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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과 아난존자

김 전 실장 시종일관 ‘모르쇠’
부처님 모신 아난과 크게 달라
특검, 국정농단 관련성 밝혀야

주말이면 백만 개가 넘는 촛불이 대도시를 밝힌다. 휴일의 안락함을 뒤로한 시민과 학생들이 광장에 모여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다. 검찰 조사로 박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실상이 드러나면서 이를 동조·묵인했던 세력들에 대한 지탄의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최씨 국정농단 의혹을 규명할 특별검사팀이 “성역 없는 수사”를 표방하면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에 대한 수사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전 실장은 검찰총장, 법무부장관까지 역임한 고위공직자 출신의 정치인이다. 박정희 정권 당시 유신헌법을 만드는 데 관여했던 그는 1992년 12월 지역감정을 조장해 여당 후보를 지원하려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검찰에 기소됐다. 그러나 무죄판결을 받으면서 정치적인 위기를 넘겼고, 시민단체들이 총선 낙선대상으로 지목했지만 연거푸 3선 국회의원이 됐다.

이런 그가 2013년 8월 박 대통령에 의해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되면서 명실상부한 ‘왕실장’으로 권력의 핵심에 복귀했다. 국정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그는 2015년 이명박 정권의 자원비리 수사 중 자살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주머니에서 나온 메모에 그가 금품을 받았다는 내용이 담겨있던 사건까지 무혐의 처분을 이끌어냈다.

‘진짜실세’ 김 전 실장. 그가 ‘비선실세’ 최씨의 국정농단에 대해 지금껏 “까맣게 몰랐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이들은 많지 않다. 대통령이 최씨 딸의 친구 부모업체까지 직접 챙기고,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대기업으로부터 출연금 모금을 주도했다는 의혹도 익히 알고 있었으리라는 견해들도 적지 않다. 대통령과 비선실세가 국민을 절망에 빠뜨리고 나라를 세계의 웃음거리로 만들었는데도 대통령 직무 보좌를 총괄했던 당사자가 법적 책임을 피해가려는 듯한 태도에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김 전 실장의 행태는 부처님을 오랫동안 모셨던 아난존자를 떠올리게 한다. 부처님을 시봉하라는 주변의 권유를 극구 사양하던 아난은 3가지 조건을 내세운다. 첫째, 새것이든 오래된 것이든 부처님을 위해 만들어진 옷은 입지 않는다. 둘째, 부처님을 위해 마련한 음식은 먹지 않는다. 셋째, 때가 아닌 때에 부처님을 뵙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시자로서 누릴 수 있는 어떤 혜택도 절대 받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그것이 부처님은 물론 대중들을 위한 길임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 이재형 국장
이 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자 아난은 25년간 부처님을 정성을 다해 모셨다. 부처님의 일상을 돕고 가르침을 기억하는 데 온힘을 쏟았다. 부처님의 양모 마하파자파티를 비롯한 여성들이 출가할 수 있었던 것도 아난의 거듭된 간청 덕분이었다. 무엇보다 오늘날까지 전승되는 초기불전의 상당수가 다문제일(多聞第一) 아난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부처님과 박 대통령은 대중에게 큰 영향을 주는 지도자라는 점에서 언뜻 비슷할 수 있다. 하지만 한쪽은 모든 중생의 아픔을 감싸려 했고 다른 한쪽은 측근을 감싸며 선생님으로 떠받들었다는 점에서 비교 자체가 불가하다. 게다가 그들을 지근거리에서 모셨던 이들의 인품과 자세도 천양지차라는 점에서 대통령의 몰락은 예견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재형 mitra@beopbo.com
 

[1370호 / 2016년 1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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