돌고 돌아/ 먹구름으로 맴돌다가/ 비바람 되어 내려왔나요/ 어느새 날이 저물었는데/ 이제 우리 어떻게 할까요/ 그대와 내가 꽃과 구름으로 만났다면/ 그대 아침에 이슬로 맺힐 수 있겠지요/ 이 세상 떠나는 마지막 그날/ 나란히 손잡고 두려움 없이/ 이승의 강 건널 수 있겠지요’

험한 세상 살면서 부부로 만나
서로 사랑한 모습 절절히 보여
참 잘 살아온 삶 느껴지는 작품

인생을 모범적으로 잘 산 시인이다. 불자의 삶이 이 정도는 돼야지. 험한 세상 고해화택에서 살면서 부부가 두 손 꼭 잡고, 서로 의지하며 사랑한 모습이 눈에 절절히 선하게 보인다. 부부란 남남이 만나 그렇게 서로 사랑해 주고 알콩달콩 사는 것이다.

부부는 소중한 사람이다. 70억의 인간 가운데 귀한 인연으로 둘이 만나서 한 집 한 방 한 이불 속에서 아침에 일어나 동쪽의 해를 맞이하고, 밤이면 집에 돌아와 서로 부둥켜안고 세상살이의 아픔을 위로하고 살아가는 동반자이다.

그래서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아마 전생에서 억겁의 사무친 인연으로 만난 사랑이다. 시인이 아내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글자 한 글자마다 소중하게 박혀있다. 개자겁(芥子劫)·반석겁(盤石劫), 맹귀우목(盲龜遇木), 전생의 오백생 인연 등이 인간의 몸을 받고 태어나는 인연이나 부부가 되는 인연이 어렵고 불가사의한 일임을 나타낸 말이다.

칠순에 이런 시를 선물 받은 아내는 100평 아파트를 선물 받은 것보다도 더 행복할 것이다. 성공한 삶, 완성된 삶, 참 잘 살아온 삶을 느낄 수 있는 시이다. 시를 읽고 또 읽으면서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고 다짐하고 기도해 본다.

늦가을 노란 단풍이 다 떨어지기 전에 아내에게 이런 편지시를 쓰고 싶다. 글을 쓰기가 어려우면 그냥 이 시를 읽어주고 싶다. 그러면 아내는 무척 행복해할 것 같다.

문순태(65) 시인은 소설 ‘징소리’로 문명을 날린 남도를 대표하는 중진작가이다. 복이 많아서 시도 잘 쓰고, 대학교수, 전남일보 편집국장까지 두루 섭렵한 행운아이다. 거기다가 서로 죽고 못 사는 천생배필과 함께 백년해로 하고 있으니 동료작가들의 시기를 받을 만하기도 하다.

요즘 우리나라가 정치, 경제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국민들의 신음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러한 때 함께 손잡고 슬퍼하고 울부짖을 사람이라도 곁에 있다면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고, 살만한 세상일 것이다.

‘인연’은 구이선녀와 선혜청년이 연등불께 일곱 송이 꽃을 바치면서 부부인연을 맹세한 ‘석가모니의 전생담’이 연상되는 시이다. ‘전생’, ‘어느 낯선 모퉁이’, ‘윤회의 뜨락’, ‘피안의 깊은 골짜기’, ‘억겁’ 등 불교적 용어와 수사를 동원하여 아내와의 남다른 인연을 특별한 기교가 없이 담담하게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을 진실하게 고백하듯이 읊은 시이다. 그런 시가 좋은 시이다.

회갑을 맞은 나의 아내 이한숙 보현행보살에게 은행잎에 조그만 글씨로 이렇게 써 보았다.

‘나타샤보다 더 찬란하게 빛나던 소녀는/ 무엇에 씌어서 시골촌놈을 사랑했나요/ 밤하늘에 그 많고 많던 별 중에서/ 무슨 인연으로 당신이라는 별이 네게 다가와 나의 별이 되었나요/ 당신은 밤마다 내게 사랑의 노래를 불러주고/ 나의 임이 되고 신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꺼이 나와 두 아들의 종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정광여래불 시절에 구이선녀가 선혜선인에게 빌려준 일곱 송이 푸른 연꽃값을 받으러 오신 보현보살이신가요’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368호 / 2016년 11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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