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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잘 잤다는 의미

기자명 이미령

“부처님은 삼독 버렸기에 편안히 잘 수 있어”

▲ 일러스트=강병호

스님! 안녕하세요.

가을을 제대로 느끼지도 못했는데 벌써 겨울 추위가 우리 곁을 맴돌고 있습니다. 갑자기 기온이 떨어진 날이면 하루 업무를 마친 직장인들이 어깨를 움츠리고 집으로 향해 종종걸음을 칩니다.

바라문이 부처님께 여쭈니 답변
좋은 집과 편안한 침실 있더라도
삼독 존재한다면 편히 잘 수 없어
잘 자고 싶다면 탐욕부터 버려야

집이란 말, 언제 들어도 편안해집니다. 뻣뻣한 정장을 서둘러 벗고 가장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느긋하게 몸을 뉘고 싶은 사람에게 ‘집’보다 더 가슴을 울리는 말이 있을까요?

사람들은 누구나 집을 갖고 싶어 합니다. 크든 작든 상관없이 지붕이 있어 하늘을 가리고 벽이 있어 비바람을 막아주며 아늑하게 나를 품어줄 보금자리를 원하지요. 그 바람이 워낙 강력하기에 사람의 일생이란 것이 집 한 채 장만하는 것으로 끝인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집을 갖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데 집을 나와 집 없는 곳으로 들어가는 분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분이 바로 부처님이시지요.

이렇게 매서운 추위가 간간이 덮칠 때나 따뜻하게 난방을 돌릴 때면 문득 집이 없는 부처님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왜냐 하면 어느 바라문과 나누신 대화를 앙굿따라 니까야에서 읽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어느 날 심사파 숲에서 계실 때입니다. 바라문 한 사람이 산책을 하다가 그곳으로 오게 됐고, 부처님을 뵙고는 이렇게 인사를 드렸지요.

“세존이시여,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그러자 부처님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잘 잤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잠을 잘 자는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의례적으로 ‘잘 잤다’는 화답이 아닙니다. 당신께서는 세상에서 제일 편안하게 잘 자는 사람이라고 대답하십니다. 뜻밖의 대답을 들은 바라문이 이렇게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겨울밤은 몹시 춥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서리까지 내리고 있습니다. 소가 밟고 지나다닌 땅바닥은 파헤쳐진 채 얼어버려서 울퉁불퉁 딱딱합니다. 요처럼 깔고 주무셨을 나뭇잎은 절대로 온기를 유지해주지 못하고, 덮고 주무셨을 가사는 너무나도 얇아서 겨울밤의 찬바람을 막아주지 못합니다. 그런데 잘 주무셨다고 말씀하시는군요.”

스님!

추위를 잘 타는 저는 이 대목에서 오싹 한기가 느껴집니다. 29세 때까지 가장 따뜻하고 아늑하고 보드라운 궁궐 침실에서 주무셨을 부처님이 벽도 지붕도 없는 숲 속 나무 아래에서 이렇게 겨울밤을 지내고 계시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부처님은 웅장한 집에 모셔져 있지만 사실 육신을 지닌 석가모니 부처님은 얇은 가사 한 장을 덮고 겨울밤을 한뎃잠으로 주무셨다는 말입니다.

경전에서 출가를 가리켜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들어간다’고 표현하던데, 그야말로 딱 맞는 말이지요. 집이 없는 수행자의 잠은 바로 이렇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 스스로를 가리켜서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게 잘 자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니 얼마나 수행이 되어야 부처님 같을 수 있을지요.

그날 부처님께 아침 인사를 건넸던 바라문도 저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어리둥절해 있었던지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바라문이여, 안팎으로 잘 장식되고 바람이 제대로 차단되며 빗장이 잘 질러졌고 창문이 잘 잠기는 저택에 살고 있는 부자가 있다고 합시다. 그의 저택에는 온갖 색깔의 양모 담요가 깔려 있고 동물 털로 만들어진 이불이 있으며 붉은 베개가 놓인 침대가 있고, 게다가 네 명의 아름다운 여인들이 시중까지 들고 있다고 합시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환경에서 그 사람은 잠을 잘 잘 것 같습니까?”

“예, 그 사람은 아주 잘 잘 것입니다. 그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아늑하게 잠을 잔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되묻습니다.

“집과 침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마음이 욕심으로 괴롭고, 욕심으로 불타오른다면 그 잠이 아늑할까요? 성냄으로 괴롭고 성냄으로 불타오른다면, 어리석음으로 괴롭고 어리석음으로 불타오른다면 그 잠이 아늑할까요?”

“아니요. 편히 잘 수는 없겠습니다.”

바라문이 이렇게 대답하자 부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모두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세 가지로 인해 괴롭지 않고 그 세 가지가 나를 불태우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잘 잤습니다.”

스님!

제가 뜬금없이 집 이야기를 꺼내서 조금 의아하신가요? 지난 번 답장에서 약천사의 삼성각 상량식 소식을 접했기 때문입니다.

큰일을 무사히 마치셨으니 얼마나 기쁘십니까? 게다가 신도분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진행하고 있는 불사인 만큼 많은 분들이 너나없이 함께 행복해하고 계실 테지요. 건물 한 채에서 대들보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조금은 알고 있어서 일까요? 삼성각 상량식을 알려주시는 스님의 글귀에서 뿌듯함을 살짝 느꼈습니다.

스님!

중생들 마음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부처님과 보살님들 그리고 온갖 신들은 지붕과 벽을 갖춘 집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지만 그래도 따뜻하고 아늑한 보금자리를 꾸며드리고 싶은 그 마음! 법력이나 도력은 우리들 중생보다야 훨씬 높지만 그런 분들에게 중생들이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세속의 재료를 모아서 따신 방 한 칸 마련해드리는 일이 전부이기에 정성을 모아 건축불사를 하는가 봅니다.

자발적으로 집을 떠나 집 없는 곳으로 들어가신 분들이 그래도 한뎃잠 주무실까 전전긍긍하는 이런 중생의 마음도 보살심이 아닐까요? 다만 더 크고 더 화려하게 짓기 위해 무리하고 그래서 다툼이 벌어진다면 문제겠지요. 불사라는 것은 언제나 그 정성이 소박하게 불보살님에게 가 닿아야 하겠습니다.

머지않아 삼성각은 탄탄하고도 곱게 완성될 테고 나한님과 산신님, 용왕님은 그곳에서 아늑하게 지내시겠지요. 스님과 약천사 신도분들의 정성을 잘 헤아리셔서 나한님은 우리들 마음에서 번뇌를 여의게 해주시고, 산신님과 용왕님은 산천과 바다의 생명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환경에서 잘 지낼 수 있도록 보살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15평 삼성각에서 이 세상을 맑게 가꾸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편지가 스님에게 가 닿을 즈음에는 우리 사회가 조금은 밝고 건강한 미소를 되찾을 수 있기를 함께 빕니다.

세상 모든 이들과 함께 스님께선 평안하시기를….

이미령 드립니다.

이미령 북칼럼니스트 cittalmr@naver.com
 

[1370호 / 2016년 1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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