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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풀란데비(Poolan Devi)

산적두목에서 정치인으로…관습과 억압에 저항했던 인도 로빈후드

▲ 열광하는 시민들앞에 서서 인사하고 있는 풀란데비.

상카샤(Sankasya)는 인도 우타르 프라데시(Uttar Pradesh) 주(州) 날란다 지구에 위치한 불교성지이다. 이곳은 부처님께서 간담바 나무 아래에서 ‘천불화현(千佛化現)’의 기적을 행한 후 천계로 올라가 도리천에서 3개월 만에 지상으로 돌아온 곳으로 중요한 불교성지로 꼽힌다. 이런 중요한 불교성지임에도 불과 30년 전만 해도 상카샤는 인도 여성 풀란데비(Poolan Devi)가 이끄는 범죄조직들의 출몰과 약탈로 불교인들이 쉽게 방문할 수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 아소카왕이 세운 돌기둥의 일부분인 코끼리 조각이 출토되면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사찰이 세워지기도 했다.

부처님 ‘천불화현’ 전해지는
인도 상카샤 지역에서 탄생

불가촉천민으로 계약 결혼
무시와 성폭행 등 숱한 고통

산적 두목에게 납치 된 뒤로
산적 전향…가진 자에 복수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어
산적여왕 별칭…민중 희망

8년 수감생활…불자로 전향
분노 다 내려놓고 평온 찾아

출소 2년 뒤 국회의원 당선
카스트·여성 차별 타파 앞장

힌두교 극우주의자들에 암살
극적인 삶 영화 제작돼 회자

1983년 인도 중북부 도시 구왈리오(Gwallior)에서 7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마을 빈드(Bhind)의 시장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 벌어졌다. 작고 가냘픈 체구의 20대 여성을 25명의 험악한 인상을 가진 군인들이 총을 지닌 채 에워싸고 있었다. 그녀 또한 작은 어깨 위에 총을 메고 허리에는 탄알이 담긴 벨트가 둘러져 있었다. 인도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기 위해 수많은 군중들이 모여들었다. 또 이를 보도하기 위한 수많은 기자들이 도착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던 갸날픈 체구의 여성은 바로 풀란데비였다. 나중에 영화 ‘밴디트 퀸(Bandit Queen)’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인도에 만연해 있던 카스트 제도와 여성에 대한 비인간적인 차별에 대항하는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무장조직을 이끌면서 부패한 정치인들로 인해 가난에 허덕이며 부당한 차별을 당하는 인도서민들을 위해 싸웠다. 그러나 당시 수상으로 나라를 이끌던 인디라 간디여사에게 그녀는 나라의 치안을 위협하는 범죄조직의 두목이었으며 반드시 잡아야 하는 범죄자였다. 그녀는 그곳에서 이렇게 체포됐다.

▲ 북인도 시골 마을에서 불가촉천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있는 풀란데비.

풀란데비는 1963년 8월 우타르 프라데시 주에 위치한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가장 낮은 계급인 불가촉천민에 속하는 가난한 어부의 딸로 11살이 되던 해 자신의 나이보다 4배나 많은 44세의 남자와 계약결혼으로 팔려갔다. 소 한 마리에 팔려간 풀란데비는 11살이라는 어린나이에 강제로 당한 결혼인데다 ‘천한 계집은 그저 패주어야 한다’는 힌두교 교리를 외치는 남편의 잦은 폭력과 학대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결혼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풀란데비는 얼마후 남편에게 쫓겨나 친정으로 돌아오게 된다. 당시 인도 사회에서 결혼한 여성이 친정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가족에게 커다란 수치였다. 가뜩이나 낮은 카스트 신분이었던 그녀는 남편에게 쫓겨난 여자라는 오명까지 쓰고 동네남자들의 집적거림의 대상이 되었으며 성폭력의 희생자가 되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산적에 의해 납치가 됐다. 그러나 자발적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운명이 그랬던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그녀는 산적의 일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당시 우두머리였던 비크람말라(Vikram Mallah)는 낮은 카스트 출신이었다. 따라서 차별하는 사회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정부 소유의 차량이나 부유한 상인들을 공격했다. 풀란데비는 그런 그와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총 쏘는 법을 배우며 본격적으로 산적 활동에 나섰다. 그들의 주요 활동은 낮은 계급의 사람들을 잔인하게 괴롭히는 높은 카스트에 속한 사람들을 납치하거나 살해하고 부유한 사람들의 돈을 빼앗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80년 산적의 우두머리였던 비크람말라가 살해당하고 그녀는 다른 산적들에 의해 납치돼 베마이(Behmai) 지역으로 끌려갔다. 그 곳의 그녀는 그곳의 유지들에게 몇 주간 잔인한 고문과 성폭행을 당했다. 다행히 비크람말라 밑에 있던 몇몇 산적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지옥을 탈출한 풀란 데비는 이후 복수의 칼을 갈게 됐다. 조금씩 건강을 되찾은 풀란데비는 독기를 품고 베마이로 가서 자신을 집단 성폭행했던 남자들을 하나씩 납치했다. 그리고 이들 22여명의 남자들을 마을 중심가 한복판에 모은 뒤 총으로 죽였다. 

▲ 인도 빈드시에서 경찰과 군인들에 의해 체포되던 순간.

풀란데비의 삶은 이렇게 평탄하지 않았다. 끝없이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이제는 증오와 복수로 가득한 삶을 살았다. 그녀가 저지른 행위들은 자신의 삶을 짓밟은 제도와 사람들에 대한 응징이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먹을 것을 나눠주고 끝없이 베풀었다. 그녀는 곧 민중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 가진 자들에게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그의 행동은 ‘아름다운 도적’ 혹은 ‘복수의 천사’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인도의 수많은 불가촉천민들과 가난한 민중들은 그녀에게서 위안과 희망을 얻었다. 나중에는 ‘산적여왕(Bandit Queen)’이라는 명칭이 그녀의 공식적인 닉네임이 됐다. 

▲ 산적여왕으로 활동하던 시절의 풀란데비.

그녀의 활약이 미디어를 통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위험 또한 갈수록 높아졌다. 인도정부는 그녀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됐고 풀란데비는 점점 궁지에 몰리게 됐다. 수년간 자신을 뒤쫓고 있던 정부로 인해 막다른 골목에 몰린 풀란데비는 협상을 시도했고 그녀는 그녀가 소지하던 무기를 내려놓고 산적 활동을 멈추기로 결심했다. 스스로 무기를 내려놓은 그녀는 정부와 합의했던 것처럼 8년간 감옥에서 갇혀 지냈다. 그리고 1994년 마침내 감옥을 출소했으며 같은 해 그녀의 삶을 영화로 그린 ‘밴디트 퀸’이 프랑스 깐느 영화제에 소개되었다. 감옥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풀란데비는 불교에 귀의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어린 시절부터 그녀 마음을 지배하던 증오와 복수라는 감정을 다스릴 수 있게 됐다. 감옥에 갇힌 이후 그녀는 이런 사악한 감정들이 그녀의 삶을 더 황폐하게 만들게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평화를 찾고자 했다. 그녀가 감옥에서 지내는 동안 그녀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던 스님은 심리적 불안감에 시달리던 풀란데비에게 한줄기 빛이었다. 그녀는 부처님의 삶과 가르침에 크게 감화됐다. 그리고 출소 후 곧바로 그녀는 불자가 됐으며 자신 주변의 수많은 불가촉천민들에게 불자가 되기를 권유했다. 그녀는 부처님을 알게 되면서 높은 카스트에 있던 사람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다스릴 수 있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불자가 된 이상 그녀는 카스트 제도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녀는 불교만이 인도 사회의 암적인 요소이며 불평등의 상징인 카스트 제도에 대해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녀는 만나는 사람마다 부당한 카스트 제도와 여성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데 함께 힘을 모으자고 설득했다. 그녀의 이런 열정적 모습은 대중들 사이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정치적 경험이 전혀 없는 그녀였지만 불교를 통한 평등과 박애정신은 커다란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했고 마침내 1996년 감옥에서 출소한지 불과 2년 만에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쾌거를 이뤘다.

그러나 대중적인 지지가 높아질수록 시기도 커졌다. 풀란데비는 2001년 7월26일 국회에서의 바쁜 오전 일정을 마친 후 점심을 먹기 위해 뉴델리에 위치한 자택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자택주변에는 세 명의 힌두교 극단주의자 저격수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나타나는 순간 수십 발의 총알이 그녀를 향했다. 점심 무렵임에도 불구하고 우기여서 하늘은 어둑했다. 그녀는 총에 맞아 그대로 쓰러졌다. 그녀를 발견한 사람들이 즉시 그녀를 주변의 병원으로 옮겼다. 남편이었던 우메드 싱(Umed Singh)과 그녀를 불교로 이끌며 새로운 삶을 살게 했던 스님도 병원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녀는 마침내 그녀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었던 그들 앞에서 세상을 떠났다. 어떤 영화보다 더 처절하고 드라마틱했던 그녀의 삶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인도 시골마을 성폭행 희생자에서 인도의 여성 로빈후드가 되어 또 정치인이 되어 억압받고 차별받던 사람들의 편이 되었던 한 영웅의 삶이 신기루처럼 증발해버렸다.

▲ 사망하기 전 풀란데비의 모습.
오늘날 인도의 ‘산적 여왕’ 풀란데비의 이야기는 여전히 인도서민들 사이에서 영웅담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강간과 살해, 폭력, 복수와 같은 무시무시한 단어들은 그녀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얼음이 따스한 햇살에 녹아내리듯 사라져갔다. 그녀는 ‘불교는 도그마로 가득 찬 종교라기보다는 우리 삶에서 우리를 평화로 이끄는 삶의 한 방식이어야만 한다’라고 주변인들에게 말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총을 맞고 삶을 마쳐야만 했던 기구한 운명의 풀란데비였지만 그녀가 짧은 기간 함께한 불교 덕분에 그토록 염원했던 평화를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삶이 부처님의 땅 인도에서 차별과 부당함이 근절되는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알랭 베르디에 저널리스트 yayavara@yahoo.com


[1369호 / 2016년 11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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