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강의 듣고 발심해
금산사복지원 설립에 일조
학생회를 다니며 토요일이면 청일암에 가 장작 패는 것에서부터 온갖 일을 도왔다. 신심도 커져갔다. 대학교에 입학하고는 학생회 간사와 고문을 맡아 후배들과 함께했다. 군을 제대한 뒤에는 학생회 선후배들과 부안불교청년회를 창립하기도 했다. 현 혜원사 주지 정원 스님을 비롯한 많은 스님들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직장을 다니며 2대 사무국장 소임을 맡았다.
1999년 제16회 대한불교청년회 전국대회를 전북에서 열게 됐다. 실무위원으로 차출됐기에 직장을 그만두고 1998년 10월부터 1년간 아예 금산사에서 살았다. 금산사 개산 1400주년을 맞아 개산대재도 준비해 여러 가지 일들을 한꺼번에 처리해나갔다. 행사들이 모두 끝나고 다시 직장을 구하려던 차에, 마침 전북불교회관에서 사무원 자리가 비었다는 말을 들었다. 주변의 추천으로 전북불교회관에 들어가 일을 했다. 직업으로까지 생각해본 적 없었지만, 인연인 것인지 불교일은 몸에 잘 맞았다. 그리고 2000년 7월 당시 금산사 주지 도영 스님이 전북지역 최초의 불교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 금산사복지원’을 설립했다. 그 과정에 동참하면서 ‘복지법인 일이 내 길’이라는 확신이 섰다.
이후 노인 일자리사업을 전개했으며 2001년 11월에는 전북지역 불교단체로는 최초로 노인복지시설인 서원노인복지관을 수탁했다. 3개월의 시간을 들여 개관작업을 진행했다. 2002년 1월 문을 연 뒤 14년3개월 동안 사무국장 소임을 봤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 나는 사회복지를 한다기보다 종무원으로 산다고 생각한다. 사회복지라는 게 부처님 가르침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원노인복지관 사무국장’보다 종무원으로서 ‘불법을 행하고 있다’고 믿는다.
2002년, 전북지역에 불교사회복지시설은 하나뿐이었다. 전주시에 6개 노인복지관이 있었는데, 5곳이 기독교단체가 운영하는 시설이다. 현재는 금산사복지원을 비롯해 사회복지법인 송광, 선운사복지재단 등에서 종사자 200여명이 근무하며 전북지역 사회복지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그때는 부족했다. 절에서 고아를 키워주고 공부시켜주던 일은 흔했어도 불자 사회복지사 한 명 구하는 게 힘들 정도였다. 서원노인복지관 또한 사회복지사를 모집할 때 불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사무국장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그래도 지금은 불교계 사회복지단체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불자 사회복지사도 적지 않게 있으니 위안을 얻는다. 불자 사회복지사를 늘리기 위해 노력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불교계 사회복지 시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예전에는 사회복지 교육을 받을 때 불자라는 사실을 밝히는 사람은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결과적으로 전북지역 불교계 사회복지 역량도 크게 늘었다. 전북지역의 불교 사회복지 태동에 동참할 수 있었던 건, 지금 생각해보면 큰 인연이었다.
정리=신용훈 전북주재기자 boori13@beopbo.com
[1371호 / 2016년 12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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