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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일(逸)’의 미학

기자명 명법 스님

사물과 자연으로 고고한 정신 드러내는 초탈의 경지

▲ ‘상용석도권(祥龍石圖卷)’ 비단에 53.9x127cm, 북경고궁박물관 소장. 휘종이 문인화풍을 수용하여 그린 괴석도.

앞서 언급한 바 있듯이 송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회화는 서정적으로 변한다. 정치적 박해를 견뎌야 했던 소식, 왕선, 황정견 등의 사대부들 산수화와 제화시로 교유하며 공유된 기억을 나누며 그들만의 문화를 형성해갔다. 이 문화의 핵심은 형식이나 기법의 탁월함이 아니라 작가의 내면, 즉 작가의 인격과 고상한 정신이었다.

9등급이던 예술평가 기준
‘일품’의 경지 새롭게 첨가

사실표현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용필하는 새 풍조

필법과 먹의 쓰임새 변용해
생기 불어넣는 발묵법 등장

‘일품’이라는 품등의 등장은
선불교의 융성과 깊은 연관

관찰 아닌 직관에 의한 그림
필법과 형식의 단순성 낳아

풍부한 여백과 단순한 필선
마음 단순함 표상하는 수단

화풍의 변화는 곧 미적 취미의 변화를 반영한다. 이전까지 회화를 비롯하여 모든 사물, 심지어 사람을 품평할 때도 상·중·하를 나누고 이를 다시 삼품으로 분류해 9품으로 평가하는 방식이 적용되었다. 그러나 당나라 중반 이래로 ‘일(逸)’이라고 일컬어지는 새로운 품평의 등급이 설정되었다. 이른바 ‘격외의 맛’에 대한 취미인 ‘일품’ 또는 ‘일격’이 송대에 들어오면서 회화를 품평하는 가장 높은 기준이 된다.

일품이 예술의 평가기준으로 사용된 것은 당나라 측천무후의 재위기간(684~707) 이사진(李嗣眞·?~696)이 썼다고 전해지는 ‘서후품(書後品)’ 혹은 ‘속서품(續書品)’이 처음이다. 이 글에서 이사진은 서예가를 상·중·하로 나누고 다시 각각을 상·중·하로 나누어 9등급을 만들고 그 위에 일품(逸品)을 설정하여 이사(李斯)· 장지(張芝)· 종요(鍾繇)· 왕희지· 왕헌지 등 다섯 서예가를 배정했는데, 이 다섯 사람은 삼품구등에 배치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여기서 일(逸)은 “탁월하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 후 장회관(張懷瓘·713~741)은 ‘화단(畵斷)’에서 회화를 품평하여 신(神), 묘(妙), 능(能)으로 우열을 표시하고 그 외에 일품(逸品)을 첨가했다. 여기서 일품은 “상법(常法)에 구애 받지 않을 것” 정도의 의미를 가졌으며 주로 야일(野逸·겉치레 없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한 수묵화를 그린 문인화가를 지칭했다.

당나라 말기의 주경현(朱景玄·9세기)은 ‘당조명화록(唐朝名畵錄)’에서 전통적인 구품으로 화가를 품평하였으나 일품은 전통적인 화법인 화육법(畫六法)에 적용되지 않는 새로운 화풍을 지칭할 때 사용했다. 이는 일품을 처음으로 품평에 도입함으로써 일품을 신·묘·능품과 함께 회화의 한 격으로 인정한 것으로, 당시 회화가 사실적 표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용필하는 새로운 풍조가 일어난 것에 상응하는 비평에서의 변화이다.

일품화가로 알려진 왕흡(王洽·?~805), 항용(項容·8세기 후반), 필굉(畢宏·8세기 후반), 장조(張璪·735~785)는 필묵의 자유로운 구사가 두드러지는 수묵기법으로 과석(窠石), 소나무와 바위, 산수를 묘사하여 수묵산수화 양식의 기반을 이루었다. 또 격식에 구애되지 않고 필법과 먹의 쓰임을 자유롭게 변용하여 그림에 기운과 생기를 불어넣는 발묵법을 사용하였다. 이들의 묵희 전통은 북송대에 이르러 문인화의 일반적 특징으로 정착되었으며 이런 특징을 반영하는 일품이라는 품등은 솜씨의 뛰어남만 아니라 양식의 변화도 보여주고 있다.

주경현의 저술에 따르면, 일품화가인 왕묵(王墨)은 손에 응하고 뜻을 따르는 데 빠르기가 마치 자연의 조화와 같았으며 자주 자연에 노니면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성품은 소탈하고 술을 좋아하여 술을 마시고 나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이는 예전에 꼼꼼히 그림을 그리던 태도와 비교하여 현격히 다른 풍격으로 화풍 역시 새롭다.

왕묵은 어떤 때는 웃고 어떤 때는 시를 읊조리면서 급히 발로 밟고 손으로 문질러 그림을 그렸으며, 붓으로 쓸어내며 어떤 때는 담묵(淡墨)을 사용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농묵(濃墨)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렸다. 그의 붓이 가는대로 형상이 나타나면 그것은 산이 되고 골이 되며 구름이 되고 물이 되었으며 이처럼 구름과 안개를 묘사해 내고 바람과 비를 그려서 사람들이 모두 신기해했다고 전해진다.

다시 송대의 황휴복(黃休復·10세기 말-11세기 초)이 ‘익주명화록(益州名畵錄)’에서 신, 묘, 능의 전통적 품등론 위에 일격을 놓아 최고의 품등으로 설정함으로써 일품은 명실공히 가장 뛰어난 작품을 가리키는 비평용어가 되었다. 이런 품등의 변화는 화풍의 변화와 더불어 미적 취미의 변화를 반영한다. 그것은 문인, 사대부, 선승들의 내면적 정신세계를 시각화한 높은 경지에서 일체가 되는 순수하고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것이 이 시대 최고의 가치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일은 ‘정상적인 품격에서 벗어난 것’이라는 의미 외에도 ‘탁월함’이라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양식적인 특징과 회화적 우수성을 지칭하는 용어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일’이라는 품등의 등장은 사회적 정신적 변화를 반영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선불교의 융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이 시기는 송대 선종이 최고로 흥성한 시기와 일치한다. 원오극근의 ‘벽암록’이 제작되고 오가칠종이 서로 각축을 벌이며 발전하던 시대였다. 선은 사대부 계층에 광범위하게 수용되어 사대부 문화를 이루는 중심적 사유가 되었으며 사대부들의 영향을 받은 선사들이 선시를 짓고 수묵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들의 시와 그림이 지향한 세계는 세속을 초탈하여 속기가 없이 맑고 고고한 정신의 경지였다. 그러므로 그들의 산수화에 묘사된 풍경은 궁벽한 산속에서 마주하는 고요한 마음의 풍경이며 이 풍경은 함께 폄적을 당했던 그들 사대부들이나 산사에서 수행하는 선사들의 내면세계를 조응한다.

문인산수화에서 특기할 점은 회화가 서정성의 표현으로 바뀔 때 정신의 단순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주관성의 표현으로서의 예술은 마음이 자신을 표현하는 대로 마음의 운동을 드러내기를 기대한다. 대상의 외형에 대한 정확한 모사를 추구하는 것은 마음의 활동성과 주관성을 표현하는 데 부적합한데, 왜냐하면 모방은 이미 결정된 어떤 것의 존재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재현예술에서는 수양의 필수조건으로서의 창조적 활동성이 발휘되기는 어렵다.

처음에 손지미는 대자사 수령원 벽에 호수의 여울물과 수석을 그리려고 하였으나 구상을 하느라 한 해를 넘겼음에도 끝내 붓을 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하루는 황급히 대자사로 들어가 필묵을 찾는데 몹시 급한 모습이었다. 소매자락을 날림이 바람과도 같이 잠깐 사이에 그림을 완성하였다.“始知微欲于大慈寺壽寧院碧作湖灘水石四堵 營度經歲 終不肯下筆 一日倉皇入寺 索筆墨甚急 奮袂如風 須臾而成”, ‘書蒲永昇畵後’ (態志庭ㆍ劉城淮ㆍ金五德 譯註, 2003, pp.233~234.)

화면에 나타난 간단한 형상 뒤에는 반드시 철저한 준비와 절제가 있었다. 한 획 한 획이 철저하게 완성의 모습을 갖추고 있으면서 한편으로 전체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사소한 소재라도 획과 획 속에는 치밀한 준비가 있어야 하며 형상화의 단계에서는 순식간에 그것을 그려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관찰과 모사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직관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중국회화는 형식의 단순화를 낳는 데 그치지 않고 분위기와 매체, 그리고 필법의 단순성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는데, 이런 발전 방향의 틀은 중국 특유의 문화적인 배경에 의해 형성되었다.

먹을 사용하기를 금보다 아꼈다고 전해지는 예찬의 ‘일필(逸筆)이 초초(草草)하다’는 말은 단순성의 취미가 형상의 단순화뿐 아니라 회화의 매체인 붓과 먹의 쓰임에조차 미치고 있음을 반영한다. 이 경향은 남송 말기에 이르러 서법을 회화에 도입하게 하였다. 특히 서법의 도입은 시에서 언어라는 매체에 두었던 관심과 상응하는데, 이것은 앞서도 강조했듯이 회화의 내용뿐 아니라 표현 방식, 즉 매체의 사용에서도 주관의 반성적 수양을 추구한 송대 예술의 내면화 경향의 결과이다. 의경이 작품의 내용과 내용을 전달하는 매체에 이중적으로 표출되는 이 특수한 주관 표현의 방식 때문에 중국 문인화는 굳이 재현을 버리지 않고도 마음의 내면성을 표현할 수 있었다.

순수한 관조의 상태에서 회상된 경물은 마음의 고요함과 단순성을 표시한다. 그것은 그 외물에 초연한 정신성을 표현하기 때문에 앞서 지적한 것처럼 외물에 대한 사실적 묘사가 아니라 비사실적인 재현으로 묘사된다. 문인산수화의 저 풍부한 여백과 단순한 필선은 회화에서 서정성의 증가와 함께 경물을 관조하는 마음의 고요함과 단순함을 표상하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내면성은 개인의 특수성, 즉 개인의 경험이나 그에 따른 개인 특유의 느낌이나 반응이며 그것이 회화 속에 묻어나게 된다. 의경은 명시적으로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개인의 사적인 특수성을 표현하게 된다. 이 사적인 것은 작품에 나타난 분위기와 구도, 그리고 필법을 통해 전해진다. 그러므로 그림의 감상은 표현된 내용만 아니라 표현되는 방식, 즉 매체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것은 회화의 주요한 문제가 더 이상 주관성과 객관성 사이에 있지 않고 내적인 사상과 감정, 그리고 그것의 외적 표현과 실천에 있음을 의미한다.

이 변화는 송시에 나타난 변화와 일치하는 것이며, 소식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런 전환과 더불어 미학의 중심은 객체와 그 재현이 아니라 마음의 역동적인 활동과 그것을 기록하는 매체의 관계로 이전된다. 시와 회화에서 공통으로 발생한 이런 변화는 곧 ‘시화일률’의 관념을 낳았고 그것은 두 장르가 융합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회화에서 이 변화가 나타난 것은 소식 사후 휘종 황제시기였다. 이 시대의 취미를 주도했던 휘종 역시 소식의 예술관에 영향을 받아 화원고시(畵院考試)에 ‘고시(古詩)’를 출제하는 등 화원화가들의 그림조차 시적이고 서정적인 것으로 변화시켰다. ‘예술황제’로서 그는 스스로도 새로운 화풍을 실험하면서 자신만의 독자적 회화세계를 이루었다. 

명법 스님 myeongbeop@gmail.com


[1369호 / 2016년 11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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