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월파 스님과 통도사 감김치
22. 월파 스님과 통도사 감김치
  • 정리=김현태 기자
  • 승인 2016.12.06 14: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철에 나는 식재료 사용이 바른 사찰음식 전승의 시작

▲ 일러스트=강병호 작가

울산 문수산은 하루에도 수천의 사람들이 방문하는 울산의 주산이다. 이곳에 위치한 문수사 주지 월파 스님은 2000년 소임을 맡은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등산객들에게 점심공양을 보시하고 있다. 음식을 통해 부처님의 자비와 무욕의 삶을 속세의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또한 더불어 살아가는 보시의 정신과 한국불교의 소박함이 사회 곳곳에 퍼져나가길 바라는 마음도 담겨있다.

밀껍데기로 쑨 죽 나누며
검박한 가르침 몸에 익혀

덜익은 감으로 담근 김치
겨울 수행돕는 최고 별식

음식 향한 소욕지족 마음
반드시 보전해야 할 전통


월파 스님은 1952년 15세 나이에 동진 출가했다. 통도사 월하 스님의 상좌로 있던 한 고향선배가 출가를 권한 것이 인연이 됐다. 선배의 말에 찾아간 통도사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긴 소나무 길과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 종소리, 그리고 스님들의 예불소리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마음에 담아 돌아서는데 노스님 한 분이 다가와 출가를 권하는 것이었다. 바로 구하 스님이었다. 그렇게 월파 스님은 통도사를 처음 방문한 날 월하 스님의 사제로 출가하게 됐다. 전생부터 통도사에 깊은 인연이 없지 않고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행자생활은 생각했던 것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당시는 월파 스님 또래의 행자들이 많았는데 항상 배가 고팠다. 스님들은 직에 따라 패를 만들어 대중방에 붙여놓았는데 출타를 하게 되면 자신의 패를 뒤집어 놓았다. 그러면 미감 스님은 인원수만큼 홉으로 재어 곡간에서 쌀을 내주었고, 원주 스님은 그 쌀에 밀껍데기 가루를 섞어 죽을 만들었다. 그나마 밀껍데기 죽도 양이 부족하다보니 주지나 삼직스님도 출타를 할 때면 대신해 밥을 받아주길 부탁할 정도였다.

비록 세끼 모두 죽을 먹기는 했지만 공양 때면 모두 대방에 모여 여법하게 발우공양을 했다. 찬으로 김치와 된장아욱국, 나물 한두 가지가 나왔다. 특히 김치는 오신채 없이 고추와 소금만을 사용해 담갔다. 사실 사중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가 배추와 무, 고추, 소금이 다였기 때문이다. 아욱된장국은 경내 밭에서 아욱을 많이 재배했기에 즐겨 먹을 수 있었다. 그나마 아욱이 떨어지면 무만 들어간 된장국을 먹어야 했다. 나물은 통도사 앞 사하촌 주민들이 산에서 채취한 것들을 사먹었다. 어려운 살림이지만 통도사에 기대 살아가는 주민들을 위한 배려였다.

“50~60년대는 사찰은 물론이요 나라 전체가 어려운 시절이예요.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 그저 굶지 않고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체가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때문에 수행자들은 음식을 약으로 여겼고, 특별한 날이라고 따로 음식을 챙기거나 별식을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대중공양이 들어오는 날에는 찰밥을 짓고 표고버섯을 넣은 미역국이 나왔습니다. 지금의 음식과 비교해 보면 그때는 비록 소박하고 거칠었으나 스님들이 직접 농사를 지어 재료가 깨끗했고, 정성을 다해 수행하는 마음으로 만들었기에 약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살림살이가 아무리 궁해도 특별한 음식 하나는 존재하는 법. 통도사에는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특별식이 있었으니 바로 ‘감김치’다. 당시 통도사 주변에는 감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는데 초가을 감이 약간 불거지면 공양간은 감김치 담글 준비로 손이 바빠진다. 감김치 담그는 법은 먼저 덜 익은 감을 따서 깨끗이 씻은 후 큰 단지에 담아 둔다. 그리고 싸리나무 가지를 푹 삶은 물에 소금으로 건건이 간을 맞춘 후 그 물을 감이 든 단지에 붓는다. 싸리나무 대궁으로 뚜껑을 만들어 한두 달 감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잘 익은 감김치는 감의 단맛이 짭짤한 소금물로 인해 배가 된다. 김치라기보다는 장아찌에 가까운 이 음식은 당시 반찬이기 보다는 겨울철에 먹는 일종의 간식 같은 존재였다. 감김치는 큰스님뿐 아니라 대중 누구나 좋아하는 최고의 별식으로 지금도 통도사의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스님은 지역에서 생산한 제철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사찰음식 전승의 시작이라고 했다. 방부제나 농약을 사용한 식재료는 물론 멀리 해외에서 수입한 먹거리까지 사용하다보니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약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주로 앉아서 생활하고 수행하는 스님들의 경우 방부제가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위장이나 전립선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게 스님의 지적이다. 이런 점에서 먹거리를 스스로 만들어 먹었던 승가의 전통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예전 통도사 스님들은 아침예불을 안하면 대중공사를 하고, 도량청소를 안하면 징계를 받는 등 모든 것에 엄격하고 절제하도록 지도했습니다. 또한 음식의 경우 몸을 유지할 정도만 허락하는 등 철저히 소욕지족을 실천했습니다. 승단에 보전 전승돼야 할 것은 구체적인 음식보다는 공양을 준비하고, 만들고, 접하고, 먹는 과정에서 가져야할 정신이라 할 것입니다.”

정리=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월파 스님은

1952년 구하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통도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미타암, 보광사, 통도사 주지 등을 역임했다. 2000년부터 울산 문수사에 주석하고 있으며 2007년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추대됐다.

 

 

[1370호 / 2016년 1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