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하루에 하루만큼 아픈 시절
43. 하루에 하루만큼 아픈 시절
  • 성원 스님
  • 승인 2016.11.30 11: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끄러움 모르면 나의 제자가 아니니…”

▲ 일러스트=강병호

오늘 한겨울 못지않게 차갑네요.
많은 사람들이 추위가 닥치면 온정을 나누려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날씨가 갑자기 차가워지자 여러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그들 모두 이 차가워진 날씨에 안녕하신지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얼마나 해야 부끄러움 알까
건달도 비교하는 것 싫어해
세파에 삶 빼앗기지 말아야
아픈 계절에 평안함 챙겨야


어제 새로 짓는 삼성각 상량식을 했어요. 여러 사람들이 정성을 모아 지어가는 전각이라 많은 분들과 함께 상량의 정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네요. 지난 금요일 육지에서 준비한 목재가 들어왔고 일요일 초석을 놓았는데 화요일 상량을 해야 한다니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15평짜리 전통양식의 맞배지붕 전각인데 빨라도 너무 빨라 미처 준비 할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그간 허가문제가 늦어져서 나무를 준비한지 한참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래도 5일 만에 목조공사를 마무리 한다니 상상할 수나 있겠습니까?

보통 사찰에서는 많은 기도를 하는데 무슨 기도는 어떤 때 좋고 어떤 일을 당하면 무슨 기도를 하라고 합니다. 출가 초년 때 어른 스님들께서 독성님께 기도하면 소원이 빨리 성취되기로 유명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서 몸과 마음이 흐트러지면 해를 당하기도 한다면서 나반존자 기도는 짧은 기간이라도 정성껏 하면 바라는 소원이 속히 이루어진다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독성기도의 소원 성취가 빠르다는 이야기가 빈말이 아닌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나한을 모시는 전각 짓는 일이 이리도 신속히 이루어 질 줄이야 정말 몰랐습니다.

지난 삼성각은 나반존자를 모신 독성각이었는데 약천사에 터전을 잡고 처음으로 지은 건물이라 당시에 지역 주민들의 요청으로 산왕대신과 해상용왕을 함께 모시게 되어 삼성각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지극히 한국적인 전각이었는데 당시 콘크리트로 지었던 관계로 사찰의 전체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은사스님께서 말씀 하셨었고 새로 전통양식으로 지을 필요성이 더해져서 시작했습니다.

어제 상량하면서 예전 상량보를 보니 불기 2530년 12월이더군요. 정확히 30년 전에 상량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은사스님께서는 상량보에 “자광상조 향성무궁 원만불사도중생 慈光常照 香聲無窮 圓滿佛事度衆生”이라고 남기셨습니다. ‘자비의 빛이 항상 비치고, 찬탄하는 소리 끊이지 않는 가운데 불사를 원만히 하여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자’ 이러한 원력을 담아 약천사 대작불사의 첫발을 내디디셨습니다.

며칠 전 상량문을 지으면서 생각해보니 헌집을 헐고, 새집을 짓는 일은 후학에게 당부만 하시고는 사바에 더 있어도 자신이 할 일이 없다면서 홀연히 떠나신 스님 생각에 한참 글쓰기가 힘겨워 지기도 하였습니다. 늘 후학들은 선각자들의 길에 누가 되지 않게 살고자 자신을 다듬고, 후학에 부끄럽지 않게 모범적인 삶을 살고자 노력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늘 우러러 지켜봐 주시니 떠나셔도 떠나지 않았다고 옛 어른들은 말씀하셨나 봅니다.

어제 번개 같은 상량 소식을 미국에 계시는 스님께 자랑했더니 “역시 한국~”이라고 답장하고 뒷말로 “시위도 잘하고, 외신에서 아주 감탄하더라구요^^”라며 시절의 서운함도 담아 보내 왔네요.

이렇게 똑똑하고 일 잘하고 부지런한 우리 대한민국의 사람들이 모두 마음 아파하니 정말 하루빨리 바르게 정리되어야겠다는 간절한 소망이 일어나네요.

청와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건들을 처음에는 뭐 이런 일들이 다 있나 싶어 호기심에 바라보다가, 스스로 짜증과 분노가 뒤섞이는 마음으로 바라보다가, 다음에는 어처구니가 없어 어떠한 마음도 일으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그냥 코미디를 보는 듯한 기분으로 즐기면서 바라보는 경지에까지 다다른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어떤 기분이 남아 있는지 자신의 감정 흐름이 더 궁금해지네요.

모두가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바라보면서 보다 올바른 길을 빨리 찾아 나서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처음 계율을 배울 때 현재 BTN 대표이사로 계시는 성우 스님께서 부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나의 제자가 아니다”라고 강조하시면서 계율 강의를 하셨습니다.

이토록 시국이 어수선할 때 큰스님들이 나서서 준엄하게 사회에 경각을 일으킬 수 있는 가르침을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별다른 말씀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시기에 적절한 가르침을 찾아서 이 혼란에 지침이 되게 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 어수선한 시국에 빛이 되지 못한다면 어쩌면 불교는 점점 우리시대에 빛을 잃어가게 될 것만 같습니다. 누군가 아이들을 데리고 광화문 촛불시위에 나서면서 그 소감을 페북으로 보내 왔습니다. “훗날에 우리 아이가 자라서 아버지는 그날 그 역사의 날에 뭐 했냐고 할 때 참가하지 않는다면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아서 참가하러갑니다”라고 했습니다.

자식에게 부끄러워하고, 함께하지 못하는 일에 미안해하고, 남들이 다한다고 따라한 일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 우리 사회는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 같습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나의 제자가 아니라고 가르치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직접 몸으로 실천하는 불자라는 생각에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구에 사는 교수님 한 분도 많은 일을 뒤로하고 광화문 그 자리에서 촛불을 들고 셀프카메라 사진과 군중들 사진 중에 자신이 찍힌 모습을 애써 찾아내 사진을 보내 왔습니다. 모두들 부끄럽지 않은 삶의 한 순간들을 채워두려는 알뜰한 사람들입니다.

엄연히 불법인 대포폰을 사용해야만 나라를 통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나이 40이 넘어서 자신의 얼굴에 자신을 잃은 사람, 자신의 일상에 숨기고 싶은 시간이 많은 사람은 차라리 모든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은둔적인 삶을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 이야기를 하면서 자식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협박하고 험담까지 하는 걸보니 마치 건달같다고 표현하니 건달같이 사는 한 분이 “스님 건달이 아닙니다. 건달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 건 양아치입니다. 양아치들이 하는 짓입니다”하면서 억울해 했습니다. 정말 얼마나 해야 스스로 부끄러운 줄 알겠습니까? 동네 건달도 자신과 비교하는 걸 억울해 한다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요.

그래도 제주는 밀감 추수가 한창이고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은 올해도 나름대로 이 겨울을 넘길 준비에 분주합니다. 절에서도 곧 김장을 담고 된장을 담기 위해 메주를 쑬 것입니다.

허전한 세파에 우리의 삶마저 빼앗기지 않아야 겠다며 스스로의 생활에 자꾸 몰입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아픈 계절에도 늘 평안함을 잃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하루에 하루만큼 아파하는 사문 성원드림

성원 스님 sw0808@yahoo.com


[1369호 / 2016년 11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