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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서의 단상

기자명 하림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6.11.29 14:03
  • 수정 2016.11.29 14:04
  • 댓글 0

올 겨울에도 선방에 들어왔습니다. 스님들에게 선방은 일상생활과 잠시 떨어짐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오랜 세월 선방에서 정진하는 스님들에겐 이곳이 일상생활이겠지만요. 나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보려면 누구든지 일상의 공간에서 떨어진 위치에 가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듯합니다. 많은 식구들의 배려와 보살핌으로 이런 기회를 갖게 되어서 고마울 뿐입니다.

죽은 나무의 무게 견디며
묵묵히 서있는 나무 보면
불편할 것이라 생각되지만
그것도 내 주관적 생각일뿐

틈날 때면 숲속으로 갑니다. 그곳에는 땅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이 있습니다. 좀 더 땅을 들여다보니 작은 거미들도 있고, 온갖 생명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줌 흙만 가져다 놓아도 온도만 맞으면 온갖 생명들이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넓은 숲에는 상상할 수 없는 생명들이 많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두가 나름대로 애환을 안고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숲에는 나무들도 많습니다. 이곳은 젊은 소나무가 많습니다. 서로가 햇빛을 보기 위해서인지 바쁘게 자랐습니다. 가늘고 길게 하늘을 찌를 듯 자란 나무들은 적은 바람에도 몸통이 많이 흔들립니다. 주변에는 눈과 비바람에 쓰러진 나무들이 즐비합니다. 숲은 그저 평화로운 곳인 줄 알았습니다. 자연은 경쟁이 없는 곳이거니 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삶의 경쟁은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특히 경사진 곳에서 비스듬히 자라는 나무는 걱정이 많습니다. 성장하면 할수록 자신의 무게로 뿌리가 견디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쓰러지고만 나무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참 억울한 나무들도 많습니다. 잘 크는데 옆에 나무가 쓰러지면서 그 나무를 기대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인연이어서 자기 죽어가면서 산 나무를 괴롭게 하는지 참 억울해 보입니다. 그러나 나무는 그 인연을 피할 수 없습니다. ‘톱을 가져다 잘라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그런 인연의 나무들이 너무나 많이 있었습니다. 그 일을 하기 시작하면 이 숲의 모든 나무들을 다 한다고 해도 못할 것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우리 삶을 바라볼 때 때로는 다른 인연을 힘들게 하고 함께 안고 죽어가기도 하는 인연들이 얼마나 많이 보였을까 싶습니다. 또 얼마나 안타까워했을까도 싶습니다.

그렇게 자비하신 부처님이 왜 모든 인연들의 얽힌 관계들을 일일이 풀어주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끝이 없어서일지도 모릅니다. 나무의 환경을 좋게 하기 위해서는 한 나무를 위해 다른 열 그루의 나무는 베어내야 합니다. 햇빛과 양분을 충분히 받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나머지 아홉 그루는 희생되어야 합니다. 열 그루가 다 같이 살려면 사는 게 힘들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그 나무 밑에는 또 새롭게 자라는 수많은 작은 나무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있으면 머리가 아픕니다. 이 나무들을 어떻게 한다는 것은 일시적이고 잠시 몸이 불편할 때 돌아앉는 정도의 효과에 불과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인연 따라 흘러가는 삶이겠구나 하고 바라보니 그나마 마음이 조금 편안해 집니다.

▲ 하림 스님
행복공감평생교육원장
오늘도 그 나무를 지나며 산책을 했습니다. 도와주기도 쉽지 않습니다. 너무 커서 잘못하다가는 다른 작은 나무들이 부러지거나 깔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그들이 힘들어 보이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나무들은 ‘내가 너무 억울해’ ‘나는 너무 힘들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나라는 생각 없이 말입니다.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하기보다는 괴로움의 주체인 나를 비우는 노력이 오히려 나를 평화로 이끄는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좀 더 걸으면서 생각을 해보려 합니다. 지혜가 나기를 기원하면서요.



[1369호 / 2016년 11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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